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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비 Oct 22. 2022

술취함은 해악인가?

술취함의 역설

《취함의 미학》이 출간되자 나는 출판사에서 보내준 증정본을 이 책 출간에 도움을 준 지인들에게 보내주었다. 그러면서 책에 대한 느낌 등의 피드백을 받곤 했다. 대학 때 나에게 수업을 들었던 제자였고 지금은 중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한 지인과 카톡으로 책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에 그녀는 이런 톡을 보냈다. “참, 선생님 저 교실에서 읽다가 바로 덮었답니다 ㅋㅋ. 앞부분 읽다가 자극적인 단어가 너무 많아서 집에서 읽으려고요 ㅋ.” 사실 나도 이 책의 원서를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영어강독 자료로 사용하려다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나는 보통 영어강독 시간에 전체 책 내용을 요약해 주는 서론을 자료로 활용한다. 그런데 이 책의 서론 첫 문장이 다름 아닌 “사람들은 자위를 좋아하고, 술에 취하는 것을 좋아하며, 트윙키 과자를 좋아한다”였던 것이다. 

트윙키 과자

이 책은 인간 본능에 충실하듯 노골적으로 자위하기, 술 취하기, 정크푸드 먹기로 시작한다. 이 세 가지는 인간의 쾌락이다. 쾌락이란 정상의 수위를 넘어선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정상적인 우리 인간 삶에서 이 세 가지는 오류이고,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진화의 실수라는 얘기이다. 즉, 진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고장이 났다는 뜻이다. 어떤 식으로든 고장 난 진화를 수리해야 하는데, 진화는 수리공을 부르지 않은 상황이다. 어떻게 보면 인간에게는 심각한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자칫하면 이런 고장 난 진화 때문에 인간이란 유기체가 멸종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인간이 진화상 긴 시간 동안 이러한 쾌락을 추구하면서 살아왔지만, 우리 인간에게 인간 멸종과 같은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쾌락은 인간 진화에 해로운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는 유익한 측면이라고 추측된다


이 세 가지 인간의 쾌락이 똑같이 진화의 실수라고 해서 그 죄상이 같은 것은 아니다. 포르노 비디오를 보면서 자위를 하거나 정크푸드를 마구 닥치는 대로 먹어대는 것은 개인의 문제이다. 자위를 하거나 정크푸드가 늘 그 사람을 떠나지 않고 주변에 머문다고 해서 타인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술을 먹고 취하면 음주 운전이나 행패 부리기 등 주변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갈 수 있다. 이처럼 진화의 실수 세 가지도 그 심각성에서 차등을 보인다. 즉, 술취함이 가장 심각한 실수라는 것이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유기체는 살아가면서 환경이 바뀌면 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그에 맞게 바뀌기 마련이다. 기린의 목이 길어진 것이 그 쉬운 예이다. 하지만 이 세 가지 인간의 쾌락에 관해서는 진화의 실수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과연 그렇다면 이것이 진화의 실수가 아니라 우리 인간의 자연스러운 속성이 아닐까? 슬링거랜드 교수는 바로 이 점에 주목했다. 진화의 실수가 아니라 인간의 타고난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본성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 세 가지 진화의 실수 중에서, 아니 어쩌면 인간의 타고난 본성 중에서, 실수 관점에서 가장 큰 심각성을 보이는 술취함을 이 책의 주제로 삼았다. (자위와 정크푸드 먹기의 자연스러운 인간 본성에 대해서는 또 다른 학자가 인문학과 인지과학의 패러다임으로 다루길 내심 기대해 본다.)     


진화라는 놈은 실수를 할 만큼 어리숙하고 만만한 놈이 아니다. 진화는 실용성이 없는 존재라면 가차 없이 사라지게 할 만큼 독한 놈이다. 진화의 이름으로, 해당 환경에서 실용성과 효용성이 없다는 이유로 공룡 등 얼마나 많은 생명체가 사라지고 변형을 겪었는지 생각해 보자. 우리 인간에 비해 몇 배나 큰 공룡이 가치가 없다는 판단 하에 진화에게 차단당했다면,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너무나 무력해 보이는 인간을 차단해 버리는 일은 진화에게는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술취함이 실용성과 효용성의 가치가 없다면 진화는 우리 인간에게서 취하려는 욕구를 없앴을 것이다. 그러나 진화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즉, 취함에는 나름의 장점이나 미덕과 미학이 있다는 것을 진화는 알고 있다는 얘기이다. 술취함의 미덕이 무엇인지를 슬링거랜드 교수는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슬링거랜드 교수는 술취함이 진화의 실수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래서 그는 술취함이 진화의 실수라는 입장에 반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 책 전체에서 진화의 실수를 설명하는 두 이론이 계속 중간중간 언급된다. 그래서 그 두 가지 이론을 간단히 설명하고 넘어가는 것이 책의 전체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하나는 숙취(hangover) 이론이고, 다른 하나는 납치(하이잭)(hijack) 이론이다. 숙취란 우리가 술을 마시고 난 뒤 그다음 날 겪는 증상이다. 술을 마실 때는 몸에 통증이나 고통 없이 즐겁고 유쾌하여 그 술자리에 우리는 모두 적응하고 있다. 하지만 과음한 다음날은 그 효과가 부정적으로 나타나 우리의 일상에 적응하기 힘들어 전날 술을 마신 것을 후회하는 지경에 이른다. 공중납치는 납치범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비행기를 장악하는 범죄 행위이다. 비행기라는 빠른 교통수단인 쾌락 시스템을 불법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공중납치 이론의 핵심 골자이다.


술취함을 숙취 이론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가볍게 취하려는 욕구는 처음에는 우리 인간에게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적응되는 행동이었지만 현대 환경에서는 적응적이지 않은 행동이다. 납치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이렇다. 우리 인간은 간절히 원하는 일을 해내고 나면 그 성취감으로 인해 뇌에서 보상용 화학물질이 나오도록 진화되었다. 하지만 술은 우리가 보상받을 일을 하지 않고도 술의 주성분인 에탄올이 우리 뇌에 보상용 물질을 방출하게 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술취함에 대한 진화의 실수를 설명하는 이 두 이론 모두 술취함이 인간에게는 없어지고 사라지고 없애야 하는 해악임을 전제하고 있다. 술취함을 없애려는 노력은 술이 발견된 이래도 계속되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행되었던 금주법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술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문제는 술이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술의 종류도 더 다양해졌다는 점이다. 술은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나뉜다. 발효주와 증류주가 그것이다. 이 큰 두 가지 범주의 술은 지금은 더욱 세분화되었고 다양한 종류의 술을 즐기는 단체나 사단법인까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정도이다. 바로 여기에서 술취함의 역설이 보인다. 해악인데 그 성장은 멈추질 않는다. 왜 그럴까? 술취함은 해악이 아니라는 것이다. 술취함에는 그 나름의 장점이 있다는 얘기이다. 슬링거랜드는 “술취함이 진화의 실수가 아니라 창의성 향상, 스트레스 완화, 신뢰 구축, 그리고 사나운 종족 영장류들이 낯선 사람들과 협력하게 하는 기적을 일궈내는 것과 같이 수많은 독특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게 돕는다 … 술에 취하려는 욕구는 첫 번째 대규모 사회가 등장하게 자극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취하지 않았다면 문명도 없었을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이 글의 제목인 “술취함은 해악인가?”에 이제 답할 수 있다. 술취함은 해약이 아니라고. 물론 해악이 아니라고 해서 무작정 마시고 싶을 만큼 마셔야 한다는 강력추천은 아니다. 술취함에만 있는 장점과 미덕과 미학이 어떤 것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 미학은 다음 글들에서 천천히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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