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1억을 버는 대화 비법
우리 모두가 이렇게 자신에 관해 말하기를 좋아한다면(전달자), 당연히 내 말에 귀를 기울여줄 다른 사람(수신자)이 필요하다. 그러나 경청해 주는 수신자는 주변에 그리 많지 않다. 아니, 단순히 귀만 열어놓고 상대의 말을 듣고 있기는(hearing) 하다. 그러나 귀 기울여 듣지(listening) 않는다. 귀만 열어놓는 것이 아니라 눈과 마음을 열어서 온몸으로 듣는 것이 경청이다. 그럼 왜 사람들은 경청하지 못할까. 앞서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즉, 경청은 타고난 인간의 본능이 아니다. 피나는 인위적 학습이 필요한 훈련이다. 우리 인간이 그렇게 생겨먹었다. 보통 사람은 1분에 120단어를 말하고 600단어를 듣는다. 상대방이 120단어를 말하고 남는 여유 시간에 자신의 답변을 준비하는 것이다.
- <고수의 설득법> 중에서
필자가 다니는 회사의 대표님은 말하기의 달인이다. 달변가라는 말이 아니다. 직원들의 말을 들을 생각은 하지 않고,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한다는 뜻이다. 직원이 업무 보고를 하면 보고 내용을 제대로 듣지 않는다. 보고를 하는 중간에 늘 말을 자르고, 쓸데없는 피드백이나 아예 다른 얘기를 한다. 보고 내용에서 중요한 부분에 집중하지 않고, 매우 사소한 부분에 꽂혀서 엉뚱한 질문을 한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묻거나 책임을 떠넘기며 질책을 한다.
며칠 전에 어이없는 일이 있었다. 마케팅 회의를 하던 중이었다. 마케팅 담당 직원이 우리 회사 제품과 타사 제품의 판매량을 비교하며, 우리 회사 제품의 매출을 높일 만한 마케팅 방안을 제시했다. 보통 대표라면 직원이 제시한 마케팅 방안이 효과가 있을지, 판매 기대치가 어느 정도 되는지 등을 물어보기 마련이다. 필자가 모시는 대표님은 다른 대표들과 결이 다르다. 매출 분석에서 살짝 언급된 거래처명을 이야기하며 그 거래처가 어느 지역에 있는지 물어봤다. 대표님의 평소 모습 때문에 그게 끝은 아니겠지, 설마 했다. 거래처 위치를 물어본 이유가 있겠지 싶었다. 해당 거래처 상권 분석 자료나 유동 인구 연령층 등 당연히 날카로운 분석 자료를 요청할 거라고 예상했다. 대표님이니까.
하지만 그건 지나친 기대였다. 그 질문이 끝이었으니까. 질문을 받은 직원이 거래처 위치를 답했다. 그 답에 대표님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회의를 계속 진행하라는 말도 없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싶었다. 회의실에 얼마간 정적이 감돌았다. 직원들의 표정을 보니 다들 당황스러워했다. 보고하던 직원이 너무 어색했는지 머뭇거리다 보고를 이어나갔다.
필자 회사의 대표가 직원들이 업무 보고를 할 때 보고와 관련 없는 질문을 하고, 회의 시간에 엉뚱한 말을 하는 이유가 있다. 직원들의 말을 경청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나는 대표다"라는 권위를 늘 보여주고 싶어 한다. 그 권위를 쓸데없는 말로 세운다. 온갖 질문을 해야 '우리 대표님은 생각이 깊고, 혜안이 밝은 분'이라고 직원들이 생각하는 줄 아는가 보다. 착각이 너무 심하다. 대표가 자신의 말에 도무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원성이 직원들 사이에 가득한 걸 알면 달라질까.
사람들은 보통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보다는 자신이 말하는 걸 좋아한다. 물론 예외가 있긴 하다. 내성적인 사람은을 예로 들 수 있다. 내향인은 말하기보다 듣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말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그건 낯선 사람들과 있거나 어색한 환경에 있어서 그런 것뿐이다. 내성적인 사람도 마음이 잘 맞는 사람과 대화하면 듣기보다는 주절주절 말을 하게 된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기보다는 자신이 말하는 걸 선호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고, 인정받고 싶어서이다.
말이라는 행위 혹은 도구는 마음속에 담아둔 감정이나 생각 등을 밖으로 표출해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생각과 감정을 표출함으로써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이때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느끼려면 듣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 누군가 내 말을 들어줄 때 감정적, 정서적 교류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니까.
글도 말과 같은 역할을 하지만, 말처럼 속 시원하지 않다. 글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려면 읽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내 글에 대한 피드백이 나에게 와야 한다. 그래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전문 작가가 아니고서야 피드백, 독자의 반응을 얻기란 쉽지 않다. 즉 글로는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원하는 만큼 느끼기 힘들다.
우리는 나만 가지고 있는 지식과 남들이 겪어보지 못한 경험들을 타인에게 이야기할 때 심리적 우월감을 느낀다. 말하는 그 순간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으로 인해 사람들이 나를 우러러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뛰어난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고 싶어서 자신이 가진 지식과 경험 그리고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쏟아내고 싶어 한다.
사람들은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잘 들어주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같은 부탁이라도 자기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의 요구를 더 잘 들어준다. 왜 사람들은 자기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 사람의 요구를 더 잘 들어줄까?
정서적인 카타르시스 Catharsis가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 진지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슬픔이나 분노감이 해소되고 마음이 후련해진다. 또한 존중받고 이해받는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들어주는 사람에게는 반항할 구실이 없기 때문에 반발심이 생기지도 않는다.
사람들의 마음 문을 열게 하려면 먼저 자신의 귀를 활짝 열어 놓아야 한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입이 아니라 귀에서 나온다. 그래서 카운슬러들은 수련과정에서 말하는 것보다는 제대로 듣는 법을 더 먼저 배운다.
-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 중에서
영업을 잘하려면 입은 닫고, 귀는 열어야 한다. 말을 하고 싶은 욕구를 참아야 한다. 고객이 말을 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영업자가 반대로 한다. 입을 열고 귀를 닫는다. 상품을 빨리 팔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객에게 침을 튀겨가며 상품이나 제품의 장점을 소개한다. 하지만 고객은 듣기 싫은 얘기를 들어야 하기 때문에 영업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을 닫는다.
고객에게 상품을 판매하려면 고객의 마음을 열어야 한다. 고객의 마음이 열리면 영업자의 말에 자연스럽게 귀 기울인다. 고객의 마음을 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객이 말을 하게 해야 한다. 고객이 말을 함으로써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고객이 말을 하게 하려면 몇 가지 대화의 기초를 철저히 지켜야 한다.
1. 고객의 말에 최대한 귀 기울여야 한다.
2. 성의 있게 맞장구를 쳐야 한다.
3. 진심으로 칭찬을 해야 한다.
고객이 말을 할 때 영업자는 말을 가능한 한 줄이고 고객의 말에 최대한 경청해야 한다. 말을 줄이는 대신 마음을 다해 맞장구를 쳐주어야 한다. 그리고 고객의 말에서 칭찬거리를 찾아서 진심으로 칭찬해야 한다. 그럼 고객은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고객 기분이 좋아지면 마음이 조금씩 열릴 것이다. 그럼 자연히 고객은 말이 줄어들고, 영업자의 말을 듣기 시작할 것이다. 상품 판매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핵심 요약
고객은 처음부터 영업자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고객의 마음을 열려면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고객이 마음을 열기 전까지는 말을 줄이고, 고객의 말을 최대한 경청하고, 고객의 말에 최대한 반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