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고독과 싸우는 방법
입곡 공원 숲그늘을 거닐다 보면 몸 풍경이 바뀐다
봄 벚꽃이 여름 그늘로 가는 신록에
마지막 몸꽃을 쏟아내고
저수지를 가로지르는 흰 구름다리가 학처럼
바람 소리에 휙휙 휘청대고
산책로 산길은 붐비는 사람들의 뒤꿈치에
산꽃들이 수북이 핀다
폭풍 같은 폭우가 폭포수처럼 쏟아지면
속 좁은 집 앞 개울은
거친 울음소리를 토하며
한참을 울다 졸졸졸 멈춘다
봄여름가을겨울을 살집 좋은 미꾸라지 잡듯
철벅철벅 대나무 소쿠리를 퍼 올리면
모든 시간이 다 빠져나가도
추억은 남는다
쓸려 갈 것은 쓸려 갈 만큼 쓸려 가야
누운 것들이 고개를 든다
이수정 가는 길은 은행나무 가로수가 줄지어 있다
마른 잔기침 소리에도
은행잎의 노란 우수가 우수수 쏟아지고
묽은 은행알은 슬픔을 삭혀서
깊은 시름으로 시킁시킁하고
겨울 빈 가지는 가스통 바슐라르 펜 끝으로
빈 하늘을 흔들어 대 가을 고독이 줄줄줄 흐른다
시인은 메마른 빈방에 홀로이 앉아 있다. 삭막한 느낌이 들 정도로 방 곳곳이 휑하다. 텅 비어서 매우 허전한 느낌이다. 이 삭막한 공간을 시인은 자신이 예전에 본 풍경으로 채우려 한다.
시인이 먼저 간 곳은 입곡군립공원이다. 경남 함안군 산인면 입곡리에 있는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농업용수를 마련하기 위해 만든 입곡저수지 일대에 조성한 공원이다. 시인은 공원에서 숲속을 걷는다. 그 숲은 나무로 우거져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때는 봄이다. 초봄은 아니고 벚꽃이 마구 떨어지는 여름에 가까워지는 시점이다. 이를 시인은 ‘여름 그늘’로 묘사하고 있다. 벚꽃이 마지막 꽃잎을 온몸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마지막 몸꽃을 쏟아내고’ 있는 풍경이다. 온몸으로 쏟아내는 벚꽃이 시인의 머리에 떨어져 시인의 모습도 아름답게 바뀐다. 이런 시인의 모습이 ‘몸 풍경’이다. 저수지 위의 흰색 구름다리가 바람에 휘청대는 모습은 학을 닮았다. 사람들이 산책로 산길을 걷는다. 그 사람들의 발에 산꽃이 밟힌다. 하지만 그것은 밟힘이 아니라 사람들 발뒤꿈치에서 수북이 피어나는 산꽃이다.
이제, 개울가로 가보자. 폭우가 내려 개울에 물이 넘친다. 개울이 좁은 것은 사람 속이 좁은 것과 같다. 물이 넘치는 소리는 거친 울음소리를 토하는 것과 같다. 한참 동안 넘치다 이제는 졸졸졸 흐르고, 넘치는 울음소리는 멈춘다. 잠잠해진 개울가에 살집 좋은 미꾸라지를 잡으려 소쿠리를 퍼 올린다. 미꾸라지가 잡히는지, 잡히지 않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당시의 객관적 시간은 지나가고 없지만, 개울에서 첨벙대며 미꾸라지를 잡던 추억은 남아 있다. 우리가 살았던 모든 시간을 기억할 수는 없다. 인간의 기억력은 무궁무진하지 않다.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 그래야 정신적 건강이 좋아진다. 그렇게 버리고 버려도 남는 것이 있다. 그것이 추억이다. 그 추억은 거만하지 않게 살며시 고개를 들어 우리에게 손짓한다.
마지막으로, 연못과 정자가 있는 이수정으로 가보자. 가는 길에 은행나무 가로수가 있다. 노란 은행잎이 떨어진다. 이는 마치 근심과 걱정이 우수수 떨어지는 듯하다. 묽은 은행알도 떨어진다. 은행알이 묽은 것은 슬픔을 삭혔기 때문이다. 슬픔이 가득 묻은 은행알에서 깊은 시름의 냄새가 난다. 우수로 가득한 은행잎도 떨어지고, 시름으로 가득한 은행알도 떨어졌다. 은행 가지는 이제 텅 비어있다.
텅 빈 가지는 시인이 현재 홀로이 앉아 있는 메마른 빈방과 닮았다. 그 방에서 시인은 가스통 바슐라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프랑스 철학자처럼 글을 쓴다. 펜뿐인 그가 아무것도 없는 빈 하늘을 흔들어 대 가을 고독을 떨어트린다.
시인은 봄 벚꽃의 풍경을 빈방에 담는다. 미꾸라지 잡던 추억의 순간을 빈방에 담는다. 마지막에 은행나무 가로수길의 풍경을 빈방에 담고자 한다. 하지만 은행나무에서 은행잎과 은행알이 떨어져 앙상하고 텅 빈 은행나무 가지를 보고 하염없는 고독과 슬픔이 몰려온다. 은행나무의 처지가 자신의 현재 처지와 너무 닮아 슬픔과 시름이 깊어진다. 그 슬픔과 시름을 달래야 한다. 어떡할까 고민한다. 시인은 글 쓰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고독을 달래려 펜을 꺼낸다. 그리고 줄줄줄 글을 쓴다. 고독을 달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