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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짓는남자 Feb 18. 2019

회식이 업무의 연장이라고?

지금 다니는 회사 구인 공고란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회식 없음’


처음 이 문구를 보고 완전 ‘혹’했다. 회식을 싫어해서 사실이길 간절히 바랐다.


‘정말 사실일까?’


한편으로 의심도 했다. 회식이 없는 회사는 보지 못했으니까. 알고 봤더니 거짓말이었다! 회식이 있었다. 다만 퇴근 후에 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회식이 잦지 않았다. 점심에 회식했고, 한두 달에 한 번 했다. 그렇게 보면 거짓말은 아닌 셈이다.

입사 후 독특한 회식 문화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회식을 맛집에서 했다. 맛집이라니? 본부장님이 미식가라 아무 데서나 회식을 하지 않았다. 무조건 회사 주변 맛집을 검색해서 고고씽~ 덕분에 회사 주변 맛집을 꽤 알게 됐다.

회식을 점심시간에 하니 뒤풀이를 할 수 없었다. 회식 후 바로 일을 해야 해서 2차, 3차 회식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뒤풀이를 아예 하지 않은 건 아니다. 2차를 갈 때도 있었다. 2차 회식 장소는 카페. 카페도 아무 데나 안 간다. 미식가의 예민한 입맛에 맞는 카페만 찾아간다. 카페에서 맛있는 음료수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나오면 최소 오후 2~3시. 오후 근무 시간이 줄어든 건 덤이다. 이러니 회식에 빠져들지 않겠는가.


‘이 좋은 회식을 왜 가끔 해!’


회식을 싫어하던 내가 회식을 손꼽아 기다리기 시작했다.




우리 회사야 회식 문화가 독특하니 회식에 빠져들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거다. 하지만 다른 회사는 사정이 다르다는 걸 알고 있다. 지인들만 해도 대부분 회식을 싫어한다. 회식을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두말할 것 없이 과도한 술 문화 때문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어라 마셔라 해야 하니까. 물론 사회 인식이 많이 변해서 예전처럼 강제로 술을 권하는 문화가 많이 사라지긴 했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아서 여전히 골칫거리다.

회식을 싫어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회식 날을 미리 알려주면 좋으련만. 당일, 퇴근 전에 알려 주는 회사가 있다! 회식을 업무의 연장이라고 생각하는,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직도 있어서 빠질 수 없다. 선약이 없으면 다행이지만, 있으면 양해를 구하고 취소해야 한다. 정말 화나는 일이다.

또한 회식을 하면 2차, 3차, 4차, 5차... 회식 릴레이가 펼쳐진다. 회식을 마치고 집에 가면 깊은 새벽. 회식은 야근이 아니기에 수당도 못 받는다. 그렇다고 오후 출근을 시켜주는 것도 아니다. 몇 시간밖에 못 자고 정시 출근을 해야 한다. 몸은 천근만근, 업무 능률이 떨어지는 건 내 책임이다. 이것뿐이면 참는다. 그날 하루만 꾹 참고 일하고, 퇴근해서 평소보다 일찍 자면 되니까.

앞서 말했듯이 최고참 상사가 회식을 업무의 연장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골치다. 회식 도중 먼저 집에 갈 수도 없다. 회식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상사가 집에 가자고 할 때까지 졸졸졸 회식 릴레이에 동참해야 한다. 그뿐인가. 회식 자리에서 상사의 온갖 무리한 요구를 다 들어줘야 한다. 상사의 비위를 맞춰줘야 한다. 술 취해서 직원들을 혼내고,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까지 하면 분위기 최악.




회식은 상하 직원들이 함께한다는 점에서 공적인 자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일하는 시간이 아니다. 회식은 퇴근 후에 한다. 직원들의 개인 시간을 회사가 강제로 점유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사적인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최고참 상사가 이러한 회식의 특성을 분간 못하면 회식은 정말 불편해진다. 피곤하다.

고용노동부가 못박았듯이 회식은 업무의 연장이 아니다. 회식은 회식일 뿐이다.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 음식을 먹는 게 회식이다. 그냥 맛있는 음식 먹는 거로 끝내면 안 되나? 직원들에게 그동안 고생했다 한마디만 하면 안 되나? 회식을 단합회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회식 전체 분위기는 특성상 직급이 가장 높은 사람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 부어라 마셔라, 그리고 꼰대 짓 하지 말고 그저 고생한 직원들에게 그동안 수고했으니 맛있는 거 먹고 힘내라 격려만 하고 알아서들 먹고 가라 하면 멋진 상사가 될 수 있다. 최고참이 분위기를 그렇게만 이끌어 준다면 회식은 업무의 연장이 아니라, 말 그대로 기분 좋은 ‘회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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