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와 순치된 뜨거운 인지

by 불비

차가운 인지와 뜨거운 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의식과 무의식을 구분하고, 합리와 비합리를 구분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다. 더 나아가 마음과 몸을 구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차가운 인지는 의식, 무의식, 마음의 자리이고, 뜨거운 인지는 무의식, 비합리, 몸의 자리이다. 뜨거운 인지에 뿌리를 둔 욕망과 본능, 무의식적 습관의 총체인 몸은 완벽한 인간성에 도달하는 데 장애물로 생각된다. 이런 몸을 억제하는 것이 차가운 인지에 뿌리는 둔 이성과 합리, 의식적 의지의 총체인 마음이라고 흔히 이야기한다. 인간의 몸은 그냥 자기가 하는 일을 뜨거운 방식으로 진행한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몸이 가던 길을 멈춰 세우고 심사숙고하고 이해득실을 따져보고 의식적이고 충분히 고려한 끝에 몸에게 최종 지시를 내리고 결정을 한다. 이런 점에서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마음은 인간의 몸을 통제하고 다스리는 지도자이자 주인으로 간주된다.


몸과 마음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비유가 존재한다. 서양철학에서 플라톤은 이 둘의 관계를 야생마가 끄는 전차 몰기에 비유하는데, 전차를 끄는 야생마는 몸이고, 전차를 모는 전사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 둘의 관계를 물 통제에 비유하는데, 밀어닥치는 강물은 몸이고, 물을 수로를 통해 필요한 곳으로 보내거나 홍수를 막기 위해 물을 다른 곳으로 보내는 관개 관리자는 마음이다. 어떤 비유를 들든 간에, 마음(전차 모는 전사와 물 관리자)은 몸(야생마, 물)의 뜨거운 힘을 통제하기 위해 힘을 발휘해야 한다.


문제는 뇌에서 뜨거운 인지 부위, 즉 인지적 통제 부위인 ACC와 PFC의 용량이 무궁무진한 것이 아니라 제한된 자원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이거나 의식하거나 관심을 기울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정확한 드라마 제목은 기억나질 않지만 한 장면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서로 몇 년간 결혼을 전제로 사귀던 남녀가 혼자 사는 여자의 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리러 왔다. 예비 사위가 예비 장인에게 인사를 온 것이다. 평범한 대화를 나누던 중 딸이 자기 아버지 앞에서 자기 남자친구에 대해 투덜대는 장면이 나온다. 내용인즉, 남자친구가 처음 사귈 때 자기에게 많은 관심을 주면서 잘해 주었는데, 최근 들어 그 강도가 약해졌다면서 아버지에게 남자친구를 혼 좀 내주라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남자친구를 혼내고 있을 테니 딸에게 먹을 음식 좀 가져오라고 하면서 부엌으로 보낸다. 딸의 아버지는 웃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자네의 그런 행동 변화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처음처럼 죽을 때까지 여자에게 관심을 애정이라는 감정을 똑같이 줄 수는 없다. 그러면 남자는 말라 죽는다.” 그러면서 딸의 아버지와 남자친구는 여자의 뒷모습을 살짝 쳐다보면서 같이 조용히 웃는다.


그렇다, 관심의 영역인 인지적 통제 부위는 제한된 자원이지 무궁무진한 자원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공짜가 아니고 돈이 들고 비용이 발생한다. 영어에는 “Pay attention!”이라는 표현이 있다. 관심을 보이다, 주의하라는 뜻일 텐데, 동사가 pay이다. 돈을 내라는 것이다. 즉, 주의와 관심에는 돈이 든다는 것이다. 한 가지 일에 ‘쓰면’ 다른 일에는 쓸 것이 줄어든다. 이 현상은 ‘자아 고갈(ego depletion)’로 알려져 있다. 자아 고갈은 의지력이나 자기 통제력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갈될 수 있는 제한된 자원이라는 것이다. 이 개념은 자기 통제력을 발휘하는 것과 관련된 동일한 인지 과정이 다른 인지 작업에도 관여하고, 이러한 과정이 반복적으로 요청될 때 피로해지고 효과가 떨어진다는 생각에 기초한다. 이는 자기 통제력과 의사결정 능력의 저하로 이어져 역경 앞에서 유혹에 저항하거나 지속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자아 고갈은 정신적 피로, 스트레스, 포도당 고갈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으며, 포도당 수치를 높이고 충분히 자며 마음챙김을 실천하는 등 다양한 전략을 통해 완화될 수 있다.


자아 고갈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마음챙김 전략이 있다. 유교에서 제안하는 방법은 야생마를 길들이는 것 같은 순치(馴致; domestication)이다. 야생마를 길들여 함께 일하도록 할 수 있다면 일은 한층 더 쉬워질 것이다.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의식적 마음은 새롭고 바람직한 목표를 획득하고, 그것을 무의식적 자아로 전달할 수 있으며, 무의식적 자아는 그런 목표를 습관으로 바꾸고, 지속적인 모니터링 없이 실행할 수 있다. 힘이 드는 의식적 행동을 이렇게 ‘무위’로 변형할 수 있는 것이다. 뜨거운 인지였던 몸을 차가운 인지가 제어하고 순치한 뒤에 변형된 뜨거운 인지가 나온다. 이제 변형된 뜨거운 인지는 뜨거운 인지의 속성으로, 즉 무위 상태로 진행될 수 있다.


운전과 같은 새로운 육체적 기술을 배우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자동차에 탑승해 첫 운전 교육을 받을 때 강사의 지시를 따라서 핸들을 돌리고 가속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을 밝을 때 신중하게 생각하면서 집중을 한다. 이때는 의식적 인식을 담당하는 PFC가 에너지를 발휘하여 최대한 활성화될 것이다. 하지만 계속 연습함에 따라 핸들 돌리기와 페달 밟기 시에 발휘되는 집중력은 기저핵(basal ganglia)이라는 뇌의 다른 부위로 조금씩 흘러 들어간다. 기저핵은 너무 잘 배워서 더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행동인 자동운동 루틴을 책임지는 대뇌피질 아래에 있는 신경세포 다발이다. 자동차 운전이라는 기술이 ‘내면화되면서’ 의식적 마음은 점차 긴장을 풀고 기저핵과 감각운동계가 혼자서 책임지도록 한다. 이런 상태는 무위 상태이므로, 이제는 운전하면서도 집중력을 발휘하지 않고서 음악을 듣거나 핸즈프리로 상대방과 전화 통화도 가능하게 된다. 이는 무위적 운전이다. 이는 곧 변형된 뜨거운 인지가 작동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 자동차 운전은 차가운 인지가 하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인지가 하는 것이고, 내 마음이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이 기억하는 것이다. 이런 기억을 ‘근육 기억’ 또는 ‘기저핵 기억’이라고 부를 수 있다.

기저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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