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처세술은 필요할까? 필요하지 않을까? 사람in이 직장인 67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 따르면 94.4%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직장인들은 절대적으로 처세술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다. 나도 처세술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승승장구하기 위해서? 아니다. 직장생활을 원만하게 하기 위해서다.
처세술에 대해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처세술을 아부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처세술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둘은 같은 게 아니다. 사전적으로 처세술은 ‘사람들과 사귀며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나 수단’이고, 아부는 ‘남의 비위를 맞추어 알랑거리’는 것이다. 처세술은 처세술이고, 아부는 아부지만, 굳이 둘을 엮자면 아부는 처세술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사람in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가장 효과적인 처세술은 빠른 눈치로 상황 판단, 원만한 인간관계 유지, 업무/대화 시 상사에 맞추기, 성과를 적극적으로 어필, 겸손한 자세 등이다. 직장생활을 편하게 하려면 다양한 처세술을 적절한 시기에 구사해야 한다.
나는 처세술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고지식해서 그렇다고 해야 할까? 외골수라서 그렇다고 해야 할까? 그게 그거지만, 어쨌든 처세술이 그리 좋게 느껴지지 않는다. 얍삽한 잔기술처럼 느껴져서 될 수 있으면 멀리한다. 그렇다고 아예 사용하지 않는 건 아니다. 가능한 한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려 한다. 업무, 대화 시 최대한 상사에게 맞춘다. 그것뿐이다. 이러면 나도 처세술을 잘, 많이 사용한다고 해야 하나?
처세술과 관련해서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다양한 처세술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사람이 승승장구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진급을 잘한다. 성과를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자기 몫을 칼 같이 챙기는 처세술의 달인은 절대 손해 보지 않는다. 그래서 진급을 잘하나 보다. 부정적으로 보면 간사하다고 할 수 있지만, 좋게 보면 그만큼 영리하다고 할 수 있다. 그걸 영리하다고 보는 사람이 많지 않겠지만.
나도 그런 사람에게 당했다. 입사 동기가 먼저 진급을 했다. 그는 성과를 굉장히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성과를 쏟아낸다거나 두드러진 성과를 낸 것도 아니다. 하지만 포장을 워낙 잘해서 누가 봐도 성과를 많이 내고, 실력이 뛰어난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본부장님과 업무, 대화할 때 리액션을 끝내주게 하고, 비위를 잘 맞춰주었다. 그 결과 예정에도 없던 진급이 됐다. 그가 영리한 걸까? 내가 바보 같은 걸까?
좋든 싫든 처세술은 선택이 아닌 필수인 것 같다. 직장생활을 잘하기 위해서, 아니 정글 같은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말이다. 사람in이 17년에 직장인 428명에게 위에 설문과 같은 내용으로 설문 조사를 했다. 90.4%가 처세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보다 훨씬 전인 11년에도 직장인 2322명을 대상으로 같은 설문 조사를 했는데 무려 97.8%가 필요하다고 했다. 어제나 오늘이나 대다수가 처세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보면, 처세술 없이는 직장생활을 잘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아니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처세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살아남으려면 남보다 먼저 진급해야 한다. 진급하려면 처세술에 능해야 한다.
처세술 없이 직장생활을 할 수는 없을까? 그냥 능력대로 평가받고, 평가하면 안 될까?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계산적으로 대하지 말고, 그저 사람 대 사람으로만 대하면 안 될까? 다른 나라는 모르겠고,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언젠가는 가능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다음 세대에서도, 다다음 세대에서도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의 성향이 그러니까. 성향은 쉽게 바뀌지 않으니까.
우리나라 사람은 타인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거나 대하지 않는다. 나와 내가 친한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혹은 나한테 이득이 되는 사람인지, 지극히 주관적이고 계산적으로 평가하고 대하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늘 끼리 문화나 당파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남 잘되는 꼴은 못 보고, 남을 밟고서라도 내가 더 잘 돼야 한다. 그게 우리나라 사람이다. 나도 우리나라 사람이니 이제부터 처세술의 달인이 될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