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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비 Jun 27. 2023

신경 가지치기와 버림의 미학

나는 대학에서 인문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직업을 갖고 있다.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은 흔히 집에는 개인 서재가 있고 학교에는 개인 연구실이 있다. 서재와 연구실의 일반적인 모습은, 입구나 창문이 있는 벽면을 제외한 두 면에는 거기에 맞게 제작된 큰 책꽂이 선반이 설치되어 있고, 그 선반에는 책이 빽빽이 꽂혀 있는 모습일 것이다. 어떤 교수의 연구실에 들어가면 벽면 외에도 큰 테이블 위에까지 책들이 얹혀 있다. 책들을 위한 공간 때문에 비집고 들어가야 하는 극단적인 연구실도 있다. 


사실 처음의 내 서재도 이런 모습이었다. 물론 책을 분류해 나름대로 정리해서 꽂아 두긴 했다. 하지만 책 분류 작업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잘못 꽂힌 책이 눈에 들어오면 다시 책을 꽂아서 분류하는 일도 자주 생긴다. 사실 이렇게 책을 복잡하게 꽂아 두긴 했지만 실제로 읽거나 참고하는 책은 3, 4권으로 한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던 어느 날 유튜브에서 ‘북스캐너’라는 존재를 알게 되면서 내 서재의 모습은 완전히 바뀌었다. 양면 북스캐너는 절단한 책의 낱장을 50매 정도 급지하고 버튼을 누르면 빠르게 스캔이 된다. 300쪽 정도의 책 한 권을 스캔하는 데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난 이렇게 해서 오랜 시간에 걸쳐 시간이 날 때마다 집에 있는 책들을 모두 스캔해서 PDF 파일로 제작해 내 노트북에 저장해서 분류했다. 그리고 절단한 책은 모두 과감하게 버렸다. 사실 처음에는 절단한 책을 다시 복사실에 가져가 제본을 했었다. 책을 과감히 버린다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문득 종이책에 대한 미련을 버리자고 결심하고는 모든 종이책을 스캔 후에는 과감히 버리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 내 서재에는 책꽂이 선반 자체가 없고, 당연히 책도 없는 모습이다. 책상에는 노트북과 도서관에서 빌린 한 두 권의 책만 있을 뿐이다. 물론 도서관에서 빌린 책도 별도로 구매한 단면 스캐너로 1시간 정도의 시간을 투자해 스캔해 PDF 파일로 노트북에 저장한 뒤에는 도서관에 반납한다. 결국 내 서재에는 종이책 자체가 없다. 그래서 내 서재는 매우 깨끗하고 간단한 모습이다. 내 연구실의 모습도 마찬가지이다. 내 연구실에는 큰 책꽂이 선박이 하나가 있다. 그곳에는 책이 아닌 수업 자료로 복사해 놓은 A4 용지들이 한 곳에 있고, 다른 곳에는 내가 집필하고 번역한 책만 꽂혀 있다. 그래서 내 연구실은 아주 소박한 모습이다. 


서재와 연구실이 이런 모습으로 바뀌는 것은 우리 인간의 뇌가 성숙하고 발달하는 모습과 닮았다. 성숙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나이만 든다고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성숙한 사람은 일반적으로 정서적·지적·사회적 발달을 반영하는 자질과 행동을 특징으로 하는 사람이다. 성숙한 사람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몇 가지 공통적인 특성이 있다. 성숙한 사람은 균형 잡힌 정서적 상태를 가지고서 건설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관리할 수 있다. 성숙한 사람은 자신의 행동과 선택, 결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성숙한 사람은 자신의 장점과 약점, 가치관 등 자신에 대해 잘 이해한다. 성숙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자신을 생각하고 그들의 경험과 감정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보여준다. 성숙한 사람은 효과적이고 적극적으로 의사소통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관점을 수용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성숙한 사람은 일반적으로 적응력이 있고 변화에 개방적이다. 성숙한 사람은 정직함을 중요시하고, 자신의 윤리적 원칙을 지키고 약속을 이행하며 신뢰한다. 성숙한 사람은 종종 자기와 맞지 않는 타인의 생각과 의견도 관용적으로 수용한다. 성숙한 사람은 비판적 사고 능력이 발달해서 객관적으로 상황을 분석하고, 다양한 관점을 고려하며, 이성과 논리에 기초한 정보에 입각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성숙한 사람은 기꺼이 도전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실수로부터 배우고, 끊임없이 지식과 개인적인 발전을 추구한다.


이런 성향을 보이는 성숙한 사람은 그들의 뇌가 성숙했기 때문이다. 평균적인 성인 인간의 뇌에는 약 860억에서 1,000억 개의 뉴런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뉴런들은 뇌 신경망의 기초를 형성하고 정보를 처리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뉴런 사이의 연결고리인 시냅스의 경우, 성인의 뇌에서 시냅스의 수는 약 100조에서 1,000조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인간이 태어나 10대와 20대를 거쳐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뇌는 성숙한다. 뇌의 성숙은 뉴런과 시냅스의 수와 관련이 있다. 평균 성인의 뉴런과 시냅스의 수가 10대 때보다 더 많다고 평범하게 생각된다. 즉, 10대에는 뉴런과 시냅스가 성인의 것에 미치지 못하다 결국 성인이 되면서 지금의 평균적인 뉴런과 시냅스를 갖추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뇌가 성숙하고 발달한다는 것이 특정 뇌 부위에서 더 많은 뉴런이 생성되고 뉴런 간의 연결도 더 많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뇌의 성숙과 발달은 불필요한 신경 연결, 즉 시냅스를 점진적으로 제거하는 신경 가지치기(neural pruning)에서 비롯된다. 시냅스 가지치기(synaptic pruning) 또는 축삭 가지치기(axon pruning)로도 알려진 신경 가지치기는 인간 발달 동안 뇌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서, 신경 회로를 다듬고 형성하기 위해 뉴런과 뉴런의 연결인 시냅스를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것을 말한다. 초기 뇌 발달 과정에서 뉴런과 시냅스가 과잉 생산되어 조밀한 신경망이 형성된다. 그러나 뇌가 성숙함에 따라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뉴런과 시냅스를 제거하기 위해 신경 가지치기가 일어나 더 효율적이고 전문화된 신경 연결이 가능해진다. 신경 가지치기는 주로 유아기와 청소년기에 발생하지만, 어느 정도의 가지치기는 평생 지속될 수 있다. 신경 가지치기는 약하거나 중복되거나 최적의 뇌 기능에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시냅스를 선택적으로 제거한다. 이 과정은 신경 연결을 개선하고 조각하는 데 도움이 되며, 뉴런 간의 더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촉진한다.

신경 가지치기

결국 이런 공식이 나온다. “뇌의 성숙=신경 가지치기”. 신경 가지치기는 머리카락이 지저분하게 자라면 미용실에 가서 머리카락을 자르고 다듬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취업 면접을 위해 제일 먼저 하는 것 중 하나가 미용실에 가는 것이다. 머리카락이 지저분해 보이면 성숙하지 않은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단정한 머리로 면접자와 대면해 자신의 성숙함을 보여주고자 한다. 머리를 기르는 남성과 여성도 있다. 이런 사람의 경우는 긴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정리하면 머리카락의 성숙함에 이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중요한 것은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도 있지만 잘 다듬고 정리하는 것도 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이지만 대부분의 집은 ‘생활 방식의 신경 가지치기’가 잘 되어 있지 않다. 10년 전에 산 옷이지만 언제 입을 줄 모르고 계속 걸어두고, 결혼하고 20년이 지났지만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접시와 그릇들이 즐비하다. 복잡하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최근에 아내와 나는 안 입는 옷들을 조금씩 버리고는 있지만, 진척이 느리다. 내 것을 버린다는 것이 인간의 성향상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필요한 것이 있어서 ‘니즈(needs)’가 충족되었지만, 우리의 욕구(wants)는 줄어들지 않는다. 우린 계절에 ‘알맞은’ 옷이 있어서 니즈가 충족되었지만, 계절에 ‘어울리는’ 옷에 대한 욕구가 또 있다. 가성비 있는 옷이 니즈라면, 지인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명품브랜드의 옷은 욕구이다. 이런 인간의 욕구를 가장 잘 활용해야 하는 것이 마케팅의 전략이다.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것이 마케팅의 기본이지만, 단순히 니즈를 충족시키는 제품이라고 해서 판매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현대인들은 비바람과 맹수의 공격으로부터 안전을 제공하는 ‘동굴’(needs)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대형평수의 깔끔한 인테리어를 갖춘 강남의 아파트(wants)를 원하기도 한다. 즉, 필요하지 않더라도 필요했던 것으로 둔갑시켜 우리에게 물건을 판매하기 위해 기업들은 마케팅을 구상하는 법이다. 기업의 마케팅 전략 때문이든 인간이 많이 가지려는 본성 때문이든, 여하튼 우리의 집은 불필요한 것들이 그대로 유지되어 신경 가지치기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다. 


인간의 뇌는 알아서 신경 가지치기를 하는데, 그런 뇌의 주인인 우리 인간은 왜 생활에서 신경 가지치기를 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가지치기의 역설’이라 부를 만하다. 인간의 뇌는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가 뇌와는 달리 생활의 가지치기는 잘하지 못하니 말이다. 최근 내 옆방에 근무하던 위관 장교가 전역을 한다고 방 정리를 하고 있었다. 5월 31일이 전역이라 1주일 전부터 계속 방을 정리하고 있었다. 물론 우리 학과는 그 장교의 전역을 축하하는 식사도 전역 이틀 전에 가졌다. 5월 31일이 되자 그 장교는 해군 장교의 하얀색 정복을 입고 전역 인사를 하러 왔었다. 따뜻한 인사말을 나눈 뒤 악수를 하고 그 친구는 내 연구실을 나갔다. 그런데 6월 1일 목요일 오후에 그 친구가 여전히 짐 정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원래 전역자라 출입할 수 없는데, 후배 장교에게 보안 조치를 해서 들어왔다고 한다. 이유는 짐 정리가 아직 덜 되었다는 것이다. 그 전역한 장교의 짐 정리는 그 후로도 1주일 정도 더 진행되었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으면서 우리 인간의 생활 가지치기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미진한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우리 집도 생활의 가지치기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최근 유튜브에서 이런 제목의 동영상이 많이 보인다. “평생친구? 그딴 건 없다! 독하게 혼자 살아라”, “나이 들수록 혼자이어야 한다”, “나이 들수록 혼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 “노후에는 다 필요 없다. 독하게 혼자 살아라”. 사실 난 이 동영상 중 하나도 본 것이 없다. 나름대로 자신들만의 논리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이러한 제목을 신경 가지치기의 관점에서 해석해 보고자 한다. 신경 가지치기는 주로 유아기와 청소년기에 발생하지만, 어느 정도의 가지치기는 평생 지속될 수 있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 60, 70세가 되면 과학의 발달로 인한 시대 변화에 발맞추기 힘들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주변에 있던 후배들에게 본인 생활에서 도움을 받게 된다. 가령, 택시를 타야 하는데 택시가 보이질 않는다. 젊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카카오택시를 부르는 조치를 바로 취할 것이다. 하지만 카카오택시를 활용하지 못하는 어른들은 다른 사람에게 전화해 카카오택시를 불러 달라고 하고, 나중에 택시비를 그 사람에게 입금해 주기도 한다. 이것이 어른들의 경우에 생활의 신경 가지치기가 되지 않는 경우이다. 스스로 카카오택시 앱을 설치해서 활용한다면 주변 지인을 가지치기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질 못한 것이다. 아마 이런 점에서 앞서 언급한 유튜브 제목들이 나이 들수록 혼자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 인간의 뇌는 뒤통수 쪽인 후부에서 이마 쪽인 전방으로 성숙 과정이 진행된다. 즉, 후두엽에서 시작해 두정엽을 거쳐 전두엽으로 진행된다. 전두엽 중에서 가장 앞쪽에는 전전두엽피질이 있다. 이 전전두엽피질은 완전히 발달한 뇌의 마지막 부위로서, 25세까지 계속 발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전전두엽피질은 이성과 합리, 논리의 중심지이다. 10대의 경우에는 이 부위가 아직 완전히 자리 잡지 않았기 때문에 10대는 이성적 사고와 합리적 논리에 약한 면을 보인다. 즉, 10대는 신경 가지치기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 늙으면 말과 행동이 오히려 어린아이와 같이 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나이 든 어른들도 이 전전두엽피질의 기능이 약화되어 신경 가지치기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나이 들수록 혼자여야 한다’는 조언은 신경 가지치기를 하듯이 생활을 신경 가지치기를 하여 전전두엽피질의 기능을 강화하라는 말로 해석된다. 


물론 인간의 삶이란 이성의 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사회생활이 필요하고, 상대방에 대한 연민과 공감도 필수적이다. 이성이 아닌 감정과 정서가 필요할 때도 많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성의 자리인 전전두엽피질의 작용을 일시 정지해야 할 때도 있다. 전전두엽피질의 작용을 멈추는 방법으로는 명상도 있고, 운동도 있고, 적당량의 음주도 있다. 어떤 방법을 택하든 이성을 낮추고 정서를 높여 둘 간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난 자신도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이 글을 쓰게 되어 송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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