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을 하다 깨달은 인간관계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
미국 경제학자 제임스 토빈(James Tobin)이 한 말이다. 이 말은 그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직후에 '포트폴리오 이론(Theory of Portfolio)'에 대해 쉽게 설명해달라는 한 기자의 요청에 답을 하며 한 말이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았을 때 실수해서 떨어뜨리면 모든 계란이 깨지기 때문에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것이다. 이후 이 말은 유명한 주식 격언이 되었다.
제임스 토빈의 말은 분산 투자를 하라는 뜻인데, 주식 투자에서 분산 투자는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한 가지 측면은 같은 산업에 속한 종목들로만 포트폴리오를 구성하지 않는 것이다. 여러 종목에 투자를 했지만, 산업이 같다면 리스크가 커진다. 같은 산업에 속해 있으면 유사한 변동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스크를 분산시키기 위해 서로 다른 산업에 속한 종목들로 주식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게 좋다.
다른 측면은 여러 종목에 투자하는 것이다. 한두 종목에만 투자를 하면 리스크가 커진다. 변동성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여러 종목에 투자를 하면 한두 종목이 하락하더라도 다른 종목이 상승한다면 손익비가 별로 요동치지 않을 것이다.
분산 투자에 회의를 보이는 투자자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오마하의 현인'이자 '투자의 귀재'인 워렌 버핏(Warren Buffett)이다. 그는 자신의 스승이자 가치 투자의 창시자인 벤자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의 방식을 따라 가치 투자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버핏은 여러 종목에 투자하기보다 몇 가지 우량한 종목에 장기 투자하여 큰 수익을 내는 투자 방식으로 엄청난 부를 일궜다.
인간관계에서도 분산 투자를 하는 사람이 있고, 집중 투자를 하는 사람이 있다. 친구 혹은 지인이 많은 사람이 있는 반면 손에 꼽을 만큼밖에 없는 사람도 있다. 고등학교 베프 중에 한 녀석이 전자에 해당했다.
그 녀석은 친구가 많았다. 친구가 얼마나 많은지, 주말 약속을 늘 두세 건 잡았다. 여기저기 다니기 바쁘니 모임마다 얼굴만 비추고 다녔다. 그 녀석은 의리를 중시해서 이 모임 저 모임에 다 나가고, 이 친구 저 친구 다 챙겼다. 하지만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기는 힘든 법이다. 사람의 집중력과 시간은 한정적이다. 그 녀석의 양다리 외교는 결국 파국을 맞이했다.
그 녀석은 모임에 참석하면 오래 있지 않았다. 보통 한 시간 정도 있다가 다른 모임으로 이동했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이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냐고 말이다. 그 녀석에게 뭐라고 따졌지만, "약속은 깨라고 잡는 거야"라는 등의 괴변만 늘어놨다. 결국 참다못한 친구들이 더 이상 그 녀석을 부르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그 녀석을 우리 모임에서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지인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긴 하다. 여러 모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뜻하지 않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지인이 많으면 여러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곤경에서 쉽고 빠르게 빠져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반대로 지인 중에 누군가 힘든 상황에 처하면 내가 도움을 줄 수도 있고, 나의 다른 지인을 통해서 도와줄 수도 있다. 세상은 혼자 살아가기에는 험하다. 지인이 많으면 여러 면에서 상부상조할 수 있다.
아내가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겪은 일이다. 사수와 서로 말이 맞지 않아서 세금 신고에 문제가 생겼다. 잘못하다가는 억대의 가산세를 낼 판이었다. 문제가 발생하면 아내가 금전적 손실을 떠안지는 않겠지만, 책임은 면할 수 없었다. 아무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내가 속한 재무과의 부서장 조차도 말이다. 그래서 아내는 몇 날 며칠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아내는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첫 직장인 세무사 사무실의 실장님에게 연락을 해서 도움을 구했다.
하늘이 내린 천운이었을까. 그 실장님이 근무하고 있는 세무소의 세무사님과 아내 회사가 있는 지역 세무서의 세무서장님이 친구 사이라 어찌어찌 문제를 해결했다. 아내가 실장님과 관계가 좋지 않았다면 도움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알게 된 지 십 년이 다 되어가는 그 실장님과 지금까지도 가깝게 알고 지내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아내는 인맥이 넓다. 넓은 인맥을 지극 정성으로 관리한 덕이었다.
이처럼 인간관계에서도 분산 투자를 하면 그만한 덕을 볼 때가 있다. 아는 사람이 많으면 도움을 주고받을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 골치 아픈 일이 생기기도 한다. 이 사람에게 잘해주면 저 사람이 시샘하기도 한다. 아는 사람이라 도움을 주었는데 뒤통수를 맞기도 한다. 인맥이 넓으면 별별 일이 다 생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마음 편히 지내기 위해 인맥을 넓히지 않는다. 소수에게만 지극정성을 다한다.
인간관계가 좁다고 해서 도움을 못 받는 건 아니다. 지인이 적어도 도움이 필요할 때 어떻게든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지인의 직접적인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지인의 지인을 통해서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지인에게 내가 도움을 줄 수도 있고, 지인의 지인에게도 도움을 줄 일이 생기기도 한다. 물론 인맥이 넓을 때보다 이 모든 일이 적게 생기겠지만. 어쨌든 그런 면에서 인간관계의 넓고 좁음은 우열을 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 게 나을지, 한 바구니에 담는 게 나을지는 계량하기 힘들다. 사람의 성향에 따른 차이일 뿐, 어느 게 더 낫다고 할 수는 없다. 편한 대로 하되 그에 따른 결과, 만족과 스트레스는 각자가 떠안을 뿐이다.
주식 시장에서 분산 투자가 더 나은지, 집중 투자가 더 나은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누구는 분산 투자로 수익을 내고, 또 누구는 집중 투자로 수익을 내기 때문이다. 투자 방식은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다. 우열을 가릴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각자 성향에 맞는 방법으로 투자하는 게 최고다. 분산 투자든 집중 투자든 수익을 내기만 한다면 그게 가장 좋고 옳은 방법이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많이 사귀든 적게 사귀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어느 쪽이든 편한 대로 하는 게 최고다. 나는 인맥이 좁다. 그래서 한때 인맥이 넓은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넓은 인맥을 통해 다양한 유익을 얻을 수 있으니까. 한때 나도 인맥을 넓혀보려는 시도를 했었다. 하지만 역시나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인맥을 넓히려면 이 사람 저 사람 만나야 하고, 꾸준히 연락을 해야 한다. 그건 내 성향과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결국 인맥을 넓히려는 시도는 포기하고, 내 스타일대로 사람을 사귀기로 했다. 주식 투자도 내 성향대로, 집중 투자하고 있다. 분산 투자를 하려니 집중력이 분산돼서 종목 관리가 어려우니까. 뭐든 내 방식대로 하니 속이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