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해 고향으로 내려간다

우울함의 감옥에 모두 갇히다

by 불비

답답해 고향으로 내려간다


답답한 세상이 언제까지 가려나


배달음식의 버려진 겉포장만

낡은 우울처럼 수북하고

골뱅이 깡통을 따면

누런 국물이 침대에 자빠진 내 마음 같고

감기조차 마음대로 걸리지 못하는

세상이 참으로 깝깝하다


서둘러 가방을 챙겨 어머니가 사시는

고향으로 간다


늦은 봄밤 소나무 카페의 풍경은

빈센트 반 고흐의 ‘아를의 붉은 포도밭’ 같다

야외 그늘막에서 푸른 맥주를 홀짝홀짝 대는

흰 블라우스의 희망이 더 밝아 보이고

개울가 떼지은 유채꽃은

부는 달바람에 느엇느엇대다 해바라기를 닮아가고

위쪽 감논밭에 여린 감꽃은

우르르 달려드는 참새떼에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고


어머니 된장국에 밥 한 그릇 뚝딱 말아먹으면

답답함이 조금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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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함의 감옥에 모두 갇히다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하는 사람은 누구든 지칠 것이다. 사실 난 객지 생활을 해 본 적이 없어 잘 모른다. 하지만 난 이 시를 읽으면서 그런 생활이 어떤지 느낄 수 있어서 나 역시 외로움과 답답함이 밀려온다. 그런 느낌을 갖고 싶지 않았지만 나 역시 평범한 인간인 것 같다. 인간에겐 거울신경이 있다. 인간의 신경 중에서 공감을 담당하는 놈이다. 이 거울신경 때문에, 나의 공감 능력 때문에 난 이 시에서 우울함을 느낀다.


문제는 이 우울함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울함은 감정이다. 감정은 일시적이다. 흔히 곧 사라지는 속성을 가진 것이 감정이다. 하지만 이 시에서 느껴지는 우울함의 감정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왜일까? 이 시인 때문이다. 더 정확히는 이 시인의 이 시 때문이다. 더 정확히는 이 시인의 이 시의 전체 구조 때문이다.


첫 연에서 시인은 자신이 현재 사는 세상, 아마 고향은 아닌 세상에서 우울함을 느낀다. 둘째 연에는 이런 시인의 마음을 풍성한 비유로 묘사하고 있다. 셋째 연에서는 고향으로 내려간다. 넷째 연에서는 도착한 고향에 대한 풍성해진 마음을 또 풍성한 비유로 묘사하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는 고향의 응결체인 어머니 된장국이 등장한다. 그러면서 답답한 마음이 조금 사라진다.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시 시인은 자기 현실 세계로 돌아간다. 그러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시인은 다시 답답함이라는 우울함에 강타당할 것이다. 그리곤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 어머님의 된장국을 먹는다. 그 답답함은 조금 사라진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시인은 ‘답답한 세상이 언제까지 가려나’를 첫 연에 배치하고, ‘답답함이 조금 사라진다’을 마지막 연에 배치하며, 마지막 연에서 ‘조금 사라진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구조는 재귀성을 띤다. 무한 반복성의 구조이다. 객지 생활에 대한 외로움은 고향으로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이상 계속된다. 고향을 떠난 객지 생활에서의 무한 반복되는 외로움이라는 정서를 시인은 시 구조로 잘 표현하고 있다. 놀라울 따름이다.


이 시를 읽으니 괜히 읽었다는 느낌이 든다. 억울하다. 괜히 읽어서 나까지 영원한 우울함에 갇힌 기분이다. 이 시인에게 전화를 걸어 따지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하질 못하겠다. 이 시인 또한 우울함의 감옥에 갇혀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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