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와 차가운 인지

by 불비

차가운 인지(cold cognition)는 느리고 계획적이고 노력이 필요하고 ‘의식’적이다. 뜨거운 인지(hot cognition)는 빠르고 자동적이고 힘들이지 않고 대개 ‘무의식’적이다. 이 둘의 차이는 한마디로 의식과 무의식 또는 합리와 비합리의 차이이다. 이 두 인지가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거의 10 대 90으로서, 뜨거운 인지가 인간 행위 대부분을 책임진다. 내가 하루 24시간을 보내는 방식을 떠올려보자. 대부분은 루틴대로 무의식적으로 진행된다. 의식이 들어오는 경우는 뭔가 결정을 할 때인데, 하루 중 결정을 내리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두 인지의 비중 차이는 뇌 부위에서도 반영된다. 뇌에서 차가운 인지 부위, 즉 인지적 통제 부위는 전체 뇌에서 상대적으로 자그마한 전대상피질(ACC)과 전전두엽피질(PFC)이다. 뇌의 나머지 부위는 야생마가 끄는 마차나 밀어닥치는 강물, 내 의지를 벗어난 감정과 비슷하다. 뇌에서 많은 부위를 차지하는 뜨거운 인지가 우리 삶에서 그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상대적으로 그 부위가 적은 차가운 인지는 긴급 상황에서만 작동한다.


뜨거운 인지는 빠르므로 경제적이고 효과적이다. 즉, 그렇게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 반면 차가운 인지는 느리고 노력이 동원되므로 비용이 발생한다. 어떤 행동을 할 때 이렇게 할지 저렇게 할지를 두고 많은 생각을 하고, 상대방과 대화를 할 때도 이 말을 할지 저 말을 할지에 대해 의식적으로 노력하면, 너무 많은 에너지와 비용을 들이기 때문에 나중에 우리는 피곤함을 더 느끼게 된다. 이처럼 우리 삶에서는 의식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이 더 편하다.


그렇다면, 차가운 인지 그리고 의식은 우리 삶에서 불필요한 것일까?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가 노력을 들여 의식과 차가운 인지를 발휘하면 투자한 만큼 유익한 결과물을 회수할 수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차가운 인지와 의식은 어떤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첫째, 의식은 뜨거운 인지의 빠르고 자동적인 루틴이 난관에 부딪힐 때 유연성을 발휘하도록 해준다. 무의식적 마음은 루틴대로 진행하던 중에 무언가 잘못되어 방해를 받으면 전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 ACC)을 통해 의식적 마음에게 구원 요청을 하여, 의식적 마음에게 작동하여 뭐가 잘못되었는지 파악하고 그것을 고치도록 요청한다. 한겨울 어느 아침에 평상시처럼 출근하려고 문을 나섰다가 갑자기 빙판길에서 미끄러지는 일이 일어났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루틴대로 평범하게 걷는 행위는 무의식의 뜨거운 인지의 작용하고, 빙판길에서 미끄러지는 비상사태가 생기면 차가운 인지가 개입해야 한다. 이제는 빙판길에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 걸음걸이 하나하나를 의식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처럼 차가운 인지는 위험한 상황에서 다치는 일을 미리 방지할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차가운 인지는 우리의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된다. 늦은 밤에 갑자기 배가 고파 라면을 끓여 먹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물론 밤이 늦었기에 잠을 자고 싶은 유혹도 든다. 이 두 가지 유혹은 뜨거운 인지의 작용이다. 현재 이 두 가지 욕구가 충돌하고 있다. 이런 충돌을 해결하기 위해 차가운 인지가 조정자로 나선다. 차가운 인지는 늦은 밤에 먹는 라면이 우리의 다이어트와 건강에 좋지 않고, 적당한 공복으로 잠을 자는 것이 우리 건강에 좋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 그리하여 차가운 인지의 중재로 우리는 라면을 먹지 않고 공복으로 잠자리에 들어 아침에 가뿐한 상태로 잠에서 깨게 된다. 이때 뜨거운 인지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처럼 차가운 인지는 우리의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


둘째, 차가운 인지는 우리의 사회생활을 적절히 관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의 무의식적인 마음인 뜨거운 인지는 우리 환경에서 위험 요소를 식별하며, 상대의 얼굴에서 묻어나는 정서를 읽어내는 데 매우 능숙하다. 이에 반해 우리의 의식적 마음인 차가운 인지는 타인의 마음을 모형화할 수 있다. 즉, 차가운 인지는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 방법을 이해할 수 있도록 타인의 내적 사고에 대한 가상 표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나는 같은 사무실의 한 여자 동료와 썸을 타는 중이다. 언젠가는 그녀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할 참이다. 실수 없이 멋지게 고백을 하기 위해 나는 머릿속으로 그녀에게 어떻게 고백할지 연습을 한다. 실제 연습이 아닌 머릿속 연습은 차가운 인지의 도움으로 내 머릿속에서 나와 그녀의 관계를 설정했으므로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테니스나 골프를 배울 때 특정 동작을 반복 연습을 하면 실전에서 효과를 발휘하듯이, 머릿속에서 하는 사랑 고백 연습도 실제로는 내가 그녀에게 부드럽고 효과적으로 사랑 고백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이처럼 차가운 인지를 통한 머릿속에서의 반복 연습은 타인과의 효율적인 상호작용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셋째, 차가운 인지의 결정적인 요소가 언어라는 점에서, 우리 인간에게 언어가 하는 역할은 결국 차가운 인지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언어의 가장 큰 기능은 내가 개인적으로 겪은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매개물로 전환하는 것이다. 내가 경험을 통해 획득한 지식, 타인이 자신들의 경험을 통해 획득한 지식은 모두 언어를 통해 서로에게 전달되며, 이런 지식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인류 문명을 이룩하게 되었다. 이런 언어의 기능은 유발 하라리(Yuval Harari; 1976~ )가 말하는 인지 혁명과도 관련이 있다. 인류 역사에서 약 7만 년 전에 시작된 인지 혁명은 호모 사피엔스의 내부 배선을 변화시킨 유전적 돌연변이로, 이들이 전례 없는 방식으로 생각하고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상된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언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호모 사피엔스가 대량으로 유연하게 협력하고,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경쟁 종을 물리치고, 적대적인 동물들을 멸종시키며, 농작물을 경작하게 했던 것이 바로 일반적인 신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이런 차가운 인지의 능력이었다.


언어는 또한 끊임이 없이 일관된 자아감(sense of self)을 만들어내는 서술에도 결정적이다. 만약 우리가 술이나 여타 취성물질로 인해 자아와 이성의 중심지인 전전두엽피질(prefrontal cortex; PFC)이라는 뇌 부위가 일시적으로 마비된다면, 언어에 기반한 자아가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자아인 내가 중심이 되어 주변에서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한 내 생각을 명확히 전달하기 어렵게 된다.


언어는 한 사회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많은 양의 정보인 ‘문화’를 필요로 하는 특별한 종류의 추상적 지식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문화적 진화 과정은 개인이나 한 세대의 범위를 벗어나는 해결책을 창조할 수 있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의 문화적 진화는 무언의 과정이 아니라 언어를 사용하는 의사소통을 통해 이루어진다. 언어를 통해 시간이 지나면서 축적된 문화 집단의 집단정신은 일반적으로 한 개인의 뜨거운 인지, 무의식적 마음, 본능과 직감보다 더 현명하다. 개인의 뜨거운 인지의의 해결 능력을 벗어나는 문제를 집단의 차가운 인지가 해결하는 예를 위해 마니오크(카사바)의 경우를 고려해 보자. 이 덩이뿌리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처음 재배한 중요한 주식 작물이지만 감자처럼 간단히 요리해서 먹을 수는 없다. 품종 대부분에는 쓴 물질이 들어 있으며, 마니오크를 섭취할 때 이 물질은 시안화물(청산가리) 중독을 일으킨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마니오크에 의존해 온 문화는 그 뿌리를 긁어내고 강판에 갈며, 적시어 끓이고, 그다음 구워서 먹기 전에 며칠을 끈기 있게 기다리는 등 그 뿌리를 가공하는 데 수일이 걸리는 정교한 절차를 개발했다. 이런 추상적 지식은 언어를 매개로 해서 진행된 길고 긴 문화적 진화의 결과물이다. 왜 그런 가공을 거쳐야만 이 덩이뿌리가 식용되는지는 그 문화의 구성원은 알지 못한다. 그냥 문화적 기억과 함께 길고 맹목적인 시행착오 과정을 통해 수천 년 전에 마니오크의 식량 잠재력을 드러내는 문제를 해결했을 것이다. 현대의 문화는 더는 그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 이미 언어를 통한, 차가운 인지를 통한 추상적 지식이 있으므로 그냥 그 지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전하게 그 덩이뿌리를 먹을 수 있는 혜택을 누리게 된다. 이 또한 언어의 큰 역할이고, 차가운 인지의 큰 역할이다.


인지적 통제 부위를 사용하는 개인의 차가운 인지와 우리의 문화적 전통에 내포된 의식적인 추상적 지식인 집단의 차가운 인지에 의존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지구상에 있는 거의 모든 종과는 달리, 인간이 무의식과 뜨거운 인지의 포로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문화에서 시작된 복잡한 사회 집단에 살기 위해서는 차가운 인지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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