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나는 흔들어 뒤섞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by 불비

그해 여름


그해 여름이 생각났다


더워도 너무 더워 해종일 물을 마셔도

소변이 마렵지 않았다

내 안에 모든 것들이 말라비틀어져 버렸다

생각조차 말라 버렸다


상림숲 나무그늘 속 흔들의자에 생각을

흔들어 댄다

마음이 다 흘러내리면

생각의 껍데기에 뒤엉킨 뿌리가 흰 몸뼈를 드러낸다


숲속에서 들려오는 이외수 작가의 언어가

귀속에 소닥소닥대고

천 개의 물소리가 옹지지 않게 졸졸졸

내 밖을 휘감고

껍질조차 푸름이 깊어

몸 구석구석에 맑은 여우비가 내린다

여름이 석류 속처럼 지독하게 무더워지면

그해 여름날이 소스라치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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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흔들어 뒤섞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너무 더운 그해 여름, 너무 더워 시인 몸속의 모든 것이 말라비틀어져 버렸다. 생각까지도 말이다. 시인은 글을 써야 한다. 글을 쓰고 싶은데 생각이 혼수상태에 빠졌다.


생각을 되살리려고 상림숲 나무 그늘 속 흔들의자에 몸을 맡긴다. 생명은 움직임이다. 이를 알고 있는 시인은 흔들의자에 앉아 움직임을 시작한다. 심폐 기능이 정지하거나 호흡이 멎은 환자에게 의사가 응급처치로 심폐소생술을 하듯이, 시인은 자기 생각에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다. 이리하여 생각이 하나하나 의식을 되찾는다. 이제 시인은 시를 쓸 수 있다.


시인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은 언어가 ‘화석이 된 시(fossil poetry)’라고 했다. 지금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처음에는 시였으며, 창의적인 그 시가 반복적으로 사용되면서 지금의 일상 언어로 굳었다는 얘기이다. 굳어 있는 일상 언어에서 창의성을 보려면 그 언어를 흔들어 깨우면 된다. 흔들어 깨운다는 것은 일종의 역공학(reverse engineering)이다. 이는 제품이나 시스템을 개별 구성요소로 분해하고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이런 요소들이 함께 작동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을 말한다. 시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의 기존 언어를 잘 분석하여 그 구조를 파악한 뒤 그 언어의 은유성과 비유성을 보면 된다.


시인은 흔들어 깨운 생각들로 시를 쓴다. 생각들로 시를 쓴다? 이건 무슨 말일까? 생각들을 뒤섞는다는 말이다. 서양철학에서 데카르트는 Cogito ergo sum이라고 말한다. 이는 흔히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로 번역된다. 하지만 이는 다르게 번역할 수도 있다. 라틴어 cogito는 접두사 co-(함께)와 동사 agitare(흔들다)에서 유래했다. 따라서 cogito의 본래 의미는 ‘함께 흔들다’이다. 이제 이 말은 “나는 흔들어 뒤섞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로 번역된다. 그렇다, 생각한다는 것은 뒤섞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존재하고, 내가 시를 창작해 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뒤섞은 후에는 선택하고 종합하는 일도 동시에 일어날 것이다.


소생시킨 생각들을 뒤섞고 난 뒤 시인의 마음은 흘러내린다. ‘흘러내림’이라는 움직임이 시작된다. 그런 움직임으로 생각의 뿌리에서 흰 몸 뼈가 드러난다. 순백의 깨끗한 시가 단단하게 완성된 것이다. 시인의 시는 시인의 일상 언어이다. 그래서 단단하게 굳어 있다.


일상 언어는 화석이 된 시라고 했다. 단단하게 굳은 지금의 이 시는 역공학을 통해 그 창의성을 엿볼 수 있다.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면서 이 시의 은유성을 파악해 낸다. 그러니 그 언어가 소리를 낸다. 우리의 귀속에 소닥소닥 속삭인다. 그해 더운 여름 시인의 모든 것이 말랐지만, 이제 시인의 언어로 물소리가 졸졸졸 들리면서 시인을 촉촉이 적셔준다. 시인의 몸 구석구석에는 맑은 여우비가 내린다.


모든 것이 메마른 더운 여름이지만 시인은 맑은 여우비를 내리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그 힘은 바로 생각을 흔들어 깨우고, 뒤섞고, 종합하여 시를 창작하고, 창작된 시를 다시 역공학으로 분석하는 것이었다. 우리 모두 독자로서 시인이 만들어준 여우비에 몸을 맡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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