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할 것 같은 나의 외로움
다시 눈이 오지만
작은 햇살에도 탁한 도로에 몸을 스민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간밤에 불면 같은 잔설조차 그립다
놀이터 미끄럼틀에 미끄러지는
지독한 고독이 짙다
전자레인지에는 못난 춘천 감자빵이
속을 데우고
식탁 위에는 마른 육포가
더 말라가고
떠먹는 요구르트는 질퍽질퍽하다
뱅쇼를 끓이며 묽은 우울을 끓인다
겨울 빈 바람에 말라비틀어진
사과 몇 조각 넣고
첫맛이 몽하게 쓰라린
자몽 한 조각도 넣고
제주도 노란 풍경이 고스란히 잠긴
귤 몇 조각도 넣고
불면을 닮은 시나몬 가루를 탁탁 털어 넣고
한참을 끓인다
지겹도록 끓인다
우리 인간에겐 몸이 있다. 몸을 가졌다는 이유로 인간은 다양한 감정을 경험한다. 몸을 다치면 아프다는 고통의 감정을 느끼고, 전신 마사지를 받으면 나른해지면서 행복의 감정을 느낀다. 인간의 감정은 우리 주변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하므로 지속성은 떨어진다. 인간은 마음이 하루에도 열두 번도 더 변한다고 한다. 이때의 마음은 인간의 감정을 말한다. 지금 한순간 우리가 겪고 있는 그 감정이 어떤 것이든 그것이 영원할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채기도 전에 그 감정은 사라지고 또 다른 감정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또 다른 그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 모를 때도 허다하다.
시인은 어느 하루 고독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 시인은 그 감정이 고독임을 정확히 알고 있다. 그것도 지독한 고독이다. 그 고독함은 연한 것이 아니다 짙기까지 하다. 눈이 내리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녹다 남은 눈마저 그립다.
시인은 차라도 한 잔 마시면서 고독함을 달래 보려 한다. 차와 곁들일 춘천 감자빵을 전자레인지에 데운다. 고독함과 외로움에 그 속이 타들어간다. 마른 육포는 사람이 그리워 더 바짝 말라간다. 내 마음이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질척거리듯, 떠먹는 요구르트도 질퍽거린다.
시인은 자신의 우울함을 강한 불에 끓여서 수증기로 날려버리고 싶은 심정으로 차를 끓인다. 허참, 그 차에 들어가는 재료들마저 시인과 같은 처지이다. 고독하고 외롭다, 그 재료들마저!
‘겨울 빈 바람’은 비워진 바람이 아니다. 겨울에 불어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도록 거리를 텅 비우는 바람이다. 거리에 아무도 없다. 겨울 바람 때문에 시인의 마음은 다시 한번 텅 빈다. 고독함을 일으키는 바람에 마음이 말라비틀어지듯 사과도 말라비틀어졌다. 그런 사과를 몇 조각을 준비한다. 괴로워 마음이 쓰라린 시인의 마음을 닮은 자몽 한 조각을 준비한다. 제주도의 노란 풍경이 잠긴 귤 몇 조각을 준비한다. 너무나 외로워 잠을 자지 못하는 불면의 모습을 닮은 시나몬 가루를 준비한다. 모두 넣고 차를 끓인다. 고독한 재료들로 끓이는 차이다.
많이도 외로웠는지 그 외로움을 수증기로 날려버리기 위해 오래오래 끓인다. 지겹도록 끓인다. 이렇게 해서 괴로움이 공중으로 날아갔을까? 아니다. 날아가고 고독함이 사라졌다면 시인은 뭔가 희망의 메시지를 남겼을 것이다. 시인은 조용하다. 아무 말도 없다. 아직 고독하고 외로운 것이다. 고독의 차 한 잔을 마신다. 시인이 마시는 차의 재료는 고독함 덩어리들이다. 그 덩어리들로 우려진 고독함의 차를 마셔 시인의 고독한 마음을 더 고독하게 만든다.
남들에게서는 감정의 가변성을 참 많이도 봐 왔지만, 왜 나의 이 고독의 감정은 도대체 사라질 줄 모르고 내 마음속에 질퍽거리고 있는 것일까? 시간은 상대적이다. 나에게는 긴 우울이지만 타인에게는 짧은 일시적 기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라는 거대한 괴물은 지금 나의 이 우울을 이기지 못한다. 나의 우울은 시간도 어찌하지 못하는 홉스의 리바이어던처럼 절대적 권력을 가지고 나를 통치하고 있다. 지금 나의 이 우울은 나만의 것으로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성가신 놈이 되어 버렸다.
흔히들 이별의 아픔이든 고독한 우울의 감정이든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들 한다. 지금 바로 이 순간 나는 고독으로 아프다. 지금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다. 얼마 큼인지도 모르는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란 말인가! 이런 지독한 고독이란 놈을 끝까지 가중시키고 밀어붙이는 시인이 매우 힘들어 보인다. 시인이 듣지 못하게 그냥 내 마음속으로 속삭인다. “곧 행복과 유쾌함의 감정이 당신에게 찾아올 테니 조금만 더 버티세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