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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민호 May 03. 2024

초등학생, 책을 이해하며 읽는 방법

글자를 보지 말고 글을 읽자

초등 4학년 학생들과 '프린들 주세요'를 읽고 책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지금도 초등 교과서에 수록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책이다. 개인적으로 저자인 '앤드루 클레먼츠'는 일관된 이야기를 하는 좋은 작가라 생각한다. 프린들 주세요가 3학년 교과서에 수록되었던 작품이라 저학년 학생들이 읽는 책이라 생각하고 넘기는 경우가 있는데, 중고등학생들과도 이야기를 나누기 좋은 주제를 담음 책이다.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이는 동물과는 다른 체계의 언어가 있기에 가능하다. 프린들 주세요는 언어의 사회적 의미와 기능을 위트 있게 전달하는 책이다.


아이들과 소설(동화)로 수업할 때, 항상 첫 질문은 "인상 깊었던 부분을 이유와 함께 설명하세요"이다. 인상 깊었던 부분이 많고, 이유가 다양하고 진정성 있다면, 책을 읽고 독서 감상문을 쓸 준비가 다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서 감상문은 원고지 앞에서 연필을 들면서 쓰기 시작하는 글이 아니라, 책을 읽는 순간 글을 쓰기 시작한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고, 책을 읽는 과정을 잘 꿰지 못하면 글을 쓰기 어렵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 질문에 대해 답을 하기 어려워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책을 읽을 때, 줄거리를 따라 읽는 것에 멈추어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을 때는,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아야 한다. 스스로 질문하고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질문을 하려면 책의 내용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비판적 사고라 함은 쉽게 이야기하면 '왜'라는 생각을 지속함을 의미한다.


아이들에게는 예를 들어서 설명해 주었다.


'프린들 주세요'는 엄격한 국어 교육과 사전을 사랑하는 그레인저 선생님과 남들은 다 '펜'이라고 부르는 '펜'을 굳이 '프린들'이라는 새로운 단어로 부르겠다는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그레인저 선생님은 엄격하고 규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주의자이다. 물론 반전이 있다.


그런데 책의 맨 앞부분을 보면 '디버 선생님'이 등장한다. 디버 선생님은 3학년 때 선생님이다. 디버 선생님은 아이들이 교실을 열대의 섬으로 만들면 혼내기보다는 "멋지다" 말하며 같이 춤을 추는 선생님이다.


아이들에게,


나는 이 책을 읽었을 때, 디버 선생님의 역할이 무엇일까? 왜 디버 선생님이 등장할까? 궁금해서 책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메모를 해 놓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 책을 보여 주었다. 그다음 질문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은 어떤지 물었다.


아이들 대부분 디버 선생님이 누군인지 기억하지 못했다. 앞부분에 너무 짧게 등장하고 사라지니 주의 깊게 읽지 않았을 테다. 아이들은 그제야 디버 선생님이 누구인지 책에서 찾기 시작한다.


다시 아이들에게 질문했다. 이 책에서 아이들과 함께 춤을 추고 노래하는 디버 선생님과 가정 다른 성격의 인물은 누구인지 물었다.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레인저 선생님이요"라고 대답했다. 


그렇다. 디버 선생님의 역할 중 하나는, 대조법은 아니지만 대조의 방식으로 그레인저 선생님의 성격을 부각하는 역할을 한다. 주인공 그레인저 선생님과 정 반대인 3학년 선생님을 등장시키면서 자연스럽게 그레인저 선생님의 엄격하고 원칙주의자적인 성격을 강조한다.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 책에는 반전이 있다. 그래서 작가는 앞부분에서 독자들을 속여야 했다. 그레인저 선생님을 주인공 닉과 어린이들을 괴롭히는 악역으로 느끼게 해야, 뒷부분의 반전이 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아이들과 즐겁게 노는 3학년 디버 선생님과 대비시켜야, 그다음 등장해 아이들에게 숙제를 내주고 발표를 시키는 그레인저 선생님이 악당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그레인저 선생님의 숨은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했을 때 독자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짧게 한 번 등장하는 디버 선생님은 그저 그런 등장인물이 아니라, 이 책의 전체적인 구도를 잡는 신 스틸러이다.


아이들에게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중 아무 이유 없이 등장하는 인물이 없음을 설명해 주었다. 작가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한다. 하나의 캐릭터를 창조하는 것 자체가 고통인데, 굳이 등장하지 않아도 되는 인물을 등장시킬 리 없다.


그래서 소설을 읽을 때, 등장인물의 성격을 파악하고 역할을 생각해 보는 것은 중심 주제와 책 전반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마지막으로 포스트잇이 잔뜩 붙은 내 책을 보여 주며, 집에서 책을 읽을 때, 나와 같은 방식으로 책을 읽는지 물었다. 그렇게 읽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방법을 바꾸어 보겠다는 다짐을 받아냈다.;;^^ 물론 하루아침에 고쳐질 리는 없지만, 이런 시간이 쌓이다 보면 좋아질 거라 확신한다.


한 아이가 예전에 자기가 논술을 배우던 곳에서는 시계로 시간을 재며 책을 빨리 읽게 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왜"라는 질문을 하며 스스로가 던진 질문에 답을 하며 읽는다면, 과연 빨리 읽는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렇게 읽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초등학생이 책을 빨리 읽어야 하는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책을 읽는 것과 글자를 읽는 것은 다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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