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장구를 잘치면 사람을 얻는다.

by 인생짓는남자

대화에서 공감이라는 기술이 필요할까? 필요하다. 공감을 잘하면 대화 분위기가 훈훈해지고, 대화 분위기가 훈훈해지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감에 참 인색한 사람이 있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꼭 있다. 공감에 인색한 사람은 누가 힘들다는 얘기를 하면,

“그래? 그랬어? 정말 힘들었겠다...”

라고 위로해주기보다

“그 정도로 힘들어하냐? 난 더 힘들어!”

라며 역으로 자신의 힘든 사연을 자랑한다. 도리어 자신이 더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누가 힘들다고 하면 공감해주면 덧나나? 힘내라고 위로해주면 큰일 나기라도 하나?

누가 힘들다고 말할 때 “그 정도는 힘든 것도 아니야. 나는 더 힘든 일을 겪었어”라고 반응하는 사람은 참으로 모질이다.

세상살이 모두 힘든 법이다. 너도 힘들고, 나도 힘들다. 서로 힘든 걸 상대화할 필요가 없고, 상대화할 수도 없다. 각자 상황에서, 각자 감당할 수 있는 정도가 다르니까. 그런 면에서 힘든 건 절대화된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이 사람은 별로 힘들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은 너무 힘들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니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내가 더 힘들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




그제 지인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육아 배틀을 했다. 내가 먼저 지난 주말에 아기 보느라 힘들었다고 운을 뗐다.

“우리 애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아. 아침에 눈을 뜬 후부터 밤에 눈을 감을 때까지 계속 움직여.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안아달라 뭐해달라 엄청 정신없고 계속 들러붙어. 얼마나 부산한지 눈으로 보고만 있어도 피곤해. 그래서 주말만 되면 힘들어 죽겠어.”

내가 우는 소리를 내자, 지인은 역공을 펼쳤다.

“뭘 그것 갖고 힘들다고 그래. 우리는 애가 둘이라 주말만 되면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어. 쉴 시간도 없고, 밥 먹을 정신도 없어. 이놈이 울면 저놈도 울고, 이놈이 놀아달라 저놈이 놀아달라 여기저기서 빽빽거려. 아내랑 둘이서 애를 보는데도, 애가 둘이라 정신이 없어. 나한테 두 놈이 들러붙을 때는 완전 꼼짝 마야. 숨 쉴 틈도 없어...”

위로는커녕 내게 속사포를 쏟아부었다. 내가 쏟아낸 것보다 서너 배는 더 많이 자신의 힘든 사정을 토해냈다.

“맞아, 맞아. 둘은 더 힘들지. 정말 힘들겠다. 그렇지. 아이고...”

지인이 힘들다고 얼마나 하소연을 하던지, 더 이상 힘들다고 말을 했다가는 큰일 날 듯싶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 말은 멈추고, 지인에게 위로와 공감, 응원만 계속해주었다. 위로받으려다가 본전도 못 찾았다.




공감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점이 있다. 경험상 공감에 인색한 사람은 정말 인색하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이 공감에 인색하다고 해서 항상 인색한 건 아니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인색할 때도 있고, 넉넉히 공감해줄 때도 있다. 반대로 공감을 잘해주는 사람도 때론 공감에 인색해지곤 한다. 이 사람은 무조건 공감에 인색한 사람이라고 몰아세울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람마다 성향이라는 게 있다. 매사에 부정적이고, 인색한 사람은 그 성향을 감출 수 없다. 바꿀 수도 없다. 공감에 인색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든 그리고 누구에게든 좀처럼 공감해주지 않는다. 그게 그 사람의 성향이니까. 가끔 공감을 해줄 뿐, 다른 사람의 말에 대체로 공감해주지 않고 거꾸로 자기 상황을 이야기한다. 자기 말만 한다.

가능하다면 그런 사람 앞에게는 내 사정을 쏟아내지 않는 게 좋다. 내 힘든 얘기든 자랑이든 뭐가 됐든 맞장구를 쳐주지 않을 테니까. 부러워 하든, 자기 힘든 걸 나열하든 간에 자기 입맛대로만 반응할 테니까. 그런 사람에게 내 얘기를 하면 감정만 상할 뿐이다.




대화에 있어서 공감은 일종의 기술이다. 다른 사람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는 건 대화에 있어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있으면 좋은 의사소통 기술이다. 여기서 공감을 ‘기술’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있다. 몇 가지 이유 때문이다.

맞장구를 치려면 상대의 말을 세심하게 들어야 한다. 집중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집중하지 않으면, 집중력이 없으면 상대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못한다. 그리고 공감을 하려면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논점이나 맥락을 파악해야 한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파악하지 못하면 결코 맞장구를 칠 수 없다. 다른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또한 역지사지, 이해심이 필요하다. 상대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면 “답답한 소리 하고 있네”라고 반응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 인내력과 자제력이 필요하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어줄 수 있는 인내력과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자기 말을 내뱉지 않고 눌러 담을 수 있는 자제력이 필요하다.

상대의 말을 앞지르지 않고, 뒤따라가려면 위에서 나열한 능력들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능력들을 적절히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공감은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대화에서 공감이라는 기술이 굳이 필요할까? 필요하다. 공감을 잘하면 얻는 게 있으니까. 물론 무언가를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의 말에 공감을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공감 기술을 적절히 구사하면 얻는 게 있다. 바로 사람의 ‘마음’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을 얻게 된다.

우선 상대의 말에 맞장구를 잘 쳐주면 대화가 훈훈해진다. 맞장구를 적시에 구사해서 대화가 훈훈해지면, 상대가 나와 대화하는 걸 즐거워하게 된다. 이것만으로도 큰 이득이다. 이왕 하는 대화라면, 즐거워야 하지 않겠는가.

상대가 나와의 대화를 즐거워하면 나를 대화하고 싶은 사람, 가까이하고 싶은 사람으로 느낀다. 상대의 마음을 얻게 되는 것이다. 상대의 마음을 얻게 되면 가까워지고, 마침내 사람을 얻게 된다. 훈훈하고 즐거운 대화로 사람을 얻으면 얼마나 큰 성과인가. 사람보다 인생에 큰 재산은 없다.

그렇다고 사람을 얻기 위해 일부러 맞장구를 치면 안 된다. 사람들은 진심 어린 맞장구와 의도적인 맞장구를 구분할 수 있다. 의도적으로 맞장구를 치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그저 훈훈한 대화를 위해 맞장구를 치다 보면 사람을 얻게 될 것이다. 반대로 공감에 인색하면 사람과 점점 멀어지고, 결국 인생의 소중한 재산을 날리는 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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