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간 모태솔로의 신혼일기 #3

설레는 첫나들이 - 우리는 이제 친밀한 연인

by 인생짓는남자

무엇이든 처음은 설레고 긴장되는 법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입학식 날과 첫 수업 날이 그렇고, 새로운 회사 첫 출근날이 그렇다. 첫 데이트는 더욱더 그렇다. 첫 데이트는 인생에서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이지만, 따뜻한 봄기운을 느낄 새가 없다. 너무나 긴장되고 떨리며, 옷매무새부터 행동, 말, 동선 등 모든 게 신경 쓰이고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아직 관계가 안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냐에 따라 밥 위에 있는 보기 좋은 반숙 달걀이 터지는 순간을 맞이할 수도 있다. 곧장 이별행 열차를 타는 거다.





아내와의 첫나들이는 서울시 구로구에 있는 ‘푸른수목원’에서 했다. 사귄 지 6일째. 푸른수목원을 택한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수목원으로 가는 길목에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길이 있는데, 정말 운치 있고 정감 넘친다. 나는 곧게 뻗은 철길만 봐도 기분이 좋다. 어릴 적 철길 옆 방방에서 놀았던 추억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철길 자체만으로도 멋진 사진 배경이 되고, 철길 주변에 여러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어 미술작품 감상할 수도 있다. 일거양득. 푸른수목원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다. 게다가 데이트 코스를 잘못 정하면 많이 걷게 된다. 푸른수목원은 규모가 크지 않아서 그리 많이 걷지 않아도 된다. 구두를 신은 여자 친구에게 이만한 배려가 또 있겠나!




첫나들이라 무척 설레었다. 기분이 좋긴 했는데 너무 불편했다!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연인인데! 손도 못 잡고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걸어야 했으니까, 불편할 수밖에. 이 불편함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연인이 거치는 시기니까. 자칫 옷깃이라도 스치면 큰 잘못을 한 것처럼, 성추행범이라도 된 듯 얼른 거리를 벌리는 시기다.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이 이러한 인간관계에서의 거리를 연구했다. 그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관계에서의 거리는 친밀함의 거리(Intimate Distance Zone), 개인적인 거리(Personal Distance Zone), 사회적인 거리(Social Distance Zone), 공적인 거리(Public Distance Zone), 이렇게 네 가지가 있다. 친밀함의 거리는 0-50cm 사이, 개인적인 거리는 50-120cm, 사회적인 거리는 2-4m, 공적인 거리는 4m 이상이다. 친밀함의 거리는 아무나 못 들어간다. 가족이나 연인, 친구 등 유대 관계가 친밀해야만 허락되는 거리다.

우리는 아직 개인적인 거리를 유지했다. 물론 실제로는 거의 붙어서 걸어 다니기는 했지만, 심리적으로는 그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 그래서 불편했다. 아직은 남처럼 느껴졌다. 아내의 친밀함의 거리에 언제 들어갈 수 있을지, 그날이 빨리 왔으면 싶었다. 설마 그날이 오기 전에 헤어지진 않겠지?




다행히 나들이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노른자가 터지지 않았다. 나만 그렇게 생각했을까? 아내는 속으로 어떻게 생각했을지 모를 일이다. 어깨에 손을 얹고 찍은 사진이 있는 걸 보면 나쁘지 않았나 보다. 어깨에 손을? 그렇다. 나는 그날 아내의 친밀함의 거리를 침범했다... 친밀함의 거리가 그렇게 빨리 깨질 줄이야! 전혀 예상 못 한 일이다. 사진이 큰 몫을 했다.


수목원에서 사진을 열심히 찍었는데, 아무리 찍어도 너무 어색하게 나오는 게 아닌가! 사진이 너무 못 나와서 어. 쩔. 수. 없. 이 아내의 영역을 침범했다. 아니, 이렇게 쓰면 왠지 내가 늑대처럼 보일 테니, 그게 아니다. 우린 그 행복한 순간을 사진에 온전히 담기 위해 좀 더 다정하게 사진을 찍기로 합의했다. 그 어떤 강요도 없었다. 명백히 서로 합의했다. 그렇게 우리는 첫나들이 때부터 ‘친밀한’ 연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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