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귀가 어둡다고?

by 인생짓는남자
아내 : “여보 00 좀 갖다 줘.”
남편 : “어디에 있는데?”
아내 : (물건이 있는 곳을 향해 몸짓하며) “저기 있어.”
남편 : (물건 근처에 가서 두리번거린다.)
아내 : “거기 말이야!”
남편 : “거기가 어디야?”
아내 : “아, 거기 있는데 왜 못 찾아.”
남편 : “거기가 어디냐고. 정확히 말해야지. 거기라고 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우리 부모님은 가끔 이렇게 티격태격하신다. 어머니는 갖다 달라고 한 물건을 아버지가 한 번에 못 찾아서 답답해하시고, 아버지는 위치를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며 어머니를 타박하신다. 어머니는 늘 두루뭉술하게 설명하시고, 아버지는 늘 못 알아들으신다. 40년을 함께 사셨는데도 척하면 척, 그런 게 없다. - 그렇다고 아예 없다는 말은 아니다. - 한두 해 같이 사신 것도 아닌데 두 분의 쿵짝이 어쩜 그리도 안 맞는지 모르겠다. 참 신기한 일이다.

모르긴 몰라도 저런 일은 우리 부모님만 겪는 게 아닐 것이다. 아마도 부부라면 이와 같은 일을 한 번쯤은 겪어봤을 것이다. 결혼하면 한쪽에서는 왜 그리 말을 못 알아듣느냐고, 반대쪽에서는 왜 제대로 설명하지 않느냐며 왕왕 서로 타박하는 일을 겪게 될 것이다. 나도 그중 하나다.

남녀 차이를 드러내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남자는 말귀를 정말 못 알아듣는다’거나 ‘남자는 뭘 잘 못 찾는다’가 요점이 아니다. 우리는 자기중심적 사고를 한다는 사실을 말하려고 한다.



“우리는 어떤 문장이 우리에게 분명하면 그것을 듣는 사람에게도 분명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종종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언어를 이해하는 기계를 만들려고 시도했던 공학자들이 깨달았듯이, 우리가 말하는 것의 상당 부분은 매우 애매하다.”
- 『클루지 Kluge』(개리 미커스, 갤리온) 중에서


우리는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남들도 생각한다고 예단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문장이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도 있을 거라고 속단한다. 자연스럽게 자기중심적 사고를 한다. 그로 인해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았을 때 듣는 사람이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태’가 벌어진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말하는 사람이 설명도 제대로 안 해주고 타박만 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중심적 사고는 일상에서 흔히 벌어진다. 부부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상사와 부하 직원, 직장 동료, 친구, 가게 점원과 손님 등 모든 인간관계 사이에서 벌어진다.


손님 :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점원 : “따뜻하게 드릴까요,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드릴까요?”
손님 : “아이스 (혹은 따뜻한) 아메리카노요.”
점원 : “시럽 넣어드릴까요?”
손님 : “네 (혹은 아니오).”


위에 상황에서 까탈스러운 손님이라면 점원의 물음에 속으로 짜증 낼 수도 있다. ‘아메리카노는 당연히 아이스지. 귀찮게 그걸 일일이 알려줘야 돼?’ 당연한 걸 묻는다고 귀찮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의 취향을 모른다. 손님의 취향, 손님이 말하려는 내용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다. 그러니 물어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우리 머릿속에는 말하려는 내용이 들어 있기 때문에 듣는 사람에게 뭉뚱그려 설명한다. 자기중심적 사고로 인해 상대가 당연히 알아들을 거라고 착각한다. 내 머릿속에는 말하려는 내용이 들어 있으니 듣는 사람도 당연히 말을 알아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혀 당연한 게 아님에도 말이다.




자기중심적 사고를 다르게 표현하면 정보와 지식의 비대칭 혹은 우위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자기중심적 사고로 말하는 순간, 정보와 지식의 비대칭이 벌어진다. 그 순간 말하는 사람은 정보와 지식에서 우위를 점한다. 말하는 사람은 말하려는 내용과 관련된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으니까. 반면 듣는 사람은 오로지 말하는 사람이 던져주는 정보와 지식에 의존한다. 듣는 사람은 정보와 지식이 대등하지 못하기 때문에 말하는 사람이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지 않으면 말하는 내용을 다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정보와 지식의 비대칭이 항상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듣는 사람이 내가 말하려는 내용과 관련된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혹은 대등한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눈치나 논리력으로 내용을 유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대화에서 그게 가능한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갖은 양의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사람마다 눈치와 논리력이 다르기 때문에 정보와 지식의 비대칭 혹은 우위는 발생할 수밖에 없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어제 자기중심적 사고를 저질렀다. 어젯밤에 아내가 내게 물었다.


“여보, 수박 조금 남았는데 버릴까?”
“맘대로 해. 아니면 거시기할 테니까 냉장고에 넣어둬.”


“내일 내가 먹을 테니 아직 괜찮으면 냉장고에 넣어두”라는 말이었다. 핸드폰에 정신 팔려 있느라 제대로 대답하지 않고 뭉뚱그려 말했다. 그렇게 말해도 알아듣겠거니 하고 말이다. 그래 놓고 “거시기가 뭐야”라고 묻는 아내에게 “거시기가 뭔지도 모르냐. 전라도 사투리다”(“거시기”는 사투리가 아니라 표준어다)라는 엉뚱한 말을 하며 아내를 타박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글을 쓰면서 말이다. 이럴 수가...

이렇게 우리는 일상에서 대화 중에 자기중심적 사고를 종종 저지른다. 듣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 입장에서만 말하곤 한다. 그래 놓고 “말귀가 어둡다”며 듣는 사람을 타박한다. 말귀가 어둡다니! 그게 아니라 말하는 사람이 정확하게 설명해주어야 할 책임을 다하지 않은 건데, 누가 누굴 타박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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