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無爲)라는 개념은 동양철학에서 흔히 노자의 도가(道家)에서 나오는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에드워드 슬링거랜드 교수는 《애쓰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에서 무위 개념이 유교와 도교를 모두 아우르는 것으로 보면서 무위를 폭넓게 다룬다. 무위는 흔히 ‘비행동’이나 ‘하지 않기’로 번역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이고 자연스럽게 무언가 하는 것’을 뜻한다. 즉, 외부로부터 강하게 부여되거나 계획적인 의도나 의지 없이 행동한다면, 무위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매우 가까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유교와 도교를 포함해 중국철학은 자연스러운 자발성(自發性)을 달성하려는 지속적인 노력과 함께 어떻게 의미 있는 행복한 삶을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집중한다. 따라서 과연 유교에서는 어떻게 무위를 달성하려 했는지 살펴보는 것이 정당화된다.
한적한 시골에서 긴장을 풀고 장기를 두며 술을 마시는 노련하고 지혜로운 도가 은둔자의 모습이 무위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고대중국에서 무위를 얻는 가장 지배적인 전략은 공자의 《논어》에서 처음 제시되었고, 그 후 전국시대가 끝날 무렵에 공자의 추종자 순자가 더욱 상세히 다듬은 것이었다. 공자와 순자는 자연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철두철미하게 수련된 완벽함으로 나아가려는 한평생의 노력을 통해서만 무위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전략에는 인간의 타고난 성향을 제멋대로 두면 안 된다는 암시가 있다. 공자와 순자는 삶의 성취감과 사회적 조화를 이루는 유일한 방법이 과거에서 물려받은 문화적 이상에 맞게 우리의 본성을 개조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의 목표는 여전히 무위이지만, 이것은 단지 흐름에 맡겨서 나온 결과라기보다는 문화적·교육적 성취인 인공적 자발성으로 이해된다.
공자와 순자는 자발성을 궁극적인 최종 목표로 지지했지만, 개인적 층위와 문화적 층위에서 ‘차가운 인지’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교육 초기 단계에서는 거의 항상 그러하듯이 의지력을 발휘하고, 자신의 행동을 의식적으로 반성하며, 적절할 때 ‘뜨거운 인지’를 억누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지과학에서 말하는 뜨거운 인지는 암묵적이고 빠르며 자동적이고 힘들이지 않으며 대체로 무의식적인 한편, 차가운 인지는 명시적이고 느리며 계획적이고 노력이 필요하며 의식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이 두 가지 유형의 인지를 몸과 마음을 주제로 논의하게 되면 두 인지 간의 중요한 기능적 차이를 포착할 수 있다. 느리고 차갑고 의식적인 마음과 빠르고 뜨겁고 무의식적인 신체적 본능, 육감, 기술이 그 둘의 차이이다. 공자와 순자는 유교를 실천하면서 차가운 인지에 의존하고, 차가운 인지를 통한 개인적 변형을 강조한다.
공자는 예를 실천할 때 자연스러움을 강조한다. 순자는 공자가 귀중하게 여긴 자연성이 그냥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힘들게 얻은 성취라는 것을 강조한다. 순자는 뜨거운 인지가 신뢰를 얻기 전에 차가운 인지의 과정에 의해 제약되고 광범위하게 개조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인지과학의 최근 연구는 뜨거운 인지의 힘을 부각하는 경향이 있다. 뜨거운 인지는 빠르고 경제적이며 효과적이고 명확히 세상에서 인간 행위 대부분을 책임진다. 그런데 왜 공자와 순자는 차가운 인지를 강조한 걸까? 그런데 사실 공자와 순자가 강조한 자연성은 차가운 인지가 아닌 뜨거운 인지가 아닌가? 뭔가 모순이 있는 듯하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는 것에서 유교의 무위에 대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공자와 순자가 추구한 무위 전략은 차가운 인지를 뜨겁게 하는 것이다. 즉, 운전면허증을 따기 위해 핸들을 돌리고 가속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을 밟는 등 차가운 인지를 통해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 배운 운전 과정을 뜨거운 인지의 무의식인 무위 방식으로 수행할 수 있을 때까지 집중적으로 마음을 훈련해서 차가운 인지를 뜨겁게 해야 한다는 것이 유가들의 무위 전략이었다. 운전을 배우기 전은 미쳐 날뛰는 뜨거운 인지와 비슷한 자연 상태이다. 운전에만 집중하면서 운전을 배우는 과정은 차가운 인지 상태가 작동하는 시간이다. 운전면허증을 따 음악을 들으면서까지도 편안한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운전하는 것은 뜨거운 인지 상태이다. 즉, ‘뜨거운 인지 ⟶ 차가운 인지 ⟶ 뜨거운 인지’의 순서가 유교가 무위를 달성하는 전략이다. 이 공식에서 중요한 것은 처음의 뜨거운 인지와 마지막 뜨거운 인지가 다르다는 것이다. 마지막 뜨거운 인지는 교육과 연습의 결과로 나왔다는 점에서 변형된 것이고 순치된 것이다.
유교가 무위에서 강조하는 ‘자연성’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성이나 그냥 나무에서 떨어지는 자연성(처음의 뜨거운 인지)이 아니라, 힘들게 노력해서 얻은 성취인 순치된 자연성(마지막 뜨거운 인지)이다. 유교에서 공자는 일흔의 나이에 이상적으로 사회화된 사람의 전형이었다. 공자는 품위 있고 매우 예절 바르지만, 완전히 편안하고 진실하다. 이런 공자는 순치된 자연성에 도달했다. 공자는 자기 자아를 조각하듯이 다듬고 개조하여 힘들이지 않은 편안함과 무의식적 품위를 얻었다. 이런 편안함과 품위를 얻는 방식은 예법과 문화에 대해 매우 잘 아는 것이다.
조각가라면 누구나 알듯이, 거칠게 베고 난 뒤 매끄럽게 다듬고 반반하게 손질해야 한다. 유교의 자기 수양에서 마무리 작업은 공동 노래와 춤을 사용해 수행되었다. 조화로운 집단행동은 결국에는 완벽하게 완성된 유교 군자를 만들어내는 조각과 개조 과정의 마지막 단계였다. 음악은 나의 정서를 빠르고 직접적으로 변형시킬 수 있다. 더 나아가 누군가의 음악을 듣게 되면 그 사람의 성격을 즉각적이고 정확히 읽어낼 수 있다. 음악과 춤은 차가운 의식적 마음을 앞질러 가서 우리의 신체화된 뜨거운 인지에 도달하게 하는 수단이다.
유교적 무위를 얻기 위한 유교 전략은 자기통제를 강화하려고 노력하지만, 주로 차가운 인지의 승인을 받는 행동을 자연스럽고 자발적으로 만듦으로써 그런 행동을 더욱 신뢰할 만한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 유교 군자는 문명에서 불편한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편안하다. 이는 차가운 인지의 결과로 나온 뜨거운 인지가 완벽하게 우리에게 신체화되었기 때문이다. 《순자》의 한 구절은 이를 잘 표현해 준다. “군자의 학문은 귀로 들어와 마음에 굳어 사지로 퍼져 행동(動)과 휴지(靜) 모두로 나타난다.” 신체화된 뜨거운 인지의 시점에서는 인지적 통제는 더는 필요하지 않다. “성인은 자기가 바라는 대로 행동하고 자기의 정서대로 따르지만, 그것은 문명 규범에 조절되어 일치한다. 그러므로 그가 무엇을 노력하고, 무엇을 참으며, 무엇을 위태롭게 느끼고 경계하겠는가?” 이것이 유교의 무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