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노동’이라는 말이 있다. 스웨덴 사회학자인 ‘로랜드 폴슨’이 처음 사용한 말이다. 이 말은 직장에서 공허하게 보내는 시간을 뜻한다. 쉽게 말해서 ‘딴짓’을 가리킨다.
통상 근로시간 동안 1분, 1초도 한눈팔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화장실도 못 갈 만큼 바쁘지 않은 이상 8시간 동안 일에만 전념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집중력과 체력에 한계가 있고, 일하기 싫어서 잠깐씩이라도 딴짓을 하기 마련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딴짓과 관련된 사건이 터진 적이 있다.
본부장님이 어느 날 직원들 의사와 상관없이 책상 배치를 바꿨다. 마주 보고 앉는 대향식 구조를 등을 맞대고 앉는 배면식 구조로 바꿨다. 말로는 공간이 답답해 보인다는 이유에서였다. 모든 직원이 답답하지 않다고 말했는데도, 그 공간에 있지도 않은 본부장님의 독단으로 배치를 바꿨다. 알고 봤더니 답답해서 바꾼 게 아니다. 직원들의 딴짓 때문이었다.
어떤 직원이 본부장님에게 다른 직원이 업무 중에 팟캐스트를 듣는다는 제보를 했다. (굳이 그걸 이르냐!) 우리 회사는 직군의 특성상 이어폰 꼽고 음악을 듣는 것을 허용한다. 집중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화이트 노이즈가 필요하다. 본부장님이 내게 나중에 말해줬는데, 팟캐스트는 집중해서 듣게 되기 때문에 업무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서 그 직원이 팟캐스트를 못 듣게 했다고 한다. (나한테 그걸 왜 말한 건지...) 자리 배치가 배면식으로 바뀌고, 그 직원이 창가 쪽에서 통로 쪽으로 이동한 걸 보니 자리를 바꾼 이유가 있는 게 확실했다. 다른 직원들도 딴짓을 할 테니, 아무도 딴짓을 못하게 하려는 조치가 분명했다. 아무래도 등 뒤에 눈이 있으면 조심하게 되니까.
2017년에 사람인이 직장인 71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80.6%가 공허노동을 한다고 응답했다. 공허노동을 하는 이유는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가 가장 많았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할당 업무가 끝나도 정시 퇴근을 할 수 없어서, 업무량이 적어서 등의 대답이 뒤를 이었다.
직원들이 딴짓을 하는 걸 무조건 잘못됐다고 봐야 할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적당한 딴짓은 필요악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이 사람의 집중력은 한계가 있으니까. 딴짓을 적당히 하면 업무 집중력과 생산성이 높아진다. 문제는 딴짓 자체에 있지 않다. 그것을 적당히 하지 못하는 게 문제다. 사람은 초콜릿을 많이 먹으면 몸에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 맛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사람은 좋지 않은 것에 더 빠지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은 근로자 스스로 자기 일에서 기쁨과 보람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글쎄다. 나쁜 대안은 아니지만, 과연 일에서 기쁨과 보람을 찾을 수 있을까?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지속해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기는 힘들 것이다. 사람은 무엇이든 쉽지 질리니까. 결국 해결책은 각자의 양심에 있다. 아니면 회사가 철저히 감시하거나.
자리 배치를 배면식으로 바꿨지만, 직원들은 여전히 딴짓을 한다. 다른 직원을 이른 직원도 딴짓을 하고, 나도 하고, 모두가 한다. 본부장님의 임기응변은 완전히 실패한 셈. 본부장님이 업무 시간에 직원들 가운데 서 있지 않은 이상 딴짓을 100%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직원들은 계속 딴짓할 것이고, 본부장님은 그것을 어느 정도 허용해 줄 것이다. 그러다가 또 누가 첩자 노릇을 하거나 이상한 낌새를 감지하면 경고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