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결혼 생활
로맨스 영화를 보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게 저희 부부의 일상이에요.
주인공들이 그려가는 아름답고 가슴 시린 사랑 이야기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영화에 몰입할수록 저도 모르게 저의 그 시절 추억에 잠기게 되더라고요. 제가 만들어 나가던 로맨스 이야기. 그 이야기에 다시 빠져들면 그때 느꼈던 두근거림과 가슴 저미었던 감정이 떠올라요.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인해 가슴이 쿵쾅거리고 마냥 설레던 그때. 작은 실수로 인해 이별하면 어쩌나 늘 불안하고, 불안해서 더욱 조심했던 그때. 영화를 보는 내내 주인공 남녀에게 감정이 이입되어 그때 감정이 생생하게 다시 살아나더라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로맨스 영화를 보는 거겠죠. 되돌아오지 않는 그 시절을 다시 맛보려고요.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오기 시작하면 아련한 추억이 이내 희미해져 버리고, 즉시 현실로 돌아와요. 현실로 돌아와서 제 옆에 누워있는 아내를 보면, 꿈을 꾸는 것 같아요. 영화에 너무 몰입해서인지 제 옆에 있는 아내가 진짜 사람 같지 않아요. 제가 결혼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어젯밤에 영화를 보며 아내가 물었어요.
“우리 연애할 때, 심장이 막 뛰고 아프다더니 지금은 안 그래?”
저는 이렇게 대답했죠.
“당연하지! 지금도 가슴이 뛰면 잘못된 거야.”
연애할 때는 매일 헤어져요. 데이트가 끝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면 다음 날까지 볼 수 없어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날이 셀 수 없이 많아요. 날마다 애달프고, 애달프기 때문에 데이트하는 날이 무척 기다려지죠. 그래서 가슴이 쿵덕쿵덕 뛰는 거겠죠.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아침에 보고 밤에도 보고, 오늘 보고 내일도 봐요. 볼 수 없는 날이 셀 수 있을 만큼 적어요. 다음 데이트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돼요. 그래서 더 이상 애달프지 않고, 가슴이 뛰지 않는 거겠죠. 아니 가슴이 뛰지 않는 게 정상이겠죠.
비록 가슴이 뛰지는 않지만, 이제는 연애 때 느껴보지도 맛 보지도 못했던 감정을 느껴요.
마음이 정말 편안해요. 매일 볼 수 있으니까요. 헤어지지 않을까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되니까요. 연애할 때처럼 오늘은 뭐 할까, 내일은 뭐 할까 이제는 굳이 머리 싸매며 계획하지 않아도 돼요. 물론 그때는 그 자체도 기쁘긴 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밖에 나가서 데이트하지 않아도 집에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이제는 가슴 시리고 아픈 느낌이 없는 게 사실이에요. 아내를 보고도 심장이 두근거리지 않고 시리지 않는다는 저의 대답은, 아내가 소중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에요.
너무나 아끼는 물건이 있으면 옥이야 금이야 하게 되죠.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고이 모셔둬요. 혹여나 티가 묻거나 상처 나지 않을까 꽁꽁 싸매어 보관하죠. 평생 간직하기 위해 안전한 곳에 둬요. 아내는 그런 존재예요.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떠나가지 않을까 불안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으니 마음이 굉장히 편안해요. 이 사람과 헤어지면 어쩌나 날마다 염려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게 옛 추억이 된 채 평생 함께 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요. 정말 신기해요. 그리고 평생 함께할 수 있기에 아내가 더없이 소중해요.
아내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 감정을 글로 표현하고 싶지만, 아무리 이렇게 저렇게 써봐도 다 표현할 수가 없네요. 하지만 제가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다 아실 거에요. 느껴보신 분들은 말이죠.
연애할 때의 쿵덕거림과 결혼을 해야만 느낄 수 있는 소중함 중 하나만 택하라고 한다면, 저는 주저없이 소중함을 택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