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생각이 비워진 청량한 몸을 위한 전략
작년 이맘때 태국 치앙마이에 있었다
새벽에 새벽밥을 먹고
새벽달이 해달이 될 때까지
골프를 치다가
박카스사이다를 마시다
낡은 생각이 몸 밖으로 툭 뛰쳐나왔다
스타필드 사람들은 모두 다 마스크로
흰 벽을 치고 다닌다
준오 헤어에서 염색약을 바르다
답답해서 신문의 풍경을 뒤치락 거린다
눈부신 것들이 그리워졌다
독일 제마탈 인근의 산악 지대를
달리는 기차를 타고
절망을 푹푹 토해내며
흰 희망의 설경을 절실히 읽고 싶고
핀란드 라플란드에서 북부의 빛 오로라를 보며
잡다한 생각의 혼이 빠져나간
맑고 푸른 몸을 갖고 싶고
네팔 카트만두에서 홀로 우뚝 선 설산을 보며
몸을 공중에 띄워
내 밖에서 몸 안을 들여다보고 싶다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다녀온 뒤 일상에 들어가니 다시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시인은 그곳에서 새벽 일찍 일어나 밥을 먹고 낮이 될 때까지 골프를 쳤다. 골프를 치다가 사이다를 마셨다. 반응이 나온다. 한국의 현실에서 쌓이고 쌓였던 ‘낡은 생각’이 몸 밖으로 나왔다. 사이다의 탄산 성분이라는 자극물이 낡은 생각을 밖으로 나오도록 추진시킨 듯하다.
낡은 생각이 몸 밖으로 나오기 전에 몸속에 있었다. 이는 몸과 마음에 관한 이원론에 반한다. 이원론에서는 마음과 몸이 엄격히 구분된다. 생각은 몸속에 들어가지 않고, 몸이 생각 속에 들어가는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시인의 세계에서는 생각이 몸속으로 들어갔다. 생각이란 마음의 의식적 작용이다. 생각의 의식적 작용은 노력이 동원되고 비용이 발생한다. 그래서 우리 삶은 비용 없이 진행되는 자연스럽고 무의식적 작동이 편한 것이다. 잡념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의식적 작용인 생각을 시인은 몸에 위탁했다. 마음의 작용을 멈춰 세우고 마음이 하던 일을 몸이 하도록 몸에 위탁한 것이다. 이것이 ‘몸생각(body thinking)’이다. 이는 마음이 하던 의식적 사고를 몸에 맡기고 몸이 그 사고를 무의식적으로 하는 것이다. 몸생각이란 의식적 개입 없이 무의식으로부터 흐르는 빠르고 무언의 반자동적 행동을 말한다.
시인은 무의식적인 편안한 삶을 위해 생각을 몸속에 넣었다. 생각은 몸에게 자신을 맡기면 생각이 하던 일을 몸이 해 줄 것으로 보았다. 한두 개의 생각이면 몸도 감당했을 것이다. 그 생각들이 자꾸자꾸 쌓여 몸도 이제 부담을 느낀다. 이제 시인은 별 의미도 없는 오래된 생각들을 청결한 자신의 몸 밖으로 내던지고 싶었다. 태국 치앙마이로 골프로 하러 갔다. 사이다를 마시는 우연한 순간에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시인은 깨끗한 텅 빈 몸으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자기 집 근처에 있는 스타필드에서 일상을 한다. 일상의 삶에는 나와 타인이 뒤섞이기 마련이다. 나도 그렇고 타인도 그렇듯이, 인간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얼굴의 일부를 마스크로 가리고 있다. 나와 타인 사이에 큰 벽이 치진 것이다. 타인은 내가 벽을 쳤다 할 것이고, 나는 타인이 벽을 쳤다 할 것이다. 내 눈에는 타인의 가려진 얼굴이 보이고, 타인의 눈에는 나의 가려진 얼굴이 보일 테니 말이다. 어쨌든 오해에서 비롯된 이 벽 때문에 시인은 답답함을 느낀다. 신문에서 태국 치앙마이의 골프장과 같은 풍경을 찾아본다. 당연히 없다. 답답한 생각들이 다시 몸속에 쌓이기 시작한다.
시인은 다시 눈부신 것들을 그리워한다. 지저분하게 쌓인 낡은 여러 생각을 몸 밖으로 토해내기 위해! 그 낡은 생각은 이제 절망으로 썩어 있다. 독일 제마탈 인근의 산악 지대를 기차를 타고 달리고 싶어 한다. 나를 태운, 나보다 더 큰 기차가 내가 내뿜은 절망의 생각을 푹푹 토해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몸속에 절망 대신 흰 희망을 담고 싶어 한다. 핀란드 라플란드에서 북부의 빛 오로라를 보고 싶어 한다. 오로라의 자극으로 잡다한 생각들이 빠져나가 맑고 푸른 몸을 갖고 싶어 한다.
네팔 카트만두에서 홀로 우뚝 선 설산을 본다. 낡은 생각과 절망의 생각, 잡다한 생각이 모두 빠져나가 가벼워진 몸이 공중에 띄워진다. 자기 밖에서 몸 안을 들여다보려고 말이다. 시인은 시각 능력을 갖춘 자아로 자기 몸이라는 또 다른 자아를 들여다보고 싶어 한다. 이제 그 몸은 낡은 생각들이 텅 비어 가벼워진 상태로 공중에 떠 있다. 몸 안에는 낡은 생각들이 없는 가볍고 청결한 상태이다. 더는 생각들이 시인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의식적 마음의 작용 없이 가벼워진 몸으로만 자기 삶을 살면 된다. 이보다 더 편안한 상태가 어디에 있겠는가!
인간에겐 이중성이 필수 조건이다. 마음과 몸이 공존하게 되어 있다. 언젠가 의식적 마음이 다시 작용하여 생각을 만들어내고 하나하나 쌓일 것이다. 그때마다 우리는 각자 그 생각들을 덜어내고 텅 비우는 전략을 짜야 한다. 그 전략에 정답은 없다. 나에게 맞는 전략이 가장 좋은 전략이다. 최적의 전략으로 우리 모두 가벼워진 몸 상태를 순간순간 느끼는 삶을 살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