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_그곳에서 그냥 살까

의인화의 향연

by 불비

그래_그곳에서 그냥 살까


밤길에 산안개가 달빛을 퍼붓고

봄논에 개구리가 푸른 목청을 퍼붓고

벗꽃이 가로수길에 봄바람을 퍼붓고


고요하고

그늑하고

수수하고


희망이 간간이 베인 두부가

어머니의 조기탕에서 반욕을 하며

짜쪼롬한 남은 생을 들여다보고


파수 곶감 단지 논밭에 가을감들이

박수근 그림의 점묘처럼 올망졸망 매달려

넉넉하고 따뜻하고


간지논 묽은 고추의 여린 잎은

따순 나물로 무쳐 먹고

붉은 속울음은 갈아서 김치찌개에 흩뿌려 먹고

흙냄새 사람냄새 풀풀대는

그래_그곳에서 그냥 살까




의인화의 향연


시인은 그곳을 동경하고 그곳에 살고 싶어 한다. 그곳은 사람 냄새가 풍기는 곳이다. 사람 냄새를 느끼고 싶은 시인의 마음을 반영하듯, 이 시에는 의인화(擬人化; personification)가 즐비하다. 의인화는 동물이나 사물, 추상적 개념과 같이 인간이 아닌 실체에 인간의 특성을 부여하는 비유적 장치이다. 이는 비인간 실체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런 실체에 특정한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함이다.


1연에서는 ‘퍼붓다’라는 술어를 통한 의인화가 보인다. ‘퍼붓다’는 자동사와 타동사 둘 다로 사용된다. 자동사의 경우는 ‘비, 눈 따위가 억세게 마구 쏟아지다’와 ‘달빛이나 별빛 따위가 쏟아지듯 비치다’를 뜻한다. 타동사의 경우는 행위를 하는 주체와 ‘물’과 같은 객체가 등장하는 구조를 취한다. 1연은 타동사의 구조를 사용한다. 시간적·공간적 배경은 ‘밤길’, ‘봄논’, ‘가로수길’이다. 앞의 두 개는 시간과 공간을 다 품고 있고, 세 번째는 장소만 암시한다. “산안개는 달빛을 퍼붓는다”라는 표현은 “안개 속에서 달빛이 쏟아지듯 비친다”를 묘사한 것이다. 후자처럼 자동사 구조가 가능한데도 타동사 구조를 사용하고 있다. 산안개는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닌 달빛을 퍼붓는 행위자인 사람으로 의인화된다. “개구리는 푸른 목청을 퍼붓는다”라는 표현은 “개구리는 목청을 높여 소리 내어 운다”를 묘사한 것이다. ‘소리 내어 운다’는 자동사 구조이지만, ‘목청을 퍼붓는다’는 타동사 구조이다. 퍼붓는 동작은 사람이 하는 행동이므로 이 시에서 개구리는 의인화된다. “벗꽃은 봄바람을 퍼붓는다”라는 표현은 “벗꽃은 봄바람에 휘날린다”를 묘사한 것이다. 후자의 자동사 구조에서는 벚꽃이 휘날리는 객체이지만, 전자인 타동사 구조에서는 벚꽃은 봄바람은 퍼붓는 동작을 수행하는 주체인 사람으로 의인화된다.


1연에서 타동사 구조를 사용한 것은 2연에서 무언가 결과를 끌어내기 위함이다. 1연에서 의인화의 결과로 ‘고요함’, ‘그늑함’, ‘수수함’이라는 상태가 나온다. 산안개가 달빛을 퍼부은 결과로 그 밤길은 ‘고요하다’. 그 밤길은 시인에게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음을 준다. 개구리가 목청을 퍼부은 결과는 그 봄논은 ‘그늑하다’. 그 봄논은 모자람이 없어 마음에 흡족하여 여유가 있고 넉넉하다. 벚꽃이 봄바람을 퍼부은 결과로 가로수길은 ‘수수하다’. 그 가로수길은 사람의 성질이 꾸밈이나 거짓이 없고 까다롭지 않아 수월하고 무던하듯이 수수하다.


시인은 두부와도 공감대를 형성한다. 두부는 어머니의 조기탕에서 반욕을 한다. 반만 뜨거운 조기탕에 들어가 있고, 나머지 절반은 아직 자기 색깔을 유지한 채 있다. 두부는 남은 생을 들여다보며 아직 희망을 간직하고 있다. 시인은 올망졸망 매달려 있는 가을감들을 보고 넉넉하고 따뜻한 마음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간지논에서 딴 묽은 고추를 무쳐 먹고 김치찌개에 뿌려 먹으면서 흙냄새와 사람 냄새를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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