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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짓는남자 May 02. 2019

33년간 모태 솔로의 신혼일기 #24

우리는 결혼하자마자 방귀를 텄다.

결혼하면 불편한 게 생긴다. 불편한 점이 여러 가지 생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다른 환경에서 다른 생활 방식으로 수십 년 동안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났으니까. 불편한 게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불편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불편한 게 여러 가지이지만, 가장 불편한 건 아마도 생리 현상을 해결하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방귀 말이다. 방귀가 뭐라고... 마음대로 뀌지를 못한다!

많은 부부가 배우자가 옆에 있을 때 방귀를 뀌지 못한다. 배우자가 없을 때 마음껏 일을 본다. 배우자가 옆에 있을 때 화생방 상황이 발생하면 억지로 참거나 화장실이나 방 혹은 거실 등 배우자가 없는 공간으로 슬그머니 가서 해결한다. 그냥 그 자리에서 바로 해결하는 게 편한 대도 말이다.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우리 부부는 결혼하자마자 아무렇지 않게 텄다. 하지만 많은 부부가, 아주 많이 과장해서 대부분의 부부가 결혼하고 수년이 지나서야 겨우 튼다. 방귀 트는 게 뭐 어렵다고 그러는지 이해가 안 된다.

그렇다고 이해가 전혀 안 되는 건 아니다. 방귀의 역동적인 소리는 듣기만 해도 괜히 찝찝하다. 방귀 소리는 그저 ‘뿌웅’ 소리일 뿐이다. 세상에 즐비한 소리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방귀’ 소리라는 이유만으로, 냄새가 안 나도, 소리만 들어도 왠지 찝찝하다. 소리만 들어도 괜히 냄새가 느껴지는 듯하니 기분이 좋지 않다. 거기에 냄새까지 나면 최악이다. 냄새도 그냥 냄새가 아니라 배 속에서 푹 발효된 냄새라면 정말 “오, 마이 갓”이다. 그 냄새는 홍어 삭힌 냄새와 견줄 만큼, 아니 그보다 더 강력하게 독하다. 그건 내가 뀐 방귀라도 용납할 수 없다! 내 방귀도 그런데 배우자 방귀라면 더욱 용납이 안 될 수밖에.




앞서 말했듯이 우리 부부는 결혼하자마자 방귀를 텄다. 아무렇지 않게 말이다. 다른 부부들처럼 힘들게 지내지 말고, 편하게 방귀를 뀌자는 말을 하긴 했다. 서로 흔쾌히 동의했다. 방귀를 트니 세상 이보다 편할 수가 없었다. 다른 부부들은 왜 그렇게 불편하게 사는지 모르겠다. 방귀를 트면 정이 떨어진다나. 왜 정이 떨어지냐고! 부부인데, 방귀가 뭐라고 정이 떨어지고 환상이 깨지냔 말이다. 그걸 트면 여자 사람, 남자 사람으로 인식되어 버리나? 트는 순간 가족이 되어버리는 건가? 아니다. 그건 생각하기 나름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아무렇지 않게 일을 본다. ‘뿌우~~~웅!’ 소리가 천둥소리만큼 클 때는 “소리 참 시원하네!~”라며 웃는다. 냄새? 그까짓 거, 냄새가 대수랴! 냄새나면 좀 어떤가! 우리는 냄새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냄새난다며 그냥 웃어넘긴다. 방귀를 뀌든 냄새가 나든 아내는 나의 여자이고, 나는 아내의 남자이다. 서로에 대한 사랑과 환상은 변하지 않았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부부간에 불편하게 살 필요가 전혀 없다. 부부는 0촌이라지 않던가. 헤어지면 남남이라는 서글픈 말도 있지만,  어쨌든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이다. 부모와 자식보다 다 가깝다. 그런 사이에 그깟 방귀도 이해 못 해주나? 방귀보다 더한 것도 용납할 수 있는 사이인데, 그깟 방귀도 이해 못 한다면 정말 애정 없다. 여기에 다 적을 수는 없지만, 우리 부부는 방귀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도 진작 텄다. 더 센 생리 현상, 화장실... 그게 뭔지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부부 사이에는 허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숨기는 것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론 말하지 말아야 할 것, 숨겨야 할 것도 있을 때가 있지만, 그런 경우는 흔하지 않으니 패스. 아무튼 무촌인 부부 사이에 허물이 있다면 관계가 어떻게 유지될까? 그래도 관계는 잘 유지 되겠지만, 글쎄... 서로 알게 모르게 불편한 구석이 생기고, 서로의 애정에 조금은 영향을 주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 말이 절대적이지는 않다. 모든 부부에게 해당하는 말은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그런 불편한 점들이 서로의 관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부부도 있다. 오히려 서로를 배려하고, 아끼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서로의 관계를 위해 불편한 요소가 필요한 부부들이 있긴 하다.

아무튼 우리 부부는 허물이 없고, 거리낄 것도 없다. 태초의 모습 그대로 서로 마주한다. 민낯으로 서로를 대한다. 그 덕에 우리는 정말 가깝고,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한 사이가 됐다. 이것이 부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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