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생짓는남자 Jan 03. 2020

사람을 사귀려고 애쓰고 싶지 않습니다

내성적이지만 충분히 잘 살고 있습니다 #23

오늘날 관계의 끈은 물리적인 거리가 아니라 마음의 거리와 의지에 달려 있다. 그래서 나는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여, 온라인을 통해 내성적인 성격의 단점을 보완하고, 극대화하고 있다. 이제는 친구가 많은 사람이 전혀 부럽지 않다.




고등학교 친구 중에 뻑하면 양다리를 걸친 녀석이 있었다. 이성 관계를 말하는 게 아니다. 약속을 꼭 한 번에 두 개씩 잡았다는 말이다. 그 녀석은 베프 모임에 끝까지 함께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항상 다른 약속이 있어서 중간에 먼저 갔다.

그 모습이 처음에는 부러웠다. 나는 친구라고는 고작 베프 8명뿐이었으니까. 그 녀석은 그 이상이니, 그 녀석의 사교성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도 친구들을 많이 만들어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실패했다. 사교성이 부족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인간관계를 넓히는 것 자체가 피곤했다. 누군가와 친해지려면 정신적으로 신경 써야 하니까, 신경 쓴 만큼 피곤이 늘어나니 친구를 더 많이 만드는 게 싫었다. 그래서 내게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고등학교 친구는 베프가 고작이다.

대학교 다닐 때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이런 고민을 했다. 과 엠티도 가고 동아리 활동도 해서 친구를 만들지 말이다. 혼자 학교 다니면 외롭고 뻘쭘하니까.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했다.

‘친구 만들어서 뭐해? 졸업하면 끊어질 인연인데. 주변에 보면 다 그러던데. 졸업 후에 남는 친구는 몇 명 없던데. 스무 살 넘어서 만나는 사람과는 고등학교 친구들처럼 깊이 친해질 수 없어. 그러니 굳이 친구를 많이 만들 필요가 없어.’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했다.

‘아니지. 내가 인간관계를 어떻게 맺느냐에 따라 달라질 걸. 스무 살 넘어서 맺는 인관 관계는 필요에 의해 맺고, 그 필요가 사라지면 남이 되지만,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남는 사람이 줄거나 즐기도 해.’

어떡할까 고민하다가 친구 사귀는 걸 관뒀다. 역시나, 내게는 누군가를 사귀기 위해 애쓰는 게 피곤한 일이었으니까. 그 때문에 졸업할 때까지 항상 붙어 다니던 친구는 군대 가기 전에 두 명, 전역 후 복학해서 두 명뿐이었다. 졸업하고 나서는 연락 하고 지내는 친구가 없다.




학창 시절에는 ‘나는 왜 이렇게 인간관계가 좁을까’ 왜 이렇게 사람을 못 사귀는지 고민했다. 성격을 고쳐야 하나 싶었지만, 문제는 성격이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그래서 고민하고, 노력하고, 포기하기를 반복했다. 반복하다 결국 지쳐서 그냥 나대로 살기로 했다.

나중에야 내 인간관계가 좁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성적인 성격 탓이었다. 내성적이어서,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는 게 수줍어서 사람을 잘 사귀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사람을 사귀는 건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와 거저 가까워지지 않는다. 연락하고, 만나고 해야 가까워질 수 있다. 얼마큼 만나고, 얼마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또 얼마큼 마음을 나누느냐에 따라 관계의 넓이와 깊이가 결정된다. 문제는 그렇게 온갖 공을 다 들여도 반대쪽에서 관심이 없으면 결코 가까워질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인간관계는 도박과 같다.

나는 그게 싫다. 아니 피곤하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가까워지지 않을 바에야 차라리 가까워질 사람만 가까워지는 게 낫겠다 싶다. 가까워질 수 없는 사람은 노력해도 소용없다. 가까워질 사람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가까워진다. 물론 노력한 만큼 좀 더 더 많은 사람을 사귈 수 있겠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그렇게 신경 쓰는 건 너무나 피곤한 일이니까.




지금 친한 사람은 많지 않다. 아니 적당히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신경 쓸 수 있는 만큼만 알고 지낸다. 아는 사람이 지금 이상 늘어나면 신경을 못쓴다. 내 에너지와 집중력은 한계가 있으니까. 그게 내성적인 나의 단점이지만, 꼭 단점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그만큼 깊은 관계를 맺으니까.

비록 나는 인간관계의 폭이 좁지만, 그만큼 관계의 깊이는 깊다. 신경 쓸 수 있는 만큼만 사람을 사귀다 보니 자연히 깊은 관계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제는 관계의 폭이 좁은 걸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 과학 문명이 그런 단점을 보완해 주니까. SNS가 발달해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라도 관계의 끈이 계속 이어진다. 가까운데 살다가 서로 멀어져도 SNS나 카톡과 같은 메신저 덕분에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다. 멀리 떨어져서 SNS로 연락하며 알고 지내다가 어쩌다 만나게 되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고등학교 친구들보다 더 반가울 때도 있다.

게다가 내성적인 나의 성격은 오프라인에서는 맥을 못 추지만, 온라인에서는 빛을 발한다. 오프라인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벙어리가 되지만 온라인에서는 수다쟁이가 된다. 얼마나 말이 많은지, 지인들을 오프라인에서 만나면 “카톡으로 대화할까?”라고 농담을 던질 정도이다. 덕분에 온라인에서는 사람을 쉽게 그리고 많이 사귄다. 물론 SNS에서 관계가 계속 이어지는 사람은 한정적이지만, 어쨌든 SNS가 없었으면 어쩌나 싶다.

오늘날(지난 시절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관계의 끈은 물리적인 거리가 아니라 마음의 거리와 의지에 달려 있다. 그래서 나는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여, 온라인을 통해 내성적인 성격의 단점을 보완하고, 극대화하고 있다. 이제는 친구가 많은 사람이 전혀 부럽지 않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