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미션힐 골프장에는 낭만이라는 달이 뜬다

고독과의 전투

by 불비

태국 미션힐 골프장에는 낭만이라는 달이 뜬다


새벽 골프를 친다


흰 공을 때리면

먹먹한 고독이 도르르 구른다

소나기가 쏟아지면 서서 젖은 채 말리고

그늘막에 맥사 한잔 탁 털어 넣으면

트인 마음이 톡 쏜다


코코넛게가 저녁 참불에 몸을 앞뒤로 뒤집으며

제 속의 내장을 꾸역꾸역 토하며

딱딱한 고독을 끝내려 거친 숨을 내뿜고

두리안은 슬픔을 익혀 깊이를 삭히고

수박은 희망을 품어 시간을 줄줄 풀어낸다


달밤이 깊다

밤바람이 연못가 풀울음 소리를 퍼 날라

고독이 다 마르고

고스톱을 치는 누나들이 짝짝 짝짝

옆에서 소주 마시는 형들은 단짝 단짝


치앙마이 별들이 장대비처럼 쏟아져

고독이 다 떠내려간다

태국 미션힐.bmp


고독과의 전투


고독은 주변에 동반자 없이 혼자 있는 상태이다. 고독은 신체적일 수도 있고 정서적일 수도 있다. 사실 신체적 고독은 정서적 고독을 유발한다. 고독은 내가 선택한 것일 수도 있고, 타인에 의해 강요될 수도 있다. 선택적 고독은 우리에게 고독을 즐기며 반성과 평화의 시간이 된다. 강제적 고독은 당사자에게 외로움을 경험하고 고통을 느끼게 한다. 고독은 개인의 환경과 선호도에 따라 긍정적 영향과 부정적 영향을 모두 미칠 수 있다.


인간은 사리사욕과 이기심이라는 이성의 동물이다. 인간은 이성적 판단을 통해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면서 혼자서도 그럭저럭 지낼 수 있다. 이런 성향을 선천적으로 갖고 있음에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어야 한다. 혼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나의 이성을 내려놓고 나의 정서라는 꼬리를 흔들며 타인과 협력하고 교류하며 지금을 문명을 계속 유지해 가야 하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사회성에서 고독은 결국 우리에게 적이다. 시인은 이 고독이라는 적과 전투를 벌인다. 골프 클럽을 어깨에 짊어지고 골프장으로 향한다. 총을 쏘듯 골프 클럽을 휘둘러 흰 공을 때린다. 클럽에 맞은 고독이라는 공은 멍해진 채 도르르 구른다. 이렇게 시인은 고독 한 놈을 때려잡았다. 그래도 아직 고독한 시인은 갑자기 쏟아져 내리는 소나기를 벗 삼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고독으로 답답해진 마음을 달래려 시원한 맥사 한잔 들이킨다. 맥사의 탄산이 시인의 마음을 트이게 하여 잠시나마 답답함이 풀린다.


고독과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저녁이 되자 코코넛게를 인질로 잡아 숯불에 앞뒤로 뒤집으며 고문을 한다. 인간성의 한 극인 몸에서 가장 신체적인 신체부위가 내장이다. 얼마나 민감한지 약간만 꼬여도 그 고통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런 내장을 게 속에서 밖으로 토하게 한다. 이는 딱딱한 고독을 끝내기 위함이다. 숯불로 코코넛게라는 고독을 고문해 결국 고독이라는 놈을 죽였다. 적을 죽였으니, 두리안과 수박이라는 전리품은 승자인 시인의 몫이 된다. 두리안은 냄새만 맡으면 먹을 수 없을 것 같지만 달콤한 맛이 나는 과일이다. 이는 어쩌면 슬픔이라는 지독한 냄새를 삭히고 삭혀 달콤한 맛이 아는 것 같다.


수박을 자르니 빨간 속살이 드러나 시인의 고독을 적셔준다. 고독은 감정이다. 감정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일정 시간 지나면 사라지는 것이 감정이다. 기쁜 감정이든 슬픈 감정이든 모두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마음속에 쾌락 쳇바퀴가 돌아가고 있다. 쾌락 적응(hedonic adaptation)이라고도 알려진 쾌락 쳇바퀴(hedonic treadmill)는 인간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주요한 인생 사건에도 불구하고 다소 안정된 행복 수준으로 빠르게 되돌아가려는 경향이다. 고독이라는 감정도 일정 시간이 되면 중립적인 감정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려면 일정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수박이 시인에게 준다. 고독을 상쇄하기 위해 희망을 품은 수박은 시간을 줄줄 풀어낸다.


고독과 맞설 수 있도록 시간이라는 무기를 재장전하니 어느덧 저녁은 밤으로 바뀌었다. 밤바람이 연못가의 풀 울음소리를 지원군으로 데려온다. 그 지원군이 고독을 모두 전멸시킨다. 승전 소식에 누나들이 짝짝 손뼉을 치고, 형들과 시인은 축하주를 나눠마신다. 모두 전멸된 고독의 시체들이 너저분히 놓여있다. 걱정할 건 없다. 치앙마이 별들이 장대비처럼 쏟아져 고독의 시체가 모두 떠내려갔다. 이곳에서 죽고 죽이는 전쟁이 치러졌다는 것을 의심하게 할 정도로 주변은 장대비가 휩쓸고 지나가 깨끗해졌다. 이제 시인의 고독은 정화되었다.


고독이 사라졌으니 그 반대 감정이 시인의 마음을 다시 점유할 것 같다. 그런데 고독의 반대말은 뭘까? 사랑? 사랑은 미움이라는 감정과 반대말이므로 고독의 반대말이라고 말하기는 애매하다. 그러고 보니 고독의 반대말은 규정하기 힘들다. 어쩌면 고독의 반대말을 찾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그 반대말은 여하튼 매우 긍정적이고 행복한 감정일 것이다. 고독이 사라져 극단의 긍정적 감정으로 올라가도 부담이 된다. 그 긍정적 감정 또한 감정이라 오래 지속되지 않고 쾌락 쳇바퀴에 따라 다시 중립의 감정으로 내려올 테니 말이다. 고독은 사라졌지만, 그 반대 감정은 규정하기 힘드니 이제 어떤 감정으로 이어질지 기다려봐야 한다. 어쩌면 약간 긍정적 감정이 시인의 주변을 맴돌겠지만, 다시 고독이라는 적은 찾아올 것이다. 그 잠재 적을 대비해 우리 인간은 다시 방어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영원히 고독에 점유되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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