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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비 Oct 25. 2022

서로 상극인 술취함과 전전두피질

나는 수업 시간에 TED라는 영어 강연 사이트를 자주 활용한다. 그중 단골손님은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심리학과 교수인 앤젤라 더크워스(Angela Duckworth)의 〈Grit: The power of passion and perseverance(근성: 열정과 인내의 힘)〉이라는 제목의 강연이다. 러닝타임이 6분 12초로 그리 길지 않고, 내용도 그렇게 이해하기 까다로운 것도 아니다. 도입부에 자신이 심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한 배경과 연구 주제인 ‘근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근성이 무엇이며,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 있는 여러 부류의 사람 중 근성이 있는 사람들이 결국 성공에 이른다는 이야깃거리로 전개된다. 그리고 근성을 어떻게 키울 수 있느냐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성장 마음가짐(growth mindset)이라는 개념을 꺼내 든다. 성장 마음가짐이란 우리 인간의 뇌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도전에 맞서면서 바뀌고 성장할 수 있는 것이므로 기꺼이 실패하고, 기꺼이 틀리고, 배운 교훈으로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다는 개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어른들은 우리 아이들이 더욱 근성을 키우는 것에 대해 우리 스스로 근성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라는 발언으로 강연을 끝낸다.

TED 강연 중인 앤젤라 더크워스

앤젤라 더크워스의 이 근성 강연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우리 어른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근성을 키우도록 재촉할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근성을 키울 때까지 근성을 갖고 우리 어른들이 기다려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말을 깊이 새기면서 자녀를 둔 부모로서 많은 반성을 했다. 우리 아이들에게 너무 잦은 잔소리 혹은 너무 빈번한 잔소리는 나의 근성이 부족함에서 나온 거구나 하면서.      


하지만 처음에 나는 앤젤라 더크워스의 이 강연을 봤을 때는 왜 우리 어른들이 근성을 갖고 기다려야 하는지는 몰랐다. 그 이유는 《취함의 미학》을 번역하면서 알게 되었다. 이 책의 초고가 출간되기 몇 주 전 2022년 2학기 수업에서 더크워스의 강연을 학생들과 같이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녀의 마지막 발언까지 왔다. 그때 난 갑자기 ‘아하~’의 순간이 왔다. 예전 강의에서는 어른들이 자녀나 학생들에게 잔소리를 자제해야 한다는 말만 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취함의 미학》 덕분에 그 이유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왜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이 근성을 가질 때까지 근성을 갖고 기다려야 하는지를 이 책을 번역하면서 찾은 것이다. 그 비밀은 바로 슬링거랜드 교수가 술취함을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 PFC)과 관련해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찾을 수 있었다. 먼저, 다음 그림을 보면서 뇌 전체에서 전전두피질의 위치와 그 부위가 담당하는 우리 인간의 활동, 그리고 그 부위가 형성되어 완성되는 시기까지 확인해 주기 바란다. 이왕 보는 김에 다른 부위들도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 

전전두피질을 포함한 뇌 구조

전전두피질은 전두엽의 앞부분을 덮고 있는 대뇌피질로서, 눈과 이마 바로 뒤에 있는 대뇌의 일부이다. 기능적 측면에서 전전두피질은 사람의 생존본능과 성격 및 계획, 성격 표현, 의사결정, 사회적 행동 조율, 발화와 언어 조율의 다양한 기능을 담당한다. 즉, 전전두피질은 이성의 중심지이다. 문제는 이 전전두피질이 완전히 발달하고 마지막으로 성숙에 도달하는 데까지 20년이 훨씬 넘게 걸린다는 점이다. 

 

‘근성’은 감정의 문제일까 아니면 이성의 문제일까? 당연히 이성과 관련이 있다. 근성은 감정을 앞세워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내하고 참으면서 앞으로의 일을 계획하고 사회적 행동을 어떻게 해나갈지 생각하면서 결정하는 속성과 관련 있다. 그런데 우리 청소년들은 생리학상 아직 20살이 되지 않았으므로 이 전전두피질이 온전히 성숙하지 않았다. 반면, 우리 성인들은 20살이 넘었기 때문에 이 부위가 완전히 성숙한 상태이다. 즉, 우리 자녀들은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전전두피질로 인해 근성을 갖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자녀들이 20살 정도 될 때까지 우리 어른들이 이성적 존재이므로 근성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앤젤라 더크워스는 이 강연에서 근성 이야기를 하면서 전전두피질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반면 슬링거랜드 교수의 술취함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전전두피질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우리 인간이 다른 종에 비해 지금의 성공을 거둔 것은 인간에게는 이성(理性)이 있기 때문이다. 전전두피질이 이성의 자리라고 했으므로, 이 전전두피질 때문에 인간은 인지 혁명과 노동 혁명과 과학 혁명을 일으켜 지금처럼 성장하고 발전했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술을 마셔 취하면 전전두피질은 타격을 받고 쓰러져 제 기능을 못 하는 일이 생길 것이다. 즉, 술취함과 전전두피질은 서로 협업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상극이다. 그런데도 왜 우리 인간은 여전히 술을 마셔 취하고 싶어 하는가? 슬링거랜드 교수는 뒷장에서 이 질문에 재미있게 답해줄 것이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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