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ok끄적쟁이 Oct 06. 2023

왜곡되지 않은 진짜 현실을 보자

씨줄과 날줄, 사유의 확장 28. 물고기 존재않음, 보이는 세상은 2부

씨줄과 날줄, 사유의 확장 28.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2부

(연관성이 있는 2권 이상의 책을 엮어 사유의 폭을 확장하는 이야깃거리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이 문서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의 스포일러를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출처: 시내윤상회


[먼저 읽으면 좋은 글]

사다리와 민들레의 우화

씨줄과 날줄, 사유의 확장 28.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2부


이름표 붙이는 과학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의 '꽃' 중에서


상상의 영역에서만 존재하는 무언가가 '실재'가 되는 것은 언제일까?

바로 이름이 불리는 순간이다. 이렇듯 '존재하지 않던 것'을 '존재'하게 만드는 이름이라는 것은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본인 이름부터가 반짝거리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바로 이름표를 붙이는 과학자다. 더 정확히는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는 어류들을 정확하게 가르고 나누어 질서를 부여하는 '물고기 분류학자'이다.

이름을 통해 질서를 부여하는 일에 대한 그의 집념은 대단했다. 수년간 수집해 온 표본들이 대지진으로 모두 망가진 상황에서도 구할 수 있는 몇 마리를 위해 호스로 물을 뿌리고, 비늘에 직접 이름표를 꿰맸다. 이토록 무너지지 않는 불굴의 끈기와 이름에 대한 집요함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종의 기원'의 등장


다윈의 「종의 기원」.

세상은 신의 의해 창조되었고, 인간은 그런 신의 모습을 본떠 만든 '특별한 피조물'이라고 철썩 같이 믿던 시대에, 그런 생각에 김치 싸대기를 날리는 책이 나왔다. 신의 섭리에 의해 질서 있게 살아오던 사람들의 정신세계에 '대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종의 기원」은 지구의 모든 생명이 '하나의 원시 생물'에서 진화해 왔다, 인간은 여전히 진화 중이며 언젠가는 멸종할 수도 있다 등 이단적(?)인 내용들로 가득했다. '질서'라는 이름의 신은 이 책의 등장과 함께 종적을 감추었다.

(철썩!) 신은 죽었어, 인마!

'신의 대리인'으로서 분류학자에게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은 여러 종들이 그 본성상 변경이 불가능한 확고한 범주가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인간이 한때는 원숭이, 그보다 오래전에는 물고기였다니... 참을 수 없었던 분류학자들은 해부용 메스를 들고 스스로 신을 찾아 나섰다. 생명체의 껍질을 가르고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서 그들의 뼛속과 연골, 내장 속에 신이 만들어 놓은 동물들의 '진짜 관계'를 발견하고자 했다. 이단자 다윈마저도 「종의 기원」 말미에 밝히지 않았던가.

생명에 대한 이런 (책 속) 시각에는 어떤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마침내 찾아낸 신의 뜻


그래 이거다!

충격적일 만큼 인간과 비슷한 물고기의 내부(작은 머리, 척추골, 갈비뼈 같은 돌출 가시)는 신이 '인간'에게 주는 경고였다. 멍게도 원래 고등 물고기였지만 '게으름과 빌붙어 살아가려는 습성' 때문에 현재 같은 형태로 '강등'된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가진 재능을 잘 활용하지 않으면 가장 낮은 위치까지 추락할 수 있다. 인류는 계속해서 높이 올라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현실에 만족한다면 발전이 가로막히고 좌절되고 병든 상태로 남게 될 것이다. 그건 안 될 일이다. 거기서 벗어나려면 훌륭한 유전자들 간의 결합을 통한 '좋은 출생'이 필요하다.  '도덕적으로 비뚤어진 자, 정신적 결함이 있는 자, 유전적 불구자들' 같은 결함이 있는 피조물들에 대한 자선과 호의는 인류를 쇠퇴하게 한다. '불임화'라는 메스를 이용해서라도 과감히 도려내야 한다. 그렇게 분류학자들이 찾아낸 신의 뜻 '우생학(優 좋을 우, 生 태어날 생)'이 만들어졌다. 세상이 다시 질서를 찾은 듯 보였다.


'나투라 논 파싯 살툼'(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

생물 분류의 1원칙:
하나의 진화적 집단은 특정한 한 조상의 모든 자손을 포함해야 하며, 다른 것은 하나도 포함해서는 안 된다.
생물 분류의 2원칙:
두 종 사이에 비슷한 점이 많을수록 가까운 관계이다.

하지만 분류학자들이 오랜 시간 정성스레 정리한 두 가지 원칙에 따르면,

- 새는 공룡이었다!

- 버섯은 식물 같아 보이지만 동물과 훨씬 가깝다!!

- 폐어는... 연어보다는 소와 더 가깝다!!!

소와 호주폐어, 사는 곳은 다르지만 우리는 친척입니다, 출처: 나무위키

조류, 포유류, 양서류도 존재한다.

그러나 생물 분류 원칙에 적합한 어류(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진정한 신의 뜻은 분류학자들의 제멋대로인 해석이 아니라,

다윈의 말속에 있었다.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


자연에는 가장자리도, 불변의 경계선도 없다. 하나의 종으로 여겨온 생물들 안에는 너무나 많은 다양성이 존재한다. 성스러운 경계로 절대 불가능하다 여겨졌던 다른 종끼리의 번식이 오히려 '변이'라는 형태를 통해 그 종의 멸종을 막는 가장 확률 높은 방법임이 증명되었다. 우리 눈에 불쾌하게 보일 수 있는 특징들이 사실 종 전체나 생태계에는 이로울 수도 있고, 상황이 바뀌면 위기극복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질서라는 이름의 신이 사라진 자리에 혼돈이라는 이름의 신이 등장한 것이다. '혼돈의 신'이 경고한다. 


수많은 생명들의 순위를 정하지 말라. 
누가 승리하게 될지 너희는 결코 예측할 수 없다.


혼돈과 질서, 당신의 선택은?


물고기가 없는 불확실한 혼돈을 살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방향 감각을 잃고 기준 없는 어둠 속을 헤매는 두려움 보다, 차라리 근거가 없더라도 물고기를 붙잡고 있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사실이 중요한가, 위안을 준다는 것이 중요하지. 그래도 소용돌이치는 혼돈 속에는 다윈이 거기 있을 것이라 귀뜸했던 땅이 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경계가 없고 풍요로운, 아무 기준선도 그어지지 않은 곳. '넌 중요하지 않아. 물고기와 넌 같은 높이야.'라고 팩트폭행을 날리는 진실의 땅이.


혼돈과 질서, (불편한) 진실과 편안한 (거짓), 당신이라면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3부에서 계속)

빨간 약을 줄까, 파란 약을 줄까


오늘 읽은 책 한쪽이

내일의 나를 만듭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리틀보이와 팻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