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 쓰지 마!”
속사포 같이 쏟아지는 부모의 잔소리를 물리치려는 자식의 최후 발악이다. 이 말에 부모는 불같이 화를 내며 이렇게 응수한다.
“이 녀석이 버르장머리 없게!”
너무나 기가 막혀서 내뱉는 으름장이다. 서운함이 담긴 탄식이다. ‘관심’과 사랑으로 한 잔소리인데 자식이 성가셔하니 서운할 수밖에. 본심으로 따지면 잔소리가 아니다. 자식에 대한 ‘관심’이다.
부모 입장에서야 관심이겠지만, 자식 입장에서는 다르다. 그저 잔소리, 아니 ‘간섭’이다. 자식은 알아서 할 수 있는데 자꾸 이래라저래라 잔소리를 하니 성가시다. 지나치게 관심을 가지니 간섭으로 느껴진다.
관심과 간섭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관심은 관심에 머물 수도 있지만, 지나치면 간섭이 될 수 있다. 이런 일은 부모 자식 간에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부부, 연인, 친구, 직장 동료 사이에서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전 직장 상사가 관심과 간섭을 유독 구분하지 못했다. 그는 관심을 핑계로 사사건건 개인사에 지나치게 간섭했다.
당시 다니던 회사는 파주에 있었다. 집은 인천. 출퇴근 시간은 4시간, 편도 2시간이나 걸렸다. 장거리 출퇴근으로 지칠까 봐 걱정됐는지 상사가 매게 집을 파주로 옮기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상사의 염려에 나도 그럴 수만 있으면 그러고 싶다고 답했다. 진심은 아니었다. 호의에 대한 인사치레였다. 마침 얼마 있으면 분가할 예정이었다. 새로 들어갈 집을 마련해 놨다. 상사는 그 집을 팔고 파주로 이사하라고 권했다. 여기까지는 관심이었다. 상사는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내 대답이 부적절했을까? 인사치레로 답하지 말고 단호하게 말했어야 했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내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우리 부부가 이사 갈 집과 가격이 비슷한 집을 여러 군데 알아봐 주었다. 집 위치, 출퇴근 교통편, 서울로 가는 교통편 등 이틀 밤을 새우며 알아보고 엑셀로 작성해서 내게 넘겨주었다. 대단한 열정이었다. 부하 직원의 일에 세세히 신경 써줘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불편하게 느껴졌다. 꼭 이사했으면 좋겠다고, 이사하는 게 맞다는 말을 덧붙였으니까. 관심이 간섭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알아봐 준 집이 하필 자기 집 근처였다! 도보로 왕래가 가능할 만큼 가까웠다. 안 그래도 퇴근 후와 주말을 구분하지 않고 수시로 전화하는 사람인데, 거기로 이사 가면 집 밖으로 수시로 불러낼 게 뻔했다. 그가 거기까지 생각하고 알아본 건 아니겠지만, 결과를 확신할 수 있었다. 입으로는 알아봐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기겁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이사하라고 압박했다. 내가 결정할 일인데,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왜 간섭하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부하 직원이 지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관심을 둔 것까지는 고마웠지만, 관심을 넘어 간섭하니 많이 불편했다. 상사만 아니었으면 한 마디 했을 것이다. 이 사례는 보편적인 일은 아니다. 하지만 관심이 간섭으로 바뀌는 사건은 다양한 관계 속에서 자주 벌어진다.
간섭은 대개 관심으로 시작된다. 처음부터 간섭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아주 가까운 사이에서 말이다. 가까운 사이에서 간섭하는 경우 너무 가깝기 때문에 간섭인데도 간섭인 줄 인지하지 못하곤 한다. 혹은 간섭인 줄 어렴풋이 알긴 하지만, 간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당연하게 허용될 정도로 가까우니까. 대표적으로 부모와 자식, 부부, 연인 사이가 그렇다.
간섭하는 쪽에서는 일부러 간섭하는 건 아니다. 상대에게 관심이 있기 때문에 간섭하는 것이다. 애정이 있으니까 간섭하는 것이다. 아니 관심을 두는 것뿐이다. 하지만 사랑도 지나치면 애증이 되는 법이다. 관심이 지나치면 자신도 모르게 간섭이 된다. 간섭이 지나치면 강제가 된다. 강제가 지나치면 통제가 된다. 일정 선을 한 번 넘기가 어렵지, 장애물을 하나 넘으면 그다음은 쉽게 넘는다.
관심인 듯 간섭하면 자칫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관심이 아니다. 간섭이다. 애정으로 하는 말이라도 상대에서 거북하게 느끼면 간섭이다.
관심이냐 간섭이냐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결정한다. 관심과 간섭의 결정권은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있다. 아무리 이쪽에서 관심이라 해도, 실제로 누가 봐도 관심이 분명하더라도 상대가 간섭이라고 느끼면 그건 간섭이다. 간섭하고 있음에도 받아들이는 쪽에서 관심이라고 생각하면 관심이다.
관심인 척 간섭하지 말자. 관심과 애정으로 하는 말이라도 상대가 거북하게 느낀다면 거기서 멈추자. 그럼 관심으로 끝날 수 있다. 안타까운 마음에 계속 관심을 표현한다면 그 즉시 간섭이 된다. 상대를 괴롭히게 된다. 상대에게 의도하지 않은 정신적 폭력을 행사하는 게 된다. 슬픈 결말을 원하지 않는다면,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면 주의하자. 그 말을 듣는 순간 상처 받는 건 나 자신이다. 관심은 관심으로 끝내자. 그럼 모든 게 아름답게 마무리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