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늙기 전에 내가 구독하고 싶은 것

시와 여행과 사랑을 위하여

by 불비

드라마 눈 부시게_더 늙기 전에 내가 구독하고 싶은 것들


아침 8시에 쿠퍼스가 달짝지근 문고리에

걸려 있고

낡은 일상을 팍팍 닦아내는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매주 금요일마다 청소기를 탈탈탈 돌리고

불 꺼진 침대에 누워

보고 싶을 때마다 볼 수 있는

티빙을 구독해 끼득끼득댄다


늙은 내가 더 늙은 나에게

무엇을 구독해야 하나


아침저녁마다 일상을 에어프라이기로 탁탁 튀겨

맛있는 시로 구워내고 싶고

제주도에서 이스라엘까지 뜀박질하는

노을 산책에

발뒤꿈치에 달라붙는 저녁해의 낭만을 들여다보고 싶고


스타벅스에서 주문한 치즈케이크처럼

첫맛은 낯설고

뒷맛이 낯익은 사랑이

늘 달콤했으면 좋겠다


그 순간순간 눈부신 날들이 눈물 나도록 아름다워

고독조차 구독하고 싶다




고독을 구독하다


우리 삶에는 ‘자연적 규칙성’이 존재한다. 정해진 시간에 해가 뜨고 해가 진다. 내가 임의로 정한 ‘인위적 규칙성’도 있다. 나는 정해진 시간에 자고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 규칙을 내 나름대로 정해 놓고 실천한다. 이것은 개인적인 인위적 규칙성이다. 사회적인 인위적 규칙성도 있다. 내가 타자와 계약을 체결하고, 그 타자가 나를 위해 규칙적으로 무언가를 해 준다. 나는 타자의 그런 규칙성에 대해 비용을 지불한다. 타자는 그렇게 자신의 이익을 창출한다. 이런 계약을 ‘구독’이라고 부른다.


시인도 자기 삶에 사회적인 인위적 규칙성을 따르고 있다. 하나는 매일 아침 8시 건강한 장을 위한 쿠퍼스 구독이다. 다른 하나는 매주 금요일 청결한 집을 위한 청소 아주머니 구독이다. 마지막 하나는 매달 유쾌한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티빙 구독이다.


시인은 더 많은 것을 구독하고 싶어 한다. 시인은 이런 고민을 한다. “늙은 내가 더 늙은 나에게 무엇을 구독해야 하나”라고! 시인은 자기 자아를 분열한다, ‘늙은 내’와 ‘더 늙은 나’로. 시인은 분열된 자아(split-self)로 무엇을 하려 하는가? 첫 번째 자아는 두 번째 자아에게 무언가를 구독해 주려 한다. 첫 번째 자아는 사고하고 계산하며 의식하는 이성의 자리이다. 두 번째 자아는 무의식적인 신체적 본능, 육감, 기술의 자리이다. 내가 자전거 타는 법을 누군가에게 가르치는 상황이 있다고 하자. 나는 자전거를 잘 타지만 타는 방법을 누군가에게 말로 설명하려 하면 잘되지 않는다. 특히 나 스스로 자전거 타는 방식을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 자전거를 타게 되면 무언가 어색하고 넘어지는 일도 생긴다. 생각하고 말로 설명하는 ‘나’는 첫 번째 자아이고, 말없이 본능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자전거를 타고 있는 나는 두 번째 자아이다. 자전거를 타는 것은 언어와 사고의 문제가 아니라 몸의 문제이고 육감의 문제이다. 몸이 기억하고 있으니 편안하고 규칙적이다. 구독도 분열된 자아에 해당한다. 처음에 계약을 체결하면 그 사람 다음부터는 그 자체에 대해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모든 것은 규칙성을 따르므로 자연스럽고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


사실 구독은 ‘무위(無爲)’이다. 무위란 행하지 않는 것이지만 어떤 행동이 자발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첫 번째 자아는 두 번째 자아가 하는 행동을 알지 못하지만, 두 번째 자아는 그 행동을 지속적이고 규칙적으로 행한다. 늙은 시인은 더 늙은 시인에게 무언가를 구독해 주려 한다. 하나는 독자가 맛있게 먹는 탁탁 튀는 시를 쓰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국내와 국외를 여행하면서 노을을 벗 삼아 산책하고 낭만을 즐기는 것이다. 마지막 하나는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결국은 편안함을 주는 사람을 만나 늘 치즈케이크처럼 그 사람과 사랑을 하는 것이다. 결국 시인은 시와 여행, 사랑을 구독하고 싶어 한다. 더 늙은 시인은 이 세 가지 구독을 한다면 매일매일 순간순간이 아름다울 것이다. 이 정도의 아름다운 순간이면 고독조차도 구독하고 싶을 것이다.

더 늙은 시인이 구독하려는 고독은 사실 고독이 아니다. 고독이란 홀로임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시와 여행, 사랑이 있다. 절대 고독할 수 없는 일이다. 얼마나 기쁘고 가슴이 풍요로우면 고독까지 구독하겠다고 하는 걸까! 그렇다, 구독에는 비용이 든다고 했다. 그 비용이 바로 고독이다. 시인은 이 세 가지를 구독하기 위해 지금 기꺼이 고독하려 한다. 시인이 지급하는 고독이라는 비용으로 시와 여행, 사랑이 더 늙은 시인 곁에 있기를 난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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