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에는 밤새 술을 진탕 마신 후에 수레를 얻어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취객 이야기가 나온다. “취객은 매우 빠른 수레에서 떨어져도 비록 아프기는 하지만 죽지는 않는다. 뼈마디와 힘줄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만, 그들만큼 다치지는 않는다. 그는 수레를 타는 것도 몰랐고 떨어지는 것도 몰랐으며, 죽는다는 생각이나 산다는 생각, 놀라거나 두려운 생각이 마음속에 들어오지 못했다. 이 때문에 수레에서 떨어지는 사건을 당해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그의 정신이 온전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장자》의 이 이야기에서 전체 요점은 우리가 술이 아니라 하늘에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과 같이 술에 의해 온전해져도 이 정도일 수 있는데, 하늘에 의해 온전함을 얻는 것에 대해서야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성인은 자연에 몸을 맡겨두고 있고, 그래서 아무도 그를 해칠 수 없다.”
장자는 우리에게 의식적 마음의 인지적 통제에서 벗어나게 돕는 것을 가르침의 목표로 한다. 그렇게 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술취함을 예로 든다. 그렇다면 왜 장자는 술취함으로 인한 우리의 인지적 통제 부위에 대한 부분적 마비를 찬양하는가? 왜냐하면 술취함은 무위 상태에 있을 때 나오는 것과 얼추 비슷한 것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적극적 자기 감시가 일시적으로 중단되는 것이다. 만약 장자가 현대 인지신경과학의 혜택을 받았다면, 그는 의식적 마음의 인지적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막는 적을 전전두엽피질(prefrontal cortex; PFC)로 식별했을 것이다. 장자의 견해에서 의식적 마음의 지배력을 약화시키면 우리는 ‘힘들이지 않는 행동’, 즉 무위 상태로 긴장을 풀 수 있게 된다. 자아감을 잃고 극심한 인지적 근시 상태에 빠진 술취한 사람은 자기 감시력이 떨어지거나 둔감해지고, 땅과의 접촉을 예상하면서 몸이 뻣뻣하지 않으므로 술취하지 않은 맑은 정신의 사람을 죽일 만한 사고에서도 덜 타격을 입는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수레에서 떨어져도 다치지 않는다는 것은 무위가 가져다주는 효율성이다.
뇌영상 연구에서는 전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 ACC)과 전전두엽피질(PFC)이라는 뇌의 두 부위가 인지적 통제에 관여하는 것으로 본다. 전대상피질은 일종의 연기탐지기이고, 전전두엽피질은 소방구조대에 비유할 수 있다. 연기탐지기처럼 전대상피질은 인지적 충돌의 위험을 탐지하기 위한 지속적 모니터링 방식이다. PFC는 사람의 생존본능과 성격 및 계획, 성격 표현, 의사결정, 사회적 행동 조율, 발화와 언어 조율의 다양한 기능을 담당한다. 즉, PFC는 많은 고등 인지적 기능에 책임이 있는 이성의 중심지이다.
술에 취한 취객이 수레에서 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할 때 이를 감지한 ACC는 PFC에게 이 문제를 처리하도록 알려준다. 하지만 술취한 사람은 PFC가 부분적으로 손상되어 마비되어 있다. 술취한 사람은 그 손상되어 마비된 이성으로는 생존본능이 발휘되지 않아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은 채 그냥 수레에서 떨어지게 된다. 취객이 수레에서 땅에 떨어질 때 바닥에 부딪힐 것을 예측하여 몸에 힘을 주는 행위를 하지 않고 의식하지 못한 채 떨어져 구르므로 비교적 다치지 않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무위란 ‘힘들이지 않는 행동’이고, ‘애쓰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이다. 힘을 들이고, 애를 쓴다는 것은 이성의 중심지인 PFC를 가동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이 무위라면, PFC를 가동하지 않는 것이 무위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된다. 무위에 도달하려면 자발적인 뜨거운 인지가 간섭 없이 작동하기 위해 의식적 마음인 차가운 인지를 멈춰 세워야 한다. 이런 무위 상태는 운동과학에서 말하는 격렬한 운동 후에 맛보는 도취감과 비슷하다. 신경과학자 아르네 디트리히(Arne Dietrich)는 이른바 ‘일시적 전두엽 기능저하(transient hypofrontality)’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를 했다. 이것은 강렬한 신체적 활동 중 발생하는 PFC의 인지적 통제 부위를 하향 조절하는 것을 말한다. 활발한 육체적 활동은 사람의 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고, 몸은 PFC와 같은 뇌 부위를 일시적으로 차단하면서 반응한다. 이때 발생하는 인지적 상태는 긴장을 푼 자연스러운 무위의 마음가짐과 매우 비슷해 보인다.
그렇다면, PFC의 작동을 일시 정지시키면서 무위에 도달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일까? 슬링거랜드 교수는 술취함과 약물 복용, 한 차례의 격렬한 섹스가 PFC의 일시적 하향 조절이라는 신경 패턴에 이르는 좋은 방법이라고 제안한다. 이 모든 활동, 특히 술취함은 우리의 자각과 성향, 통제의 느낌과 같은 의식적 마음을 일시적으로 멈춰 세워서 무의식적 체계가 책임지도록 한다. 노자는 ‘갓난아기의 마음’으로 되돌아가라고 충고한다. 이미 몸이 성숙한 성인이 다시 갓난아기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인간에게서 PFC가 완전히 발달하고 마지막으로 성숙에 도달하는 데까지 20년이 훨씬 넘게 걸린다. 성인기에 발달했거나 과도하게 발달한 뇌 부위인 PFC를 정확히 무력하게 만들어 뜨거운 인지가 이어받는 것이 무위 상태이다. 이렇게 하는 데 술취함이 가장 쉬운 방법이다.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무위는 효율성을 발휘한다. 술취함이 무위에 도달하는 방법이면, 술취함에도 효율성이 있을 것이다. 슬링거랜드 교수는 《취함의 미학》에서 술취함에 따른 효율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술취함은 진화의 실수가 아니라 창의성 향상, 스트레스 완화, 신뢰 구축, 그리고 사나운 종족 영장류들이 낯선 사람들과 협력하게 하는 기적을 일궈내는 것과 같이 수많은 독특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게 돕는다 … 술에 취하려는 욕구는 첫 번째 대규모 사회의 출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취하지 않았다면 문명도 없었을 것이다.” 즉, 술취함은 인간에게 문명을 만들어내는 효율성을 발휘했다.
우리 인간은 적어도 겉으로는 이기심 없는 사회적 곤충처럼 행동하는 듯한 이기적인 유인원이다. 인간은 원래 사리사욕으로 가득 찬 동물이다. 이기심으로는 협력을 이룰 수 없고, 협력이 없다면 우리 인간은 문명도 이룰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문명을 이루었다. 사리사욕과 이기심은 이성에서 나온다. 결국 이성은 협력이라는 무위에 이르는 장애물이다. 이런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 술로 이성의 중심지인 PFC를 공격해야 한다. 이처럼 인간은 자신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의적이고 체계적으로 술에 취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슬링거랜드 교수는 인간을 정의할 때 “인간이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 이 질문은 술취함에 대한 인간의 취향과 관련된 질문이다. 어쨌든 그는 왜 이런 질문을 했을까? 그는 우리 인간을 동굴 속에서만 사는 멕시칸 테트라라는 물고기에 비유한다. 이 물고기는 동굴에서만 살아서 동굴에 적응했기 때문에 동굴을 벗어나서는 살 수 없는 운명이다. 동굴에서 나온다는 것은 바로 죽음을 의미한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인간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적응해 온 ‘문화’라는 동굴에서만 살 수 있다. 더 정확히는 살 수 있다는 것도 아니고 산다는 것도 아니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화의 동굴에서 살아남기 위해, 죽지 않기 위해, 계속 생존하기 위해 우리 인간은 ‘창의적 동물’이어야 하고, ‘문화적 동물’이어야 하고, ‘공공적 동물’이어야 한다는 것이 슬링거랜드 교수의 주장이다. 이런 세 가지 종류의 동물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술에 취해야 하고, 술에 취해 문명이라는 무위에 도달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무위와 술취함의 연관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