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게 어딨어. 나한테 말해준 적 없으면서!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 직후 퇴직금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 직장인에게 퇴직금은 제2의 보너스가 아니던가! 회사를 퇴사하면 다른 회사에 입사하기 전까지 생활을 어떻게 유지해야 할지 막막하기 마련. 퇴직금은 그 공백기를 버티게 해주는 산소호흡기다. 그동안 바빠서 가지 못했던 여행을 가거나 사지 못했던 물건을 살 수 있게 해주는 여유자금이기도 하다. 그런 퇴직금을 못 받으니 얼마나 황당하고 분하던지! 1등에 당첨된 로또 복권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퇴직금을 왜 받지 못했냐고? 담당자 말로는 매달 월급에 포함해서 지급했다고. 연봉을 13분의 1로 계산해서 지급했다는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지! 나는 들은 바가 전혀 없는데? 그런 내용을 내게 구두로 설명한 적도 없고, 근로계약서에 쓰여있지도 않았다. 심지어 급여명세서에도 그런 내용이 전혀 없었는데? 나도 모르는 퇴직금을 지급했다니? 알았으면 그렇게 안 받았지!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사장님을 만났다. 사장님을 만나기 전에 통화했는데, 사장님 반응을 살피니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나름의 자료를 준비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근로기준법을 살피고, 노무사에게 문의하여 연봉에 퇴직금을 포함하여 지급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알았다. 사장님을 만나서 이 부분을 설명했다. 결론은, 받지 못했다. 해결 방법이 있긴 했다. 지급받은 퇴직금을 반환하고, 다시 정산해서 퇴직금을 받으면 된다. 해결 방법 자체는 간단하지만, 이미 받은 금액에 임금 인상분을 계산해서 다시 받아도 큰 차이가 없으니 하나마나다. 개운하진 않지만, 퇴직금 문제는 그렇게 끝? 아니, 아직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었다. 연봉에 포함된 퇴직금이 퇴직금이냐 통상임금이냐의 여부. 어느 쪽이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
퇴직금을 연봉에 포함하여 지급하는 것은 위법이다. 퇴직금 지급 규정에 명백히 어긋난다. 위법이긴 하지만, 예외 사항이 있다. 연봉에 퇴직금을 포함해도 매월 지급하지 않고 퇴직 시 지급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퇴직금 중간 정산은 다른 문제이므로 패스) 그러한 예외 사항을 어기고 매월 지급하는 기업이 있다. 악의로 법을 어기지는 않을 것이다. 기업 부담을 줄이려고 위법을 저지르겠지. 퇴직금은 목돈이기에 일시금으로 지급하면 (특히 중소기업은) 부담된다. 부담을 줄이려면 목돈 지출을 피해야 한다. 사정이 그러면 근로자에게 입사할 때 양해를 구하고, 미리 지급할 것을 합의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위법이고 그것을 악용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사정이 그렇다면 누가 이해 못 하겠는가?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합의하지도 않은 채 기업이 일방적으로 지급하는 행위는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기업이 근로자에게 알리지 않고 퇴직급을 미리 지급하는 것은 명백히 기만행위이다. 실제로는 연봉을 더 적게 주는 셈인데, 근로자가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얼마나 기가 막히고 분하겠는가. 연봉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더 적은 연봉을 받고 있었으니 “괜찮아” 하고 쿨하게 넘어갈 사람이 있을까. 누구든 분노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 빠지지 않으려면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때 내용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근로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지 않으면 구두로 확인해야 한다. 근로자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여기저기 알아본 결과 내가 이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받은 퇴직금은 퇴직금으로 인정이 안 되고 통상임금이 되어 별도로 퇴직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것을 입증할 자료는 충분했다. 사장님께 상황을 설명해 드렸지만, 인정하지 않았다. 노동청에 신고하면 내가 생각한 대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몸담았던 회사가 속한 업계가 너무 좁았기 때문이다. 소문이 잘못나면 이직할 때 곤란을 겪을 수 있기에 최대한 원만히 해결하고 싶었다. 내가 택한 방법은 노동청에 신고하는 대신 위로금을 받는 것이었다. 그렇게 약간의 위로금만 받고 상황 종료. 화도 나고 아쉽기도 했지만, 그걸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퇴직금 별도 지급은 너무나 당연한 사항이다. 입사 시 따로 확인할 필요가 없을 만큼 당연한 내용이다. 당연한 거라고 내가 너무 방심했나? 그래도 확인했어야 했나? 씁쓸한 경험을 거울삼아, 그 후로 회사를 옮길 때마다 퇴직금 지급 방식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