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는 내 체질이야!
연애할 때 아내가 나에게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다.
“나도 남편이 요리해 주면 좋겠다.”
나는 이 말에 입버릇처럼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요리에 취미가 없어. 결혼하면 요리 빼고는 내가 다 할 테니까. 요리는 자기가 해.”
이 말은 진심이었다. 나는 미식가들처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희열과 행복을 느끼지 않는다. 감흥 없이 그저 우걱우걱 씹고 삼킨다. 내게 음식은 생존을 위한 생필품에 불과하다. 내가 밥을 먹는 이유는 배고파서다. 밥을 먹지 않으면 죽으니까 먹는다. 그렇다고 미각이 죽은 건 절대 아니다! 느낄 거 다 느낀다. 맛있는 음식 맛없는 음식 다 구분한다. 더욱이 내 혀는 예민하다. 음식이 아주 조금만 상해도 단번에 다 안다. 내 혀는 미식가의 혀를 타고났다. 그럼에도 음식에 관심이 전혀 없다. (요식업계에는 재앙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미각이 예민한 내가 먹는 걸 좋아했으면 날마다 먹방 투어를 했을 텐데, 그럼 리뷰를 많이 써서 홍보도 되고 매출에도 약간은 도움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아내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내가 먹는 걸 좋아하지 않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 내가 먹는 걸 좋아했으면 자기가 음식 만들기 아주 까다로웠을 거야.”
실제로 먹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다보니 군것질은 아예 하지 않고, 식사 때는 간장만, 아무 반찬이나 한 가지만 놓고도 밥을 잘 먹는다. 반찬 투정? 그런 건 없다. 배를 채우는 게 중요하니까. 어지간히 맛없는 반찬이 아닌 이상 일주일 내내 삼시 세끼 같은 반찬이 식탁에 올라와도 불평하지 않고 밥을 잘 먹는다. 이 정도로 먹는 거에 관심이 없으니 당연히 요리에도 취미가 없을 수밖에. 나의 대답에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없을 때 아이들 밥은 차려 줘야지.”
“나는 자기가 다른 아빠들처럼 아이들에게 요리해 주는 자상한 아빠가 돼 주면 좋겠어.”
나는 이 말에 묵묵부답... 관심이 없는 것에 어떻게 억지로 관심을 둘 수 있겠는가. 아이를 낳고, 그 녀석이 조금 크면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아이를 낳아 길러보기 전까지 내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 정도로 난 요리에 아무 감정도 열정도 없다.
본가에서 지낸 3년 9개월 동안 나는 내 말을 지켰다. 요리만 빼고 다 했다. 빨래, 빨래 널기와 개기, 방과 화장실 청소, 방과 화장실 쓰레기통 비우기, 설거지를 모두 내가 했다. 시집살이하는 동안 아내는 딱 두 번 빨래해봤다. 방 청소도 아내와 같이 한 건 손에 꼽는다. 항상 내가 했다. 화장실 청소는 100% 내가 했다. 분가한 지금도 나는 내 말을 지키고 있다.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난 한 번 한 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니까. 지키지 못할 말은 손해를 보거나 욕을 먹어도 아예 하지 않으니까. 아직도 요리는 하지 않는다. 대신 아내가 요리할 때 옆에서 도와준다. 심부름과 요리 뒷정리 그리고 설거지를 전담한다.
집안일은 나와 너무 잘 맞는다. 나는 집안일이 좋다. 정확하게 말하면 청소와 빨래, 설거지다. 이렇게 쓰고 보니 집안일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다. 아무튼 집안일을 하고 나면 그렇게 속이 시원할 수가 없다. 깨끗해진 집을 보면 뿌듯하다. 말끔하게 비워진 개수대를 보면 뿌듯하다. 빨래를 개고 텅 빈 서랍과 옷장을 다시 채워 넣으면 든든하다. 집안일은 완전히 내 스타일이다. 나는 완전 집안일 체질이다. 그래서 아내에게 종종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말이 있다. 내가 집안일을 할 테니 나가서 일하라고 말이다. 내가 전업주부를 할 테니 아내에게 가장 역할을 맡으라고 할 때가 있다. 단, 요리만 빼고.
아내는 내 말에 진담으로 반응한다. 정말 나가서 일하겠다고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아내는 집안일에 취미가 없다. 집안일을 못 하는 건 아닌데 별로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대신 회사를 계속 다니고 싶어 한다. 집안에만 있으면 답답하다며 말이다. 나와 완전히 반대다. 나는 나가는 걸 싫어한다. 집 안에 가만히 앉아 내 할 일을 하는 걸 선호한다. 집 안에서 할 일이 너무 많다. 할 수만 있다면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내 할 일을 하고 싶다. 밖에 나가서 일하지 않아도 집에서 일하며 수입을 만들고 싶다. 언젠가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나가서 일하고, 나는 안에서 내 할 일을 할 날이 어서 오게 만들어야겠다. 과연 그날이 올까?
요리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집안일 이야기로 이어졌다. 이왕 엇나간 김에 조금 더 엇나가야겠다. 아내가 내게 요리해달라는 말을 종종 하듯이 나도 아내에게 종종 하는 말이 있다.
“내가 집안일할 테니 자기가 돈 벌어와.”
“돈 많이 벌어 와야 해.”
솔직히 말해서 나는 주부가 되고 싶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주부, 집안일은 딱 내 체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부 되기가 망설여진다. 사람들은 남자가 집안일을 하면 능력 없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남자가 오죽 못났으면 집안일을 해?’ 우리의 의식 속에 이런 구시대적인 생각이 아직 남아 있다. 특히 어른들이. 물론 시선이 점점 바뀌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우리에게 주부 남편은 낯설다. 하지만 남들이 이상하게 보면 어떠랴. 부부가 서로 합의하고 혹은 상황과 환경에 따라 서로 더 잘하고, 좋아하는 역할을 맡아서 하면 되지. 남의 시선에 얽매여서 뭐하랴. 그래! 주부가 되는 걸 목표로 삼자! 유튜버 주부 아빠를 내 멘토로 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