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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짓는남자 May 11. 2019

언제까지 지옥철을 타야 하는 걸까?

어제 평소보다 늦게 퇴근했더니 지옥철을 타게 됐다. 지옥철은 끔찍하다. 의자 쟁탈전은커녕 두 발 디딜 한 뼘 정도의 바닥을 놓고 신경전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정말 싫다. 마음이 모질지 못해서 공간 확보를 못 하고 움찔하면 그걸로 끝이다. 앞뒤 양옆에 있는 누군가가 그 틈을 순식간에 비집고 들어온다. 그럼 불편한 자세로 쭉 가야 한다. 한 정거장 한 정거장 멈출 때마다 점점  더 밀려드는 인파로 인해 자세는 더욱 불편해지고, 급기야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게 된다. 그러니 지옥철에서는 모질어야 한다. 옆 사람에게 주먹만 한 공간조차 양보하면 안 된다.




전철 안에서 황당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황당한 일이야 종종 겪는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 사건이 두 가지 있다.

퇴근길이었다. 전철을 탈 때는 언제 앉게 될지 늘 촉각을 곤두세운다. 퇴근길에 앉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피곤하니까. 그날도 빨리 앉길 기대하며 어떤 사람 앞에 섰다. 자, 과연 언제쯤 앉을까? 몇 정거장이 지나니 옆에 사람이 앉는다. 다시 몇 정거장 지나니 다른 쪽에 서 있던 사람이 앉는다. 그렇게 한 줄, 일곱 자리 중에 내 앞에 앉은 사람만 제외하고, 나머지 여섯 명이 모두 일어서고 앉았다.

‘왜 이 사람만 안 일어나는 거야!’

여섯 자리는 앉은 사람이 계속 바뀌었는데 내 앞에 앉은 사람만 요지부동이었다. 왜 다른 자리로 옮기지 않았느냐고? 누가 일어설 줄 알고 자리를 옮기겠는가. 뒷줄에는 자리가 안 났냐고? 자리가 나긴 했는데 그쪽도 자리가 날 때마다 다른 사람이 앉았다. 내 앞줄에 자리 주인이 여러 번 바뀌는 동안 내가 내릴 정거장이 두 정거장 앞으로 다가왔다. 맙소사! 내 앞에 사람이 그제야 일어섰다. 이럴 수가... 이렇게 못 앉아본 건 처음이다! 그 사람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괜히 화가 났다. 몸이 천근만근인데, 두 정거장 앉아봐야 뭐하겠나 생각이 들어서 나머지 두 정거장도 서서 갔다.

다른 사건도 퇴근길에 벌어졌다. 이날도 언제 앉게 될까 기대했다. - 사실 늘 기대한다. - 한참을 가다 내 앞에 앉은 사람의 오른쪽에 앉은 사람, 내 시야에 왼쪽에 앉은 사람이 일어섰다. 내 왼쪽에 서 있던 사람이 앉았다. 여기까지는 좋다. 당연한 거니까. 황당한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다. 내 앞에 앉은 사람도 곧이어 일어났는데, 왼쪽에 서 있던 사람이 갑자기 그 자리로 이동해서 앉고, 자기 앞에 서 있던 자기 일행을 자기 자리에 앉혔다.


‘뭐야, 이 사람?’

너무 어이가 없어 내 앞으로 이동한 사람을 쳐다봤는데, 자기가 매너 없는 행동을 한 걸 아는지 나를 보지 않았다. 한 마디 해주고 싶었는데 그럴 성격도 아니고 피곤하기도 해서 그냥 서서 갔다.

어제도 괜히 마음이 불안했다. 내 앞에 앉은 사람과 그 양옆 사람이 한꺼번에 일어섰다. 불현듯 위에서 언급한, 황당하게 자리를 빼앗긴 일이 생각났다. 이러다 세 자리 모두 다른 사람이 앉아서 나는 못 앉을까 봐 마음이 조급해졌다. 누가 앉을세라 얼른 앉았다. 다행히 내가 원하는 자리에 앉았다.




사는 게 이처럼 치열하다. 사는 거에 비하면 전철 자리 쟁탈전은 별거 아니지. 아니, 자리 쟁탈전도 사는 모습 중의 하나이니 별거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자리 쟁탈전은 우리의 치열한 삶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런 삶을 살아간다. 금수저가 아닌 이상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특히 젊어서 말이다. 젊어서 치열하게 살지 않으면 늙어서 고생한다. 아니 그렇게 멀리 갈 것도 없다. 30대 후반, 40대만 돼도 고생문이 열린다. 미리 치열하게 살지 않으면, 40대가 되었을 때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다. 40대는 사오정(45세 정년)이라 앞날을 생각해야 한다. 50대가 되면 오륙도(56세에 직장을 다니면 도둑놈)라는 말을 들어야 하니 멍하니 살다가는 입에 풀칠하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치열하게 사는 것이다. 놀고먹을 만큼 벌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손가락은 빨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 인생을 살아야 하니 참 서글프다.

그래서 사람들은 결혼도 안 하고, 결혼해도 자식 낳는 걸 포기한다. 내 한 몸 챙기기도 힘드니까. 결혼하는 순간, 자식을 낳는 순간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하니까. 반강제로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으니까 다 포기한다. 다 포기하고 혼자 자유롭게 사는 길을 택하거나 연애만 하려고 한다.




나는 사오정이 되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 없다. 시간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가니까. 20대는 20km, 30대는 30km, 40대는 40km, 50대는 50km...라는 우스갯소리가 괜한 말이 아니다. 정말 그렇다. 나이기 들수록 시간이 점점 빨리 흐른다.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누구에게나 똑같은데 왜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정말 신기하다.

사오정이 되기 전에 미리미리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이유가 있다. 이제 곧 2세를 낳기 때문이다. 이 녀석을 결혼시키고 분가시키려면 최소한 70세까지 일해야 한다. 사오정이 되면 앞길이 정말 막막할 것 같다. 오륙도가 되면 두려울 것 같다. 막막함과 두려움이 찾아오기 전에 돌파할 준비를 하자. 넋 놓고 살며 삶의 무게를 일부러 늘리진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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