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결도 아니고, 연봉을 내려?
직장인이 1년 중 손꼽아 기다리는 시간은? 당연히 여름 휴가와 연봉협상이 아닐까. 여름 휴가는 일 년 동안 지친 몸을 쉬게 해 주는 날이다. 가장들은 가족들을 챙겨야 해서 사실상 더 피곤한 시기이지만, 회사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 기분 전환과 힐링이 되는 기간이다. 연봉협상은 어쩌면 여름 휴가보다 더 기다려지고, 중요한 순간이 아닐까 싶다. 일을 잘했든 못했든 연봉을 더 많이 받고 싶은 게 당연지사. 업무 능력이 늘어났는지, 업무 성과를 냈는지는 다른 문제다. 무조건 연봉이 늘어나야만 한다. 물가는 계속 상승하는데 연봉만 정체되는 게 말이 되나! 그럼 생활이 곤란해진다.
나도 지난해에 연봉협상을 했다. 결과는, 인상? 동결? 감봉이다! 감봉이라니! 듣도 보도 못한 일이 내게 벌어졌다. 회사가 엄청나게 어려워져 임금이 동결됐다는 소식은 뉴스에서 많이 접했다. 마찬가지 이유로 직원을 정리 해고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이따금 접한다. 그런데 감봉은, 들어본 적이 없다. 기가 막혀서 인터넷 검색까지 해봤다. ‘연봉 감봉’ 혹은 ‘연봉 삭감’이라는 키워드로 결과물이 검색되기는 한다.
‘흔하진 않지만 없는 일은 아니군.’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근로기준법상 연봉은 10% 이상 감봉할 수 없다고 한다. 법에 그렇게 규정되어 있는데 나는 무려 20%나 삭감됐다! 정말 기가 막힌다. 20%라니!
‘그래, 감봉 조치가 억울하긴 하지만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고, 회사가 그렇게 결정했다면 따라야지.’
상식선에서 감봉이 됐다면 이렇게 생각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상식과 법을 넘어설 만큼 감봉당했다. 정말 어처구니없다.
감봉 사유? 있다. 1년간 지켜본 결과 내 실력이 신입과 다르지 않단다. 그래서 내규에 따른 신입 연봉으로 낮추겠단다. 이게 무슨 소린가? 난 신입인데? 신입인데 신입과 다르지 않다니. 참으로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내 직무와 관련하여 성과가 없단다. 왜 성과가 없다는 거지? 지난 1년 중 반년 동안은 분명히 성과를 냈다. 그리고 나머지 반년은 업무 내용이 바뀌어서 성과를 내지 못한 게 사실이다. 바뀐 업무를 쫓아가기도 바쁜데 무슨 성과를 내느냐고! 그래서 연봉을 삭감한단다.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고 황당해서, 멍한 상태로 근로계약서에 사인하고 말았다.
연봉협상을 하지 않는 회사가 많다. 인상이든 동결이든 일방적으로 통보하거나 통보조차 하지 않는 회사도 있다. 인상이든 동결이든 면대면을 하는 게 당연하지만, 연봉이 인상되기만 한다면 일방적으로 통보한들 무슨 상관이랴. 현실은 이상과 다르다. 물가는 한없이 오르는데 연봉은 계속 동결. 이게 현실이다.
“무슨 소리? 나는 연봉 올랐는데!”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팔자 좋은 소리 하고 있네”라고 말해주겠다. 오르지 않는 사람이 태반이다. 아마 해마다 연봉이 오르지 않는 노동자가 오르는 노동자보다 더 많을 터.
연봉이 올라야 하는 이유가 있냐고? 그것도 회사에 아무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은 직원에게. 일단 시급이 계속 오른다. 최저 시급보다 못 받고 일하는 사람이 많다. 그게 지독하게 치사하고 암울한 우리의 현실이다. “그럼 최저 시급보다 많이 주는 회사에서 일하면 되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장 때려주자. 그 말은 학생들이 학비가 비싸다고 하니 장학금 타면 되지 않냐고 말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말과 같은 논리니까. 그 말이 왜 문제 있는지 모른다면, 그 사람과는 더 이상 대화가 불가.
물가도 오른다. 월급이 동결되면 삶이 점점 팍팍해진다는 뜻. 회사도 힘들기는 마찬가지기는 하다. 매출은 오르지 않는데 경상비는 해마다 오르니 힘든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임원들은? 임원이나 사장 연봉도 동결되나? 직원들 월급은 안 올라도 임원이나 사장 월급은 오르거나 이미 많이 받고 있어서 오르지 않아도 괜찮은 경우가 태반이지 않을까. 얘기가 점점 산으로 간다. 물가는 오르고 월급은 동결. 그럼 자연히 소비가 준다. 소비가 줄면 경기는 악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어쨌거나 연봉이 올라야 소비가 활성화되고 경기도 풀리고...
연봉이 너무 많이 삭감 돼서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나가라”는 거냐고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물었다가 정말 나가라 할까 봐 묻지도 못했다. 나는 소심하고 힘없는 을이니까.
연봉협상 때 동결시키고 1년만 더 기회를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괜히 자존심 상해서 말하지 못했다. 그 대신 앞으로 1년간 실력을 키워서 다음 연봉협상 때 보란 듯이 올려달라고 말하겠노라 다짐했다. 아니, 사실은 얼른 실력을 키워서 다음 연봉협상 전에 더 좋은 회사로 더 많은 연봉을 받고 이직하겠노라 이를 갈았다. 못할 것도 없지! 나는 아직 신입이니까 기회는 충분하다. 두고 보라! 보란 듯이 사표를 던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