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소 가는 길

굽은 길과 반듯한 길의 균형

by 불비

덕소 가는 길


덕소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한강을 끼고 햇빛을 휘저어

저녁노을로 붉은밥을 짓고

잘 익은 가을을 단단히 쑤셔 박아

묽은 새벽을 내놓는 도토리묵집을 지나


굽은 길을 굽이굽이 휘감아 가야 하는

팔당대교로 가는 길이 있다


길가 소나무가 다닥다닥

숨도 못 쉴 정도로 빼곡하지만

바짝 마른 넝쿨 보풀이

노란 중앙선에 뒤엉켜 나뒹굴고 있지만


반듯한 차선의 고속도로로 가는 길이 있다


팔당대교로 가는 길은

늙은 된장국에 어머니 마음 풀어

간두부 돌돌 말아올린 흰 밥을 만드는 것이다


고속도로로 가는 길은

젊은 플랫폼을 대패로 문질러

옹자국을 쓱닥쓱닥 지우고 긴 밥상을 만드는 것이다




굽은 길과 반듯한 길의 균형


여기서 말하는 ‘덕소’라는 곳은 시인에게 어떤 곳일까? 덕소는 시인이 도달하고 싶은 삶의 목적지이자 상징이다.


덕소 가는 길은 두 가지이다. 굽은 길(팔당대교)과 반듯한 길(고속도로)이다. 굽은 길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느린’ 길이다. 반듯한 길은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 ‘빠른’ 깃이다. 이 두 가지 길은 우리 사고의 두 가지 유형을 상징한다. 두 가지 인지(cognition)를 상징한다. 하나는 ‘뜨거운 인지’이고 다른 하나는 ‘차가운 인지’이다. 뜨거운 인지란 감정이나 정서, 본능이나, 내장적 외침에 따라 빠르게 결정을 내리게 하는 사고이다. 반면 차가운 인지란 냉철한 이성을 동원해 결정을 내리기 전에 꼼꼼하게 계산하는 사고이다.


이 두 가지 사고 중 어떤 사고가 맞고 어떤 사고가 틀린 지 판단할 수 없다. 시인은 이 두 가지 사고 모두를 안고 가려한다. 아마 시인은 뜨겁게도 살아 봤을 것이고, 냉철하게도 살아 봤을 것이다. 당연히 정답을 찾지 못한다. 상황에 따라 맥락에 따라 적절한 인지를 사용했을 것이다. 시인은 그렇게 살았던 것이다. 이런 시인의 태도는 전체 시의 구조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시는 대등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굽은 길을 두 개 연으로 설명하고, 반듯한 길을 그다음 두 개 연에 할당한다. 마지막 두 연에서 다시 각각 하나의 길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시가 마무리된다. 균형을 잘 잡고 있는 시인의 마음과 시의 구조가 참 보기 좋다.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 깔려 있는 아이콘 모양처럼, 시의 구조는 시인의 마음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무척이나 편안하다!


이 시인은 한 편의 시에 유달리 많은 상징을 사용한다. 어떤 상징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도 들여다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먼저, 굽은 길을 통해 가던 중 시인은 도토리묵집에 들어가 식사를 한다. 가던 길은 아마도 햇빛이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저녁 무렵이다. 햇빛이 너무 강해 손으로 해를 가리면서 간다. 여름 산길을 걷다 보면 날파리떼가 우리 앞을 윙윙거리다 눈으로 돌진하기도 한다. 손으로 휘저어 날파리떼를 내쫓는다. 이 햇빛도 마치 성가신 날파리떼처럼 묘사된다. 아니면 좀 더 완곡하게 볼 수도 있다. 굽은 길은 마치 웅성한 숲길 같다. 앞을 보기 위해 숲을 헤치고 휘저으면서 나아가듯 시인은 햇빛을 그렇게 휘젓고 있다. 햇빛 휘젓기는 굽은 길을 잘 묘사해 주는 멋진 은유이다.


도토리묵과 같이 나오는 밥은 붉은색이다. 저녁노을로 밥을 지으니 밥 색깔이 붉다고 했다. 시인은 ‘저녁노을은 붉은 물이다’라는 은유를 사용하고 있다. 물 자체는 처음에 붉은 색깔일 수 없다. 가을에 떨어진 낙엽처럼 가을에 구할 수 있는 붉은색 약초를 넣은 것 같다. 그 붉은색 약초를 저녁노을로 표현하고 있다.

같은 연에서 도토리묵에는 잘 익은 가을을 넣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잘 익은 가을은 당연히 도토리이다’. 가을을 대표하는 과일은 많다. 하지만 이 시에서는 도토리가 가을을 대표하고 가을의 속성을 잘 표현한다. 멋진 환유다!


늙은 된장국에 어머니 마음을 풀었다고 한다. 어머니 마음은 어머니가 정성 들여 빚은 된장이다. 정성을 들였다는 것을 어머니의 ‘마음’으로 은근슬쩍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 장에서 곧은 길, 즉 ‘고속도로는 긴 밥상이다’는 은유가 등장한다. 곧게 만들기 위해 대패를 사용했다.


요즘 아침저녁으로 약간 살살하지만 엄연한 가을이다. 〈덕소 가는 길〉을 읽으며 한 주는 굽은 길로, 한 주는 고속도로로 이 가을을 느끼며 풍성함을 한 번 느껴 보면 어떨지! 어느 한쪽의 길, 어느 한쪽의 사고와 인지에 편향되지 않는 넓은 어머니의 마음을 가져보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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