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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짓는남자 Dec 25. 2018

그래도 그렇게 살지 마라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말아야지!

나는 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무대 위에서 펼치는 연기를 말하는 게 아니다. 물론 그 연기도 싫어한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게 굉장히 어색하고 쑥스러우니까. 필자가 말하는 연기는 그게 아니다. 가식적인 행동을 말한다. 싫어도 좋은 척, 웃기지도 않은데 웃긴 척,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야 하는 연기를 말한다.

나만 연기를 싫어하는 게 아닐 것이다. 누군들 그런 연기를 하고 싶겠는가. 아마 좋아서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들 살기 위해 할 뿐. 연기는 사회생활을 하는 데 꼭 필요한 처세술이다.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습득해야 하는 기교다. 습득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들다. 특히 직장에서 이 기술을 시전하지 못하면 승진하지 못하거나 정년퇴직이 앞당겨질 수도 있다. 빨리 습득해야 하는 기술이다.

미련하게도 나는 그 기술을 습득하지 않았다. 연기란 연기는 다 싫으니까. 지금이 조선 시대였다면, 나는 강직한 선비로 불렸을지도 모른다. 대신 한양에 있는 으리으리한 궁에는 입성하지 못했겠지. 방구석에서 문자만 읊조렸겠지. 그래도 상관없다. 아무래도 좋다. 하기 싫은 건 절대 하기 싫으니까.

아이고, 그놈에 똥고집... 생각해 보니 괜한 고집을 부리는 건 아닌가 싶다. 연기를 잘하는 동료는 승승장구하기 때문이다. 저쪽 연기의 세계도 그렇잖은가.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탑배우가 된다. 물론 긴 무명 시절을 거쳐야 하지만, 탄탄한 연기력을 갖추면 결국 탑의 반열에 오른다. 입사 동기도 탄탄한 연기력을 갖췄다. 나는 그가 곧 탑배우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과장님”


아니나 다를까. 어제까지 동료였던 그가, 어느 날 느닷없이 과장이란다. 예고도 없이 말이다. 기가막히다! 분명히 나한테 본부장님 욕을 폭우와 같이 주르륵주르륵 쏟아내던 그였는데. 본부장님이 시키는 대로 하지 말고 우리 페이스대로 일하자며!? 나는 그의 말대로 했는데... 상황을 보니 본부장님한테 가서는 내 뒷담화를 하고, 입에 발린 소리만 한 것 같다. 결국 나에게 한 말은 마음에도 없는 말이었나보다. 아니면 나를 밟고 올라가기 위해 안심시키려던 수작이었는지도. 나는 그렇게 동료의 명연기에 속아넘어갔다. 내가 바보지. 이제부터 나도 연기를 배워볼까?




세상에서 어떤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산다. 또 다른 사람들은 살아가기 위해 산다. 살아남기 위해 사는 사람은 정말 치열하게 산다. 남보다 앞서기 위해 발버둥 친다. 남보다 뒤처지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내가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남을 짓밟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다. 세상은 정글이니까. 살아가기 위해 사는 사람은 자기 페이스대로 산다. 주어진 일을 성실히 처리한다. 욕심이 없다. 하늘을 보지 않는다. 그냥 쭉 내 걸음대로 길 가는 걸로 만족한다. 좋게 말하면 성실하고, 나쁘게 말하면 바보 같다.

둘 중 어떤 방식이 옳을까? 사실 이 문제는 옳고 그름,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다. 다름의 문제다. 사회라는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방법을 택할지, 선택의 문제다. 따라서 내가 동료에게 싫은 소리를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그는 자신이 택한 방식으로 살아갈 뿐이니까.

하지만 아쉽긴 하다. 그렇게까지 열연할 필요가 있었냐고 묻고 싶다. 물론 누군가는 위로 올라가야 하고,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올라가고 싶으면 실력만 한껏 높이면 되잖은가. 굳이 사람을 속일 필요가 있나? 그가 택한 방식은 존중하지만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말아야지. 아무리 자기 몫은 자기가 챙겨야 한다지만, 뒤통수까지 칠 필요가 있었나?


"야! 아니, 과장님. 그렇게 살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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