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와 신체화된 인지 혁명

by 불비

서양철학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개념으로 이원론(dualism)이 있다. 이는 마음과 몸이 완전히 다른 두 실체라는 개념이다. 플라톤(Platon; 기원전 427~347)은 물질적 세계와 영원하고 무형인 관념의 세계 사이를 구분했다는 사실 때문에 이원론의 영적 아버지로 여겨지며,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는 이원론에 대한 현대에 대두된 철학자이다. 데카르트에게 있어서, 연장(延長)을 지닌 사물(res extensa), 즉 몸은 연장된다. 즉, 공간을 차지하고, 인과성의 법칙을 따른다는 점에서 기계적으로 결정된다. 사유하는 사물(res cogitans), 즉 마음은 무형이다. 그런고로 어떤 공간도 차지하지 않고, 자유롭게 사고하고 스스로를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데카르트 합리론 이후 서양철학에서는 몸과 마음이 엄격하게 구분된다는 심신이원론(mind-body dualism)이 상식이 되었다. 서양에서는 합리적 사고를 인간 본성의 본질로 보고, 마음속에서 이루어지는 추론이 물리적 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정신적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본다. 이런 견해에서는 마음과 합리적 사고가 몸이나 정서와 철저하게 구분되고 더 우위에 있다.


에드워드 슬링거랜드 교수는 이러한 이원론에서는 몸과 마음이 명확히 구분되고, 그 둘이 각자의 영역에서 맡은 일을 할 뿐 서로 교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를 강한 이원론(strong dualism)이라고 부른다. 강한 이원론은 차선 변경이 불가능한 실선이 그려진 도로를 생각하면 된다. 이런 실선 도로에서는 마음과 몸이 처음부터 각자의 차선에서 이동하지만, 어떤 시점에서도 다른 차선을 넘어올 수 없고, 끝까지 자기 차선만을 유지해야 한다. 사실 강한 이원론은 상식과 관련해 우리 스스로를 혼란스럽게 했다. 우리는 몸과 마음이 별개가 아니라 상호작용한다는 것을 일상에서 상식적으로 경험한다. 가령, 우리는 커피나 와인 같은 물리적 물질을 마시면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미루어 안다. 과음하면 이성을 잃고 실수를 하는 것이나 걱정이 과하면 신체적 건강을 해치게 되는 것이 그런 사례이다. 그리고 알코올중독이나 마약 중독처럼 마음과 몸의 영역 중 어디에 속하는지를 분류하기 힘든 사례도 있다. 즉, 강한 이원론은 우리의 상식과 맞지 않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강한 이원론은 인지과학에도 매우 나쁜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중반인 1950년대에 인지과학자들은 인간의 마음을 추상적인 정보 처리를 수행하는 통 속의 뇌(brain in a vat)로 다루었고, 이로 인해 매우 비생산적인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통 속의 뇌’는 한 과학자가 사람의 뇌를 사람의 몸에서 분리한 후 그 뇌가 기능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액체로 가득 찬 통에다 넣고, 뇌의 신경세포를 전선에 연결해서 뇌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동일한 전자 신호를 보내는 슈퍼컴퓨터에 연결한다는 생각에서 나왔다. 공상과학 소설은 슈퍼컴퓨터가 뇌에 현실과 동일한 신호들을 보내면, 뇌만 존재하고 있는 그 사람은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물체나 사건과 직접적으로 접촉하지 않고서도 그가 접촉한다고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통 속에 담긴 뇌는 자신이 진짜 사람인지 통 속에 담긴 뇌인지 확신을 할 수 없고, 그가 외부 세계에 대해 믿고 있는 모든 것들이 거짓인지 또는 거짓이 아닌지도 알 수가 없다.

통 속의 뇌

이처럼 초기 인지과학 연구에서는 사고가 구체적인 이미지나 신체적 지각과 아무런 관련이 없고, 몸과 불가사의한 방식으로 연결된 유령 같은 물질인 마음 안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다루었다. 데카르트는 이런 연결이 송과선(pineal gland)을 통해 이어진다고 생각했지만, 이 이론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를테면 인지과학자들이 탈신체화된 모형에 깊이 빠져 있으므로 이것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좀 필요했다. 이런 탈신체화된 모형은 인간이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탈신체화된 모형의 한계를 인식한 인지과학자들은 1980년대를 거쳐 1990년대에 대안을 찾으면서 결국 ‘신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 혁명을 일으킨다. 이 2세대 인지과학자들은 강한 이원론의 족쇄에서 벗어나 인간의 사고가 ‘신체화된’ 것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인간의 사고가 신체화된다는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마음속에 몸이 있다’라는 것이다. 이는 마크 존슨(Mark Johnson; 1949~ )의 1987년도 책인 《마음속의 몸》(The Body in the Mind)을 생각나게 한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 인간에게는 몸이 있다. 우리는 ‘이성적 동물’이지만, 우리는 또한 ‘이성적 동물’이기도 하다. 이것은 우리의 합리성이 신체화된다는 것을 뜻한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에서 인간이 ‘이성적 동물’이라고 말하는 것은 1950년대의 1세대 인지과학에서 말하는 인지를 강조한 것이고, ‘이성적 동물’은 2세대 인지과학에서 말하는 인지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의 사고가 신체화되었다는 것은 인간 사고가 우리가 몸으로 행하는 구체적인 경험에 근거를 두고, 매우 추상적인 개념처럼 보이는 것도 은유를 통해 우리의 신체적 경험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세대 인지과학자들은 약한 이원론(weak dualism)을 받아들인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마음-몸 이원론자이긴 하지만, 그 마음은 몸에 기반하고 마음속에 몸이 있다는 것이 약한 이원론의 핵심 내용이다. 약한 이원론은 차선 변경이 가능한 점선이 그려진 도로를 생각하면 된다. 이런 점선 도로에서는 마음과 몸이 처음부터 각자의 차선에서 이동하지만, 어떤 시점에서는 다른 차선을 넘나들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는 마음이 자기 차선에서 몸의 차선으로 넘어온다. 그래서 마음은 논리적이고 정보 처리 공간이 아니라 몸의 영역으로 넘어와서 신체화된다. 즉, 신체화된 마음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신체화된 인지 혁명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무위에 대한 고대중국의 통찰력에서 영감을 받았다. 의식적 사고와 합리성, 의지력에 집중하는 현대 서양철학과 달리, 고대중국 사상은 노하우(know-how)를 강조했다. 노하우란 무언가를 잘할 수 있는 실용적이고 암묵적이며 종종 형식화되지 않은 능력을 말한다. 우리는 자전거 타는 방법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더라도, 자전거를 탈 수는 있다. 사실 자전거 타는 방법에 의식적으로 집중하거나 그 과정을 다른 사람에게 말로 설명하려는 노력은 실제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능력을 저해할 수 있다. 지식이 말과 합리적 사고를 통해 습득되는 것이 아니라 몸을 통해 습득된다는 것은, 그 지식은 언어가 동원되지 않는 무언이고 그 지식을 습득한 개인이 자기를 의식하지 않는 무위적 지식이다. 이는 무위가 말하지 않고 힘들이지 않으며 자기를 의식하지 않는 행동인 것과 맥을 같이 한다. 고대중국 사상가들은 지식의 정점을 추상적 원리를 이해하는 것보다는 무위 상태에 들어가는 것으로 이해했다. 완벽하게 자발적이지만 자연계와 인간계의 적절한 질서와 완전히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물리적·사회적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하는 것이 그 목표이다. 이것이나 저것을 아는 것보다는 그 방법을 아는 것에 초점을 두므로, 중국 전통은 지난 2천 년 동안 무위의 내적인 심리적 느낌을 탐구하고, 그 중심에 있는 역설에 대해 고민하며, 그 역설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행동 기법을 개발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그래서 고대중국에서 이상적인 사람은 비용과 이득을 냉정하게 분석하는 사람이기보다는 무위 상태에 도달한 훈련을 잘 받은 운동선수나 수양을 쌓은 예술가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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