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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비 Nov 01. 2022

술취함에 대한 인간의 취향

어제는 제주도에 사는 아주 친한 군대 후배가 여자친구와 같이 미술 전시전을 보고 저녁에는 나를 만난다는 목적으로 창원에 왔다. 우리 셋은 나의 사회적 형님이 운영하는 횟집에서 만났다. 그 여자친구는 뉴욕에서 석사를 마치고 4년 전 귀국해 제주에 자리를 잡았고, 올해는 제주 비엔날레 협력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짧은 소개가 끝난 뒤 군대 후배는 여자친구가 담갔다고 하면서 막걸리 한 병을 건네주었다. 여자친구는 최근에 막걸리 담는 일을 시작했으며, 지금 이 막걸리가 자기가 만든 첫 ‘작품’이라고 했다. 나에게 먹어보고 평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난 너무 궁금해 바로 마시고 싶었지만, 친한 횟집 사장님이 잠시 들어올 것 같아 그때 같이 마시기로 하고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10분 정도 지나자 사장님이자 내 형님이 들어와 내 옆에 앉으면서 내 앞 있는 것이 뭐냐고 물었다. 그 막걸리의 사연을 전해 준 뒤 우리 둘은 그 막걸리를 마셨다(고맙게도 후배와 그 여자친구는 우리에게 그 막걸리를 양보해 주었다). 그 맛은 막걸리인데, 가볍고 ‘달지는 않았지만 단맛이 났다’. 그 느낌 그대로를 이야기해 주니 그 여자친구는 활짝 웃으며 너무 좋아했다. 


그 막걸리를 둘이서 다 비우고 우리 셋이 이야기를 나누도록 우리 사장님 형님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고자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우리 셋은 맛있는 회를 안주로 해서 당연히 술을 즐겁게 그리고 많이 마셨다. 웃긴 것은 이야기를 하다 보니 3시간 중에 거의 2시간이 술 이야기였다는 점이다. 그 여자친구는 자신이 하는 일로 인해 외국에서 친구들이 오는데, 그런 친구를 대접하고 싶어서 막걸리에 관심을 가졌고, 지금은 그 막걸리를 증류하여 소주도 만드는 일을 시도해 볼 거라고 이야기했다. 또 미국에서 술자리 분위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 술자리의 주도(酒道)도 배우고 싶다고 하여, 나는 평소에 생각했던 나만의 주도 몇 가지를 공개했다. 그리고 술 마시는 도중에 그 주도를 연습도 했다. 그러다 보니 술자리가 더더욱 유쾌해졌다. 우리의 술자리에는 웃음이 끊기질 않았다. 우리는 술 자체도 좋아했지만, 술 이야기도 좋아했다.


술을 좋아하는 것은 우리 셋만이 아닐 것이다. 현재 전 세계 24억 명 이상, 즉 지구 인구의 약 3분의 1이 애주가라고 한다. 이런 술 취향은 지금의 현상만은 아니고, 인간은 정말 오랫동안 술을 좋아했다는 고고학 기록이 있다. 프랑스 남서부의 2만 년 된 조각품에서는 다산의 여신으로 추정되는 한 여성이 각배(角盃; 뿔잔)를 입에 물고 무언가를 마시고 있다. 단순히 물 마시는 현상을 무언가 대단한 것으로 여겨서 작품으로 남겼을 리는 없다. 상상컨대, 그것은 술이었을 것이다. 인간이 술을 빚었다는 증거는 기원전 7,000년경 중국 황하 유역에서 발견되었고, 기원전 약 7,000년에서 6,000년까지 오늘날의 유럽 조지아에서 포도주를 담갔다는 증거가 있다. 

〈로셀의 뿔을 가진 비너스〉

술취함은 넓은 의미에서 취함(intoxication; 醉)의 한 가지 종류이다. 술 대신 다른 취성물질로 취하려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다양한 문화가 존재한다. 고대 인도에서는 술이 도덕적으로 미심쩍은 취함을 일으킨다고 생각하여 독버섯으로 만든 액체인 소마(soma)를 종교의식에서 사용했다. 그리고 멕시코 북동부의 인간 동굴 주거지에서 기원전 3700년의 것으로 추정되는 선인장에서 추출한 환각제인 메스칼린(mescaline)이 함유된 콩이 발견되었다. 태평양의 많은 문화에서는 술 대신 후추과 식물의 뿌리를 이용한 마취성 음료인 카바(kava)를 취성물질로 사용했다. 그리고 대마초는 기원전 2,000년까지 널리 유통되면서, 유라시아인은 적어도 8,000년 동안 대마초(cannabis)를 피워 취함의 욕구를 충족시켰다. 대마초를 구하지 못하는 유라시아 밖의 호주 원주민은 마약, 흥분제, 나무 재를 섞어서 만든 피처리(pituri)를 씹는 담배처럼 사용했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 인간은 전 세계적으로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취해왔다. 앤드류 쉐라트(Andrew Sherrat)와 같은 고고학자는 취함의 인간 성향을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의 특징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호모 사피엔스의 아종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슬기 슬기 사람’을 뜻하고, 4만∼5만 년 전에 이루어진 급격한 형질 변화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 추정된다. 뇌 용적은 초기 호모 사피엔스와 큰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적었지만, 이 시기에 인류의 창조력은 급격한 발전을 보였다. 사리를 밝혀 일을 잘 처리해 가는 능력인 ‘슬기’가 두 번 반복되는 이 인류에게서 창의성이 크게 발전했다는 것과 취함의 인간 성향이 이 인류의 특징이라는 한 고고학자의 의견 사이의 관계에 주목할 수 있다. 즉, 취함의 인간 성향과 인간 창의성 사이에 심오한 관련성이 있다는 것이다. 

앤드류 쉐라트

에드워드 슬링거랜드 교수는 《취함의 미학》 제1장에서 술취함에 대한 인간의 욕구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과학적 틀에 넣어 설명한다. 그 과학적 틀이란 앞에서도 설명한 납치 이론과 숙취 이론이다. 앞서 설명한 두 이론을 편의를 위해 다시 한번 더 정리해 보자. 우리 인간은 간절히 원하는 일을 해내고 나면 그 성취감으로 인해 뇌에서 보상용 화학물질이 나오도록 진화되었다. 하지만 술은 보상받을 일을 하지 않고도 술의 주성분인 에탄올이 우리 뇌에 보상용 물질을 방출하게 한다. 이것이 술취함의 취향을 설명하는 납치 이론이다. 우리가 술을 마실 때는 몸에 통증이나 고통 없이 즐겁고 유쾌하여 그 술자리에 우리는 모두 적응하지만, 과음한 다음 날은 그 효과가 부정적으로 나타나 일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숙취 이론이다. 


이 두 과학적 틀이 술취함에 대한 인간의 취향과 욕구를 진화의 실수로 본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즉, 진화가 완벽한 시스템이 아니고, 진화에 오류가 생겨서 진화가 제대로 자기 일을 하지 않아 인간이 계속해서 술에 취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진화의 실수에 기반한 과학적 틀과 설명에서는 술취함을 해악으로 본다. 이 두 가지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슬링거랜드가 취함의 취향에 납치 이론 견해를 밝히는 것으로나 숙취 이론 견해를 밝히는 것으로 잘못 해석하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슬링거랜드는 술취함을 진화의 오류로 보지 않으므로, 이 두 이론 모두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과연 술취함의 취향에 대한 그의 생각이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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