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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민호 Mar 29. 2024

침대에 누워 책을 읽는다......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아이들과 책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흔히 듣는 말이 있다. 예전에는 가끔 듣는 말이었지만, 요즘에 들어서는 흔히 듣다 못해, 안 들리면 이상한 말이다.


"너무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이 안 나요."


라는 말이다. 아이들이 질문에 대해 아무런 말을 못 할 때 주로 이런 말을 하는데, 아이들이 이 말을 할 때면 난 언제나 이렇게 말한다.


"그래. 혹시 책을 10년 전에 읽었니? 아니며 20년 전?"


그러면 아이들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삼 일 전, 일주일 전 혹은 이주 전에 읽었다고 말한다.


물론 세상의 모든 책들을 읽을 때마다 머릿속에 저장해 놓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럴 필요도 없다. 인공지능의 시대에 책의 내용이나 단순 지식을 암기하는 것이 독서의 척도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읽은 책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최소한 읽은 내용이 블랙아웃의 상태에 놓이지는 않는다. 더 큰 문제는 내용조차 블랙아웃이라면 책에 대한 이해를 기대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책을 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왜 아이들은 책을 읽지 않은 것처럼 책에 대한 기억이 없는 걸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책을 어떤 마음가짐과 어떤 자세로 어떤 환경에서 읽었는지가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요즘은 아이들이 바빠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동 중에 조금씩 책을 읽거나 학원 숙제를 하는 중간중간 책을 읽고, 그리고 많은 학생들이 심지어 침대나 소파에 누워서 책을 읽는다.


종합해 보면, 집중할 수 없는 상태에서 책을 읽으니, 채게 몰입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분명히 책을 읽었다고 말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내 기준으로는 책을 읽지 않은 것이라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한다.


여기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가정에서도 아이가 위와 같이  책을 읽는다면 책을 읽었다고 여기면 안 된다. 사소한 습관과 행동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니 말이다.


물론 침대에 누워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악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침대에 누워 책을 읽을 때가 있고 그렇지 않아야 할 때가 있는 법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읽을 책이 있고, 그렇지 않은 책이 있다.


독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영화를 볼 때도 마찬가지 아닌가?


팝콘과 콜라를 마시며, 혹은 어른이라면 맥주 한 잔을 하며 보는 영화가 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나쁜 놈들을 응징하고, 주변의 사물들을 초토화시키는 영화라면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영화를 보아도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허우 샤오시엔, 마틴 스콜세지, 구로사와 아키라 등 예술성이 높은 영화를 볼 때, 팝콘과 콜라 그리고 맥주는 영화의 몰입을 방해한다. 


최소한 생소한 어휘가 자주 등장하는 책을 읽을 때나, 새로운 지식에 관련한 책, 학습의 영역에서 난도가 높은 책을 읽는 거라면 조용한 환경에서 책상에 앉아 충분한 시간을 투자해 책을 읽어야 남는 게 생기는 법이다.


특히 비문학 책을 침대에 누워 읽는다는 것은 사실 말이 되지 않는다. 특히 난도가 있는 비문학 책은 어휘도 내용도 생소해 집중해 읽어도 여러 번 반복해 읽어야 하고, 기억해야 할 부분이나, 모르는 어휘나 내용이 나오면 체크도 하고 찾아보기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책을 처음 읽는 아이가 침대에 누워 훑어보고 무언가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어불성설이다.


그러니까 비문학을 읽을 때에, 이 독서를 통해 조금이라도 무엇을 얻고자 하는 욕심이 있다면, 책상에 앉아 한 손에는 연필을 쥐고 있는 것이 상식이다.


최소한 공부를 하기 위한 독서라면 책상에 앉아 책을 읽어야 한다. 수학 숙제나 영어 숙제를 침대에 누워서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공부를 위한 책을 침대에 누워 읽는다는 것은 독서에 대한 마음가짐에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 마음가짐이 잘못되었다면 행동의 과정과 결과가 좋을 수 없다.


어느 순간 아이들은 책을 읽고 일주일이 지나면 잊어버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나라도 아이들에게 책을 읽고 일주일이 지나면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최근에는 이런 잔소리를 한다.


책을 읽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건 문제다. 문제가 발생하면 내 안에서 원인을 찾아야 하지, 밖으로 원인을 돌리면 사람은 발전하지 못한다. 그리고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어떻게 하면 문제점을 고칠 수 있을지 방법을 고민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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