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간 모태 솔로의 신혼일기 #28

캥거루가 된 제주도 여행

by 인생짓는남자

나는 아내를 만나고 신세계를 경험했다. 연애 때부터 결혼 4년 차인 지금까지 아내와 함께한 것 중에 내겐 낯선 게 너무 많다. 처음 경험해 본 게 엄청 많다. 과장 조금 보태면, 아내와 함께 한 모든 게 처음이다. 커플링도 처음(지난 글 - 모태솔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커플링을 맞추다!​), 키스도 처음, 영화관에 간 것(여자와 단둘이 간 건)도 처음, (결혼 후) 국내 여행도 처음, 해외 여행(지난 글 - 내 생애 첫 해외 여행​)도 처음, 화이트데이 때 사탕 받은 것도 처음. 처음, 처음, 처음, 죄다 처음이었다. 덕분에 아내와 함께하는 모든 게 기념할 만한 일이 되었다. 아내와 함께했던, 처음 겪은 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다. 제주도 여행이다.




결혼하고 만 1년이 되자마자 결혼 1주년을 기념하려고 제주도로 단둘이 여행을 갔다. 때는 1월. 제주도 여행은 처음이라 무척 설레고 기대되었다. 신혼 여행 빼고는 둘이서 오붓하게 여행을 간 건 제주도가 처음이니 얼마나 설레었겠는가. 오죽 설레었으면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들떴다. 아니, 여행 계획을 짤 때부터 어린애처럼 신이 났다.

학창 시절 수학 여행 전날처럼 한껏 들뜬 기분으로 며칠 동안 여행 계획을 꼼꼼히 짰다. 여행은 처음 가보니 더 열심히,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웠다. 얼마나 꼼꼼히 짰으면 제주도를 여러 번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로드뷰로 제주도 구석구석을 들여다봤으니 그런 기분이 드는 건 당연했다. 그만큼 기대가 컸다. 자, 드디어 준비 끝! 이제 가는 거야!!!


자매국수에서 먹은 비빔국수와 고기국수


제주도에는 토요일 밤 9시쯤 도착했다. 제주도 맛집에서 저녁을 먹기 위해 일부러 굶고 갔다. 예정대로 ‘자매국수’에 가서 ‘고기 국수’‘비빔국수’를 주문했다. ‘후루룩 짭짭~’ 너무 배가 고팠고, 맛도 있어서 국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다 먹은 후 숙소로 이동~ 숙소는 다음 날 일정을 위해 성산일출봉 바로 앞에 잡았다. 무려 한 시간이나 달려서 숙소에 도착했다. 다음 날 일정을 위해 얼른 씻고 잤다.




숙소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성산일출봉은 처음 오른다! 제주도 여행 자체가 처음이니 당연하지. 아무튼 눈 뜨자마자 숙소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성산일출봉을 바라봤다. 대형 굴뚝같이 생긴 게 참으로 웅장해 보였다. 그런데,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이미 많은 사람이 오르고 있었다. ‘이른 시간에 웬 사람이 저리 많지?’ 아무리 일요일이라지만,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아 보였다!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 마치 먹이를 물고 집으로 향하는 개미 사단처럼 느껴졌다. 아내와 단둘이 오붓하게 경차 감상하며 천천히 오르고 싶었는데... 다 틀렸다!

준비를 마친 후, 가까이 가보니 멀리서 보던 것보다 사람이 더 많았다. 대부분 중국 사람이었다. 한국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멀리서 봤던 것처럼 우리도 줄지어 올라가야 했다. 분명히 우리 둘이서만 온 여행인데... 단체 관광하는 줄 알았다. 좁은 산책로에 사람이 꽉 차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올라가는 길 내려오는 길이 구분되어 있긴 했지만, 도중에 혹시라도 내려가려면 무조건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했다. 그래 뭐, 어차피 구경하러 왔으니 정상은 밟아봐야지! 근데 사람이 많은 건 문제도 아니었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하필 날씨가... 바람이 많이 불어서 추웠다. 날을 잘못 골랐다. 날씨가 그럴 거라고는 예상 못 했다. 제주도로 향하기 전까지 일기예보 상으로는 문제없었는데... 아무리 겨울이라지만, 그래도 여긴 남쪽 나라 제주도인데... 이렇게 추울 수 있나? 하늘이 우리 부부의 오붓함을 질투하는지 바람이 꽤 많이 불었다. 그럴수록, 우리는 날씨에 반격하기 위해 더 바짝 붙었다. 그래도 바닷바람이 상당히 매서워서 너무 추웠다. 이 상황은 이후 계속되는 우리의 고난을 암시하는 듯했다. 우리는 상황이 그럴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정상에 오르니 바람이 더 많이 불이 불고, 먹구름도 잔뜩 끼어서 사진만 얼른 몇 컷 찍고 내려왔다. 성산일출봉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바다와 제주도 광경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다. 이날 성산일출봉을 감상한 후에 우도에 가서 온종일 있으려고 했다. 하지만... 바람이 많이 분 탓에 파도가 높아서 배가 뜰 수 없단다. 파도 높이가 5m였다니 할 말이 없었다. 온종일은커녕 성산일출봉 정상에서 손에 잡힐 듯 보이는 우도를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우도, 경치가 그렇게 멋지다는데 코앞에서 바라보기만 해야 하다니! 너무너무 아쉬웠다. 제주도에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발걸음을 돌려야 한다니... 군대에서 백일 휴가 날짜를 받아놓고, 비상이 걸려 휴가가 미뤄진 기분이었다. 못내 아쉬워서 자꾸만 우도를 돌아보았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른 여행지로 향했다.




바람이 너무 세게 분 탓에 사진을 대충 찍었다.


성산일출봉을 구경한 후에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하던 장소인 월정리로 향했다. 거기서 대박 사건이 두 가지나 벌어졌다. 눈보라가 몰아쳐서 그 멋있는 월정리 해변을 구경도 못 하고 거닐지도 못했다. 바람이 얼마나 심했으면, 백사장 모래가 도로에 수북하게 쌓였을 정도였다. 모래를 피하기 위해 도로 밖으로 돌아갈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그뿐만 아니었다. 세상에나, 차 문이 자동문인 줄 알았다. 차 문을 열면 ‘쾅’ 소리를 내면서 자동으로 닫힐 정도로 바람이 세게 불었다. 반대로, 바람을 제대로 받으면 문이 잘 안 열릴 정도였다. 바람만 불었으면 그나마 나았을 것이다. 눈까지 휘몰아치니 차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디아블로의 소서리스가 블리자드를 시연하는 줄 알았다. 제주도까지 왔는데 자연에 굴복할 순 없지! 제주도까지 갔는데 눈보라가 친다고 사진을 못 남기면 안 되지! 남는 건 사진뿐인데. 어떻게든 한 장은 건져야 한다는 생각에 경치 좋은 곳에 이르면 차를 세우고 죽어라 뛰어가서 셀카를 찍고 다시 차로 돌아왔다. 그걸 몇 번을 반복했다. 월정리에서만이 아니다. 여행 기간 내내 캥거루처럼 껑충껑충 마구 뛰어다녔다.


눈보라가 몰아쳐서 경치 구경을 하나도 못 한 건 대박 사건이 아니다. 마구 뛰어다닌 건 상관없다. 나름 신이 났으니까. 바람 소리가 커서 남들이 못 들을 테니, 뛸 때마다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소리 지르며 행복한 고백을 했다. 진짜 문제는 다른 데서 발생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월정리에 알아둔 맛집에 갔다. 그런데... 문이 닫혔네...? 알고 보니 월요일은 쉰단다... 그 근처에 몇 군데를 더 찾아봤는데 다 쉬었다. 이런 일이! 결국 가려던 맛집은 못 가고... 월정리 해변 근처에 있는 맛집을 급히 검색해서 들어갔다. 좀 약하지만, 첫 번째 대박 사건이었다.

점심을 먹은 후 몰아치는 눈보라로 바깥 구경은 불가능하기에 아내가 그렇게 먹고 싶다던 구좌상회에 가서 ‘당근 케이크’을 먹기로 했다. 여행 계획을 짤 때 아내가 제주도에 가면 그걸 꼭 먹어야 한다고 계속 노래 불렀다. ‘두근두근’ 하도 먹고 싶다고 하니 나도 기대됐다. 얼마나 맛있길래 아내가 그토록 먹고 싶어 하는 걸까? 구좌상회로 고고~

구좌상회는 정말 대박이었다! 왕대박, 가히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다! 문 앞에까지 갔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3월까지 방학이란다... 웬 방학? 이게 무슨 황당한 일이란 말인가? 정말 어이가 없었다. 안 그래도 맛집에 못 가서 맘이 안 좋았는데, 이번 제주 여행의 하이라이트이자 백미였던 구좌상회 당근 케이크 맛을 못 보다니!!! 어쩐지 사람이 근처에도 안 가더라니... 마음이 너무 많이 허망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근처 카페에서 쉬기로 했다. 구좌상회 당근 케이크 맛을 언제 볼 수 있을까...?




눈보라가 심해서 섭지코지에 바로 발을 딛지 못하고 차에서 기다렸다.


그다음 날에도 여전히 눈보라가 몰아쳤다. 이날은 더 심했다. 성산일출봉에서의 상황은 애교 수준이었다. 날씨가 얼마나 버라이어티한지, 눈보라가 세차게 쳤다가 그쳤다가, 다시 쳤다 그치기를 반복했다. 세상이나 제주도에 웬 눈보라가 친단 말인가! 제주도에 눈도 잘 안 오는데 눈보라가 웬 말이냔 말이다! 섭지코지에 도착했을 때는 앞이 하나도 안 보일 정도로 눈보라가 쳐서 차에서 30분 동안 대기했다. 30분 후에 날씨가 반짝 좋아져서 섭지코지를 빠른 걸음으로 돌았다. 언제 다시 눈보라가 휘몰아칠지 몰라서 정말 빠르게 돌았다. 다행히 하늘이 시샘을 그만두기로 했는지 그렇게 휘몰아치던 눈보라가 우리가 구경을 마칠 때까지 잠잠했다. 하지만 차로 돌아오니 다시 눈보라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덩그러니 홀로 있는 나무와 주변 광경이 상당히 운치 있었다.


새벽오름 나홀로나무를 보러 갔을 때는 너무 추워서 얼른 뛰어가서 사진만 찍고 왔다. 핸드폰 배터리를 100% 충전해 놓았는데 어찌나 추운지 성이시돌목장에서는 몇 분 만에 핸드폰이 꺼져버렸다. 그 때문에 사진을 별로 찍지 못했다. 제주도가 이렇게 추운 곳이었나 싶을 만큼 추웠다. 눈은 왜 그리 많이 오는지. 오죽했으면 한라산 옆 도로가 얼었다고 차량 통제를 할 정도였다.




내 생애 첫 국내 여행이자 제주 여행은 이렇게 황당한 사건의 연속이었다. 날씨가 안 좋아서 경치 구경은 하나도 못 했다. 바람도 많이 불고, 눈발까지 세차게 날려서 계속 주요 스폿만 얼른 뛰어가서 사진에 담았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우리에게 여유 따위는 전혀 없었다. 예능을 찍는 줄 알았다. 여유라고는 카페에서만 누릴 수 있었다. 카페에 있으려고 제주도에 간 게 아닌데...

그래도 나름대로 추억이 되었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 말이다.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하겠는가. 제주도에 갈 때마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재밌었다. 제주도에서 아무때나 맛볼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이렇게 예상 못 한 상황들로 인해 나의 첫, 우리가 함께한 첫 국내 여행은 오래 기억에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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