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나에게 등짝을 내어준다

아버지는 나의 거인이다

by 불비

나무는 나에게 등짝을 내어준다


등 굽은 나무는 휘어져 휙 차오르는 힘으로

나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등짝을 내어준다


전주 한옥마을 앞 은행나무가 푸르다

노란 늙음이 젊음을 데리고 수수하게 익어 오르고

푸른 기억들은 햇빛에 타지를 않고

속이 너무 굵어

속에 속이 또 차올라

맑은 다람쥐가 그 속에서 파르르르 울다 지쳐

뛰쳐나간다


동네 입구 벚꽃나무가 밝다

서른 해 전 아버지가

바람에 펄펄 우는 벚꽃나무 가로수를 심었다

옆 개울가 살얼음 아래 옅은 벚꽃떼가 둥둥 떠내려가고

봄밤이 어두울수록 몸은 더 밝아지고

벚꽃나무는 꽃을 먼저 보내고 잎을 틔우고

나는 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그리움을 밀어 올리고




아버지는 나의 거인이다


우리 평범한 인간은 홀로이 뭔가 해내기란 어렵다. 우리를 도와주고 지탱해 주는 주변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가 서로 끌어당긴다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은 이런 말을 했다. “만약 내가 더 멀리 봤다면, 내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 뉴턴에게 있어서 거인은 요하네스 케플러라고 한다. 케플러의 행성 운동 법칙이 뉴턴이 자신만의 우주를 건설하는 토대를 제공했던 것이다.


시인에게서 거인이란 누구일까? 등 굽은 나무가 시인이 자신만의 세상을 살아가는 받침대 역할을 해주었다. 등 굽은 나무는 휘어져 있다. 개구리가 도약하기 위해 움츠리듯이, 휘어진 등 굽은 나무는 휙 차오르는 힘을 숨기고 있다. 드러내지 않은 힘을 간직한 등 굽은 나무는 시인이게 등짝을 내어준다. 우리 일상에 존재하는 이 나무는 무엇으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있을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수많은 자연현상이 층층이 쌓인 결과일 것이다.


시인의 아버지는 30년 전 동네 입구에 벚꽃나무를 심었다. 가로수를 이루는 그 벚꽃나무는 동네 입구에 가로등처럼 밝고 빛난다. 어두운 밤 벚꽃나무 가로등으로 시인의 몸은 밝아진다. 바람이 불어 벚꽃나무는 꽃을 먼저 보내 개울가 살얼음 아래로 잎을 띄운다. 꽃잎을 떨어트린 바람도 슬퍼하며 소리 내어 운다. 시인도 아버지를 먼저 보내드리고 그리움을 간직한다.


시인의 아버지는 어떤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까? 아버지는 물리적 현실에서 일상의 삶을 살았다. 그 물리적 현실 위에서 한 개인으로서의 삶을 살았고, 아버지라는 사회적 역할의 삶을 살았고, 문화공동체에서 공공의 삶을 살았다. 개인적 삶과 사회적 삶과 문화적 삶이 물리적 현실 위에 층층이 쌓인 존재가 아버지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상상 속에서 층층이 쌓여가는 가상적 층화의 과정을 통해 아버지의 존재가 구성되었다. 그렇다, 아버지는 힘을 간직한 나무였고, 시인에게는 거인이었다. 시인에게 등짝을 내어주고 어깨를 빌려준 나무 거인이었다.


아버지라는 나무 거인 덕택에 지금의 시인은 존재하고, 앞으로 더욱 높게 존재하고자 할 것이다. 시인도 결국 늙어간다. 한옥마을 앞 은행나무처럼 노랗게 늙게 된다. 노란 늙음이지만 순수하고 맑은 다람쥐 같은 젊은이들에게 힘을 보태고자 한다. 아버지가 시인에게 나무 거인이 되어 주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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