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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짓는남자 Dec 26. 2018

나는 심리 상담가가 아니야

업무 외 일을 시키려면 월급을 올려달라!

오늘도 어김없이 상사의 하소연이 쏟아졌다. 업무 보고를 하려고 상사에게 갔다가 난데없이 쏟아진 하소연에 나는 자연스럽게 심리 상담가 모드로 전환했다. 어처구니없지만, 자주 있는 일이다. 상사는 나에게 하루가 멀다 하고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한번 고민을 뱉어내기 시작하면 30분은 기본이다. 1시간도 우습다. 그것도 업무 시간에 말이다. 나는 분명히 업무 보고를 하러 들어갔는데 웬 심리 상담이람. 자주 있는 일이라 이제 아무렇지도 않긴 하지만, 내 업무 시간이 줄어드니 불만이 쌓일 대로 쌓였다.

그래. 상사의 하소연을 받아주는 심리 상담가의 역할이 월급에 포함되어 있다면 기꺼이 감당하겠다! 혹시라도 상사가 ‘당신은 내가 주는 월급을 받으니, 당연히 내 하소연을 들어줘야 해’라고 생각한다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지만 기꺼이 모드 전환을 하겠다. 근데 그럼 나는 언제 일하냐고!? 하루에도 몇 번씩 심리 상담을 해주는 통에 업무 시간이 부족하다고! 그래놓고 일을 빨리하라고 채근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누구 때문에 일을 빨리 못하는 건데!

애써 좋게 생각하긴 했지만 의문이 사라지지 않는다. 부하 직원으로서, 내가 받는 월급에는 상사의 하소연을 들어 주는 값까지 포함되어 있을까? 나는 당연히 상사의 하소연을 들어줘야 할까? 이것은 직장에서 겪는 다른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욕을 먹는 것 말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상사에게 욕을 얻어먹었다면, 욕먹는 값이 월급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해라”


그럴듯한 위로지만,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월급과 불합리한 대우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려던 그 시도는, 의도는 그럴듯하지만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다. 잘못된 건 잘못된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종노릇을 해도 된다는 말도 성립한다. 극단적인 주장이지만, 그렇다고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는 불합리한 상황에 불만을 갖지만, 이의제기할 용기를 쉽게 내지는 못한다. 현실적으로 개선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서 문제를 제기해도 대개 개선되지 않는다. 땅콩 회항 사건이 보여주듯이, 개선은커녕 도리어 또 다른 불합리한 상황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니 누가 용기를 낼 수 있겠는가. 결국 힘을 가진 갑이 이기기 마련이다. 갑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슬픈 현실이다.




그래도 나는 그나마 낫다. 지인은 나보다 더 어이없는 상황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상사에게 매일 두세 시간씩 잔소리를 듣는단다. 그것도 오전에 말이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잔소리부터, 그것도 무려 두 시간 이상 듣고 시작하면 일할 의욕이 생기겠는가! 아침에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잔소리를 들었으니 업무 시간도 너무 부족하다. 그런데 상사가 어김없이 오후에 지인을 불러서 일을 얼마큼 했냐고 확인한단다. 이만큼 했다고 하면 왜 그것밖에 못 했냐고, 능력이 없어서 그만큼밖에 못 하는 거라고 혼이 난단다. 이런데도 월급 운운 할텐가!? 어쨌든 이런 지인에 비하면 나는 양반이다. 그렇게 혼나지는 않으니.

하루라도 하소연을 하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치나 보다. 내일은 또 어떤 하소연을 할까. 어휴, 나도 모르겠다. 상담을 해줘도 월급이 오르지는 않지만, 괜히 싫은 티를 냈다가는 찍힐 테니 아무 말 않고 묵묵히 들어줘야지.


‘나는 넓은 마음의 소유자다’


이렇게 나 자신을 위로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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