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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비 Oct 28. 2022

취하려는 인간의 욕구

호모 임비벤스

나에겐 사회적 형님이 두 분 계신다. 우린 삼형제로 지낸다. 제일 큰 형님은 대학교수로 퇴직한 뒤 지금은 사단법인을 설립하셨고, 둘째 형님은 참가지미 전문 횟집을 운영하신다. 나는 막내로 아직 대학에 남아 있다. 제일 큰 형님은 전기공학 전공인데도 한자와 동양철학에 매우 조예가 깊다. 큰 형님은 한 번은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본래 사람에게는 부모가 지어주신 이름이 있고, 이를 귀하게 여겨 예로부터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고 이름 대신 다른 호칭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 삼형제도 자(字)를 지어 그렇게 부르자고 제안했다. 큰 형님이 직접 우리 각자에게 맞는 자(字)를 지어왔다. 첫째 형님은 ‘강록(橿熝)’이고, 둘째 형님은 ‘시진(鍉鎭)’이고, 막내인 나는 ‘불비(沸㵒)’이다. ‘강록’은 곧고 바를 ‘강’과 단련할 ‘록’으로, 곧고 바름을 연마하라는 뜻이다. ‘시진’은 열쇠 ‘시’와 눌러두는 물건 ‘진’으로, 주위를 떠받치는 훌륭한 인물이 되라는 뜻이다. ‘불비’는 샘솟을 ‘불’과 샘솟을 ‘비’로, 끊임없이 샘솟는 열정과 아이디어를 뜻한다. 


취함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이야기가 살짝 옆길로 샌듯하다. 자,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우리 삼형제는 주기적으로 시진 형님 횟집에서 만나 편안한 술자리를 가진다. 술도 일종의 음식이라는 생각으로 우리는 술과 신선한 회를 비롯해 맛있는 다양한 음식을 서로 나누며 우의를 돈독히 하고 지내고 있다. 한 번은 강록 형님이 알코올도수 15도인 막걸리에서 증류한 전주와 그 전주에서 증류한 알코올 도수 40도인 소주를 마셔보라고 하면서 가져왔다. 특이한 맛이고 나에게 맞는 느낌이어서 어디서 구했냐고 물어보니 함양에 있는 개인 양조장에서 사 왔다고 했다. 또 구하려면 함양까지 직접 가야 하냐고 물었더니, 전주와 소주 모두 1.8리터짜리 페트병에 담아서 판다고 했다. 전주든 소주든 상관없이 10개만 맞추어 전화로 주문하면 배달도 된다 얘기이다. 물론 마트에 가면 다양한 맛이 나는 그런 종류의 술을 편하게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난 함양에서 개인 양조장을 하시는 분이 양조의 숨은 고수, 즉 양조의 ‘덕후’라는 느낌이 들어서 그 술이 마시고 싶었다. 그 후로 나는 그 두 가지 술을 전화로 주문해서 냉장고에 보관해 두었다. 그리곤 저녁 식사 때 보관해 둔 술을 마시면서 적당히 취한다.      


이렇게 난 편하게 전화 한 통으로 내 취함의 취향을 충족시킨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이라는 곳이 아닌 시간과 공간상 매우 떨어진 다른 문화나 부족의 사람들도 취함에 대한 취향 충족에 관해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을까? 물론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천 년 동안 인간은 취함을 위해 자신들의 독창성과 집중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먹을 것이 없어서 기아 직전인 마을조차도 술 생산을 위해 귀중한 곡식이나 과일을 상당 부분 활용했던 사례가 있다. 식민지 이전의 멕시코에서 농업이 없던 부족은 제철 선인장 열매로 술을 만들기 위해 먼 거리를 여행했다고도 한다. 알코올을 구하지 못한 이주민은 구두 가죽이나 풀이나, 현지의 곤충을 미친 듯이 발효시켰다. 지금은 불법이긴 하지만 술 대신 환각제가 가미된 담배나 대마초로 취하려는 욕구를 충족시키는 문화도 있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일부 남미 문화권에서는 독두꺼비를 핥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취하려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처럼 다양한 문화와 부족이 피나는 노력을 하고 엄청난 비용을 물며 심지어 역겨운 일까지 한 것에 비하면, 나는 전화 한 통으로 나의 취함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여하튼 취함의 욕구가 인간 존재에 얼마나 중심적인가를 참작하여, 고고학자 패트릭 맥거번(Patrick McGovern)은 인간을 호모 임비벤스(Homo imbibens; 술 마시는 인간)라고 불러야 한다고까지 농담 섞인 말을 했다.


술을 통해서든 다른 화학적 취성물질을 통해서든 취하려는 인간의 욕구는 흔히 쾌락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다. 쾌락을 가장 가치 있는 인생의 목적이라 생각하고 모든 행동과 의무의 기준으로 보는 윤리학의 입장인 쾌락주의가 존재하듯이, 쾌락 자체를 충족시킨다는 것이 문제 될 것은 없다. 단, 불법적인 방법으로 쾌락을 충족시키는 것이 문제가 된다. 연예인의 사건 사고를 다루는 뉴스에서 흔히 보이는 마약을 통한 쾌락 충족,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다른 글에서 취함과 쾌락을 다시 다루므로 쾌락은 이쯤 해 두기로 한다.)      


취함의 욕구는 그 역사가 매우 깊다. 튀르키예(개명 전: 터키) 동부에 있는 12,000년 전의 유적지에서, 농업을 생각해 내기 이전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곡식이나 포도를 발효시켜 술을 만들어 마시면서 고주망태가 되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유물이 발견되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사시 《길가메시》(기원전 2000년경)에서는 성창(聖娼, 성스러운 창녀)이 야수 엔키두를 길들여서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그에게 맥주를 물릴 때까지 마시게 한 뒤 사랑을 나누었다고 한다. 

《길가메시》의 엔키두

취함에 대한 인간의 욕구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시간상 오래되었고 널리 퍼져 있고 매우 강하다는 것에서 슬링거랜드 교수는 과학적 접근법을 통해 술취함을 한 번 들여다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가 사용하는 과학은 고고학, 역사학, 인지신경과학, 정신약리학, 사회심리학, 문학, 시, 유전학 등이다. 이런 인지과학과 인문학을 통해 그는 이제 취함에 대한 인간의 욕구가 진화의 실수가 아니라, 진화가 보기에 거기에는 나름의 원인과 실용성과 장점이 있어서 그대로 둔 것임을 증명하려 한다. 술 취함의 장점이 도대체 무엇인지는 다음 글에서 다시 이야기할 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길! (애주가라면 나름대로 술취함의 장점을 열거할 기회가 있다면 기필코 술술 열거할 것이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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