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와 몸생각

by 불비

《Trying Not to Try》(애쓰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라는 책 제목에는 역설이 담겨 있다. 슬링거랜드 교수는 이를 ‘무위의 역설(paradox of wu-wei)’이라고 부른다. 여기서의 역설은 ‘애쓰지 않기’와 ‘노력하기’가 서로 모순되므로 발생한다. ‘애쓰지 말라’라고 하면 괜찮지만, ‘애쓰지 않도록 노력하라’라고 하면 두 행동이 충돌하게 된다. 이처럼 무위의 한 가지 성가신 점은 무위를 규정하고 달성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무위에 의도적으로 집중한다면 무위를 쉽게 달성하지 못한다. 무위는 무지개 같다. 잡으려고 가까이 다가가면 눈에서 사라져 버린다. 이것이 무위의 역설이다. 즉, 무위를 얻고자 열심히 노력하면 절대 무위를 얻지 못한다. 무위는 무위에 사로잡히지 않을 때, 무위를 얻고자 하는 생각에 몰두하지 않을 때만 우리에게 온다. 이러한 무위의 역설은 철학적 난제일 뿐만 아니라 실용적 난제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숙련되고, 사회적으로 매력적이며, 신뢰받을 수 있기를 바라지만, 대부분은 덕(德)을 갖는 자연스러운 방법을 알지 못한다. 많은 사람에게 있어서 목적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되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고, 자발적 미덕(spontaneous virtue)이나 미덕의 자발성(virtuous spontaneit)은 모순어법이다. 그리하여 무위의 역설이다.


이런 무위의 역설은 고대중국 철학, 특히 도교에서, 목표를 달성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적극적으로 추구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리킨다. 무위는 말 그대로 ‘비행동’ 또는 ‘힘들이지 않는 행동’을 의미하며, 상황을 통제하거나 조작하려고 지나치게 노력할 때 실제로 자연스러운 사건의 흐름을 방해하고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다. 무위의 역설은 어떤 것을 통제하려고 하면 할수록 통제력이 떨어지는 반면, 손을 놓고 사물이 자연스럽게 펼쳐지도록 하면 가장 바람직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무위에서 핵심은 ‘마음 내려놓기’이다.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좀 더 명쾌하게 이해하려면 이원론(dualism)에 관한 이야기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원론은 실재가 마음과 몸, 또는 선과 악처럼 근본적으로 다른 두 영역으로 구성된다는 철학적 또는 형이상학적 믿음이다. 이원론은 또한 우주를 구성하는 별개의 두 실체나 물질이 있다는 믿음을 지칭할 수 있다. 이원론의 가장 잘 알려진 형태는 17세기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가 제안한 심신이원론(mind-body dualism)이다. 심신이원론은 마음과 몸이 상호작용하는 별개의 실체라고 가정한다. 데카르트는 뇌의 송과선이라는 부위에서 몸과 마음이 만난다고 본다. 내가 커피를 보는 물리적 사건이 송과선을 통해 내 마음에 영향을 미쳐서 “커피를 마시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하고, 또 이것이 송과선을 통해서 내가 커피를 마시는 물리적 사건을 일으킨다. 또 커피를 마시는 물리적 사건이 나의 정신에 영향을 미쳐서 “커피가 맛있다”라고 생각을 하는 정신적 사건을 일으킨다. 즉, 물질과 정신은 송과선을 통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이다.


심신이원론에서 말하는 마음은 ‘언어, 논리, 사고’가 자리잡은 영역이고, 몸은 ‘행동’이 있는 영역이다. 심신이원론에서 마음과 몸이 송과선을 통해 상호작용한다고 했지만, 실제로 마음과 몸의 영역에 속하는 성분들은 서로 별개이고 교류가 없다. 무위는 마음 내려놓기라고 했다. 이는 언어, 논리, 사고를 무력화하려는 말이다. 말을 하지 않고 계산을 하지 않으며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위이다. 하지만 생각이란 것은 인간의 고유한 속성이므로 이를 무력화시킨다는 것은 인간성을 포기하는 것이 된다. 슬링거랜드가 말하는 무위에서는 생각이나 마음을 완전히 제거하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작용을 멈춰 세우고 마음이 하던 일을 몸이 하도록 몸에 위탁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몸생각(body thinking)’이다. 즉, 무위란 마음이 하던 의식적 사고를 몸에 맡기고 몸이 그 사고를 무의식적으로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몸생각이란 의식적 개입 없이 무의식으로부터 흐르는 빠르고 무언의 반자동적 행동을 말한다.


몸생각이라는 개념은 몸이 우리의 사고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마음과 몸이 별개의 실체이며, 마음이 우리의 경험과 행동을 결정하는 지배적인 힘이라는 전통적인 견해와 대조된다. 최근 몇 년 동안, 인지과학 분야는 몸과 신체적 경험이 우리의 정신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이런 연구를 통해 몸의 움직임과 자세가 우리의 감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접촉의 감각이 우리의 지각과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몸생각은 또한 자아를 이해하는 데 있어 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정신건강과 개인의 성장에 있어 몸의 역할에 초점을 맞춘 신체심리학(somatic psychology) 분야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몸생각에 비추어 무위를 정의하면, 무위란 말하지 않고 힘들이지 않으며 자기를 의식하지 않는 행동이다. 이처럼 이제는 몸과 마음이 각자에게 주어진 각자의 일만 하는 서로 독립적인 영역이 아니라 서로에게 자기 일을 위임하기도 하는 것이다.


현대 세계에서 의식적 사고의 힘이나 의지력과 자기통제가 가져다주는 이익에 과도하게 집중하면 이른바 몸생각의 중요성을 간과하게 된다. 전 세계의 현대 산업사회에 살아가는 우리는 열심히 일하기(working hard)와 애쓰기(striving), 노력하기(trying)의 중요성에 집착한다. 세 살짜리 아이는 명성이 있는 유치원에 입학하기 위해 선행 학습반에 들어가고, 시험성적을 높이고 방과 후 활동의 잔인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중추신경을 자극해서 정신 활동을 충실하게 하는 정신흥분제인 리탈린(ritalin)을 복용하면서 과잉 경쟁하는 고등학생으로 성장한다. 우리의 개인적인 삶과 전문적인 삶은 갈수록 더욱 큰 효율성과 더욱 높은 생산성을 끈질기게 추구하는 것을 중심으로 돌아가서, 여가와 휴가, 그저 평범한 즐거움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이런 삶은 이성적 사고를 끊임없이 가동하는 삶이다. 몸생각을 기반으로 하는 삶은 과연 효율성과 생산성이 없다는 말인가? 무위적 삶에도 사고는 존재한다. 물론 그 사고는 마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하는 것일 뿐이다. 이제 그런 사고는 몸이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것이 되고, 그런 신체적 사고가 작동하므로 효율성과 생산성도 자발적으로 나오기 마련이다. 의식적 사고의 힘이 들어가 억지로 효율성과 생산성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몸생각으로 인한 무의식적 사고의 힘으로 효율성과 생산성이 편안하고 자발적으로 나오는 것이 진정한 효율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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