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ok끄적쟁이 Jan 25. 2024

듄린이에서 듄친자로

<듄의 세계>를 읽고

커버사진 출처: 익스트림무비


있음 직한 세계, 그럴듯한 이야기

때로 우리 SF 소설가들은 떼돈을 벌기도 한다. 현실 정치가 허구를 따라잡기 때문이다. - 프랭크 허버트


듄은 SF 소설이다. 허구의 이야기란 소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있음 직한 세계를 그리고, 실제로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블라드미르'라는 이름을 들으면 누가 떠오르는가? 뒤에 '하코넨'이란 성을 붙이면 '듄 파트 1' 속 최악의 빌런이 되고, '푸틴'을 붙이면 러, 우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의 독재자가 된다. 또 하나 더, 이동을 가능케 해 주고, 사막 환경에서 발견되며, 채취 작업에 커다란 위험이 수반되는 귀중한 물질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듄의 세계에서는 이걸 '스파이스'라고 부르고, 현실 세계에서는 '석유'라고 부른다. 이처럼 듄은 무에서 창조해 낸 이야기가 아니다. 200권이 넘는 논픽션을 읽고 이슬람 신화부터 의미론, 천문학, 선불교,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의식 등 온갖 것을 공부한 '프랭크 허버트'가 약 6년간의 조사와 일 년 반 동안의 집필 기간을 거쳐 만들어낸 '현실기반 SF 소설'이다. 책 '듄의 세계'는 '듄'에 영감을 준 모든 역사적 사실들을 담고 있다. 드니 빌뇌브의 영화 '듄 파트 2' 개봉이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알아두면 영화 보는 재미를 2배로 높여줄 듄의 세계 속 숨은 이야기 몇 가지를 살펴보자.

개봉박두! 출처: 영화 '듄 파트 2'


인공지능 제작 금지령

인간의 정신을 본뜬 기계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 오렌지 카톨릭 성경


서기 26,391년, 지금으로부터 2만 년도 더 흐른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듄'에서 미래보다 과거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건 '버틀레리언 지하드' 때문이다. 영화 '듄' 속 이야기가 펼쳐지기 1만 년 전, 기계에 반대하며 100년 동안 이어진 성전이다. 이 전쟁으로 인해, 은하계에 존재하는 생각하는 기계란 기계는 모조리 파괴됐다. 그래서 '듄'에서는 우주선이나 레이저총 대결 대신 칼을 사용하던 중세 유럽의 근접전과 유사한 싸움을 하고, 복잡한 수학, 과학 문제를 컴퓨터 대신 '인간 컴퓨터 맨타트'가 해결하게 된 것이다. '버틀레리언 지하드'라는 이름은 영국 소설가이자 비평가 새뮤얼 버틀러에게서 따왔다. 그는 기계가 인간을 노예로 삼을 만큼 똑똑해지기 전에 러다이트 운동을 펼쳐 기계를 모조리 파괴하자고 주장했다. '기계'를 'AI'로 바꾸면 지금 시대에 치열하게 고민해봐야 할 화두이기도 하다.


가장 귀중한 물질

스파이스는 흘러야 한다. - 우주 조합


내연기관의 개발이 석유를 가장 귀중한 상품으로 만들었듯, 인공지능 제작 금지령은 스파이스 멜란지를 가장 귀중한 물질로 만들었다. 먼 곳으로 화물과 승객을 실어 나르는 초광속 여행이 스파이스 멜란지를 복용한 우주 항법사를 통해서만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항법사들이 연합하여 만든 '우주 조합(The Spacing Guild)'의 위세는 듄의 세계에서 사용하는 기준 연도가 A.G.(After Guild)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소위 말해 그 세상에선 '예수님 급'인 셈이다.


'오일 쇼크'가 일어나면 글로벌 경제가 흔들리듯, 스파이스 공급이 멈추면 전 우주의 흐름이 멈춘다. 그 정도로 귀중한 물질이다 보니 스파이스 채취, 공급, 판매는 은하제국 제1의 관심사였고, 그 물질을 차지하려는 권력가들 간에 갈등도 치열했다.


가장 부유한 가상의 조직


"포브스 선정 가장 부유한 가상의 조직 1위, 초암 공사"


스파이스를 차지한다는 것은 성간 무역을 독점하는 것을 의미하고, 무역을 독점하는 자는 은하 전체를 지배할 힘을 가진다. '초암 공사'는 바로 그 스파이스를 독점 공급하는 업체이다. 제국의 황제가 20%의 지분을, 나머지 귀족 가문 및 은하 제국의 실세들이 남은 지분을 나눠 가진다. 황제를 제외하고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한 두 가문이 '아트레이데스'와 '하코넨'이다. 여러 우여곡절도 있었을뿐더러 커다란 권력과 이득을 나눠가져야 하는 두 집단 사이가 좋을 리 없었다. 두 가문 서사에는 '듄' 집필 당시 한창 과열되어 있던 냉전 구도의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도 엿보이고, 전성기의 그리스와 부정하고 퇴폐한 로마의 모습을 대비시키기도 한다. 서두에서 언급한 온갖 악랄한 짓을 일삼는 하코넨 가문의 통치자 '블라드미르 하코넨'은 로마 황제 '칼리굴라'의 복사판이다.

두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말, '누구에게나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권리가 내게 있음을 명심해라.' 출처: 영화 '듄', '칼리굴라'

 

유목민 + 인디언 = 프레멘?


"사람이 살기 어려운 외딴 지역에 억압받으며 사는 사람들이 자기들보다 훨씬 강력하고 기술적으로 진보한 국가에 대항해 종교적 색채를 띤 격렬한 게릴라전을 펼친다."


듄의 세계를 설명한 말이지만 이상하게 현실의 어느 곳이 떠오른다면? 맞다. 당신이 이상한 게 아니다. 위의 설명은 정확히 중동, 북아프리카 사막지역에 사는 유목민족을 설명하는 말이기도 하다. 


눈만 내놓은 채 후드를 둘러쓰고 로브를 걸친 프레멘의 모습은 북아프리카 베두인 유목민을,

선불교, 수니파 이슬람교, 기타 여러 종교가 혼합된 그들의 종교 '젠수니'는 이슬람교를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여기에 환경 보호와 생태학에 헌신하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자연 중심적 신념을 섞어 독특한 프레멘 종족을 탄생시켰다. 스파이스는 혼합의 결정판으로, 아랍 음식처럼 특유의 계피향이 나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종교의식에서 사용했던 '마법 버섯'처럼 환각 현상을 일으킨다.

푸른 눈은 스파이스에 오래 노출되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출처: Vanity Fair


광신도가 메시아를 만났을 때

너의 동족들이 영웅의 손에 떨어지는 것보다 더 끔찍한 재앙은 없다. - 파도트 카인즈


자유주의자들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칭송하지만, 인간은 자유의지에 대한 욕구만큼 나라는 존재를 구원하고 올바른 세계로 이끌어줄 강력한 지도자, '메시아'를 갈망한다. 석가모니, 예수, 무함마드는 당시 고통받는 사람들의 '메시아'였다. 억압받는 프레멘들에게 '폴 아트레이데스'의 등장은 유구한 시간 동안 진심으로 올렸던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을 것이다. 듄의 세계에서 폴은 다음과 같이 불린다.


퀴사츠 헤더락(시공을 초월한 자)

리산 알 가입(외계에서 온 목소리)

마디(인도된 자)


모두 '메시아'의 다른 이름이다. 폴은 추종자들의 열망에 부응하여 '프레멘 해방전쟁'을 이끈다. 하지만 허버트는 '영웅 숭배의 위험성'을 경고한 소설로 유명해진 작가이다. '듄'이 대표적이다. 동전의 양면을 모두 보여준다. 시공을 초월하는 예지력을 가지게 된 폴의 눈에 피로 물든 종교전쟁을 벌이는 프레멘 부대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억압받던 사막 종족이 '스페이스 탈레반'으로 변모한 순간이었고, 그 시발점이 폴과의 만남이었다. 작가는 폴이 가장 위대해지는 순간에 '듄' 1권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듄' 시리즈는 총 6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위대한 영웅의 다음 챕터를 넘길지 말지,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영웅과 반영웅의 구분은 이야기를 어디서 멈추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 프랭크 허버트 


Welcome to 듀니버스!


책 '듄의 세계'는 소설과 현실 세계 간의 접점이다. 왜 우리가 '듄'의 이야기를 보면서 '기시감'이 드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 듄의 세계에 처음 입문한 '듄린이'에서부터 듄의 모든 것을 알고 싶은 '듄친자'까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전부가 이 책 속에 들어있다. 영화를 통해서든 소설을 통해서든 세상의 모든 '듄며든' 자들이여, '듄의 세계'를 읽을지어다. Welcome to 듀니버스!

*이 글은 황금가지 출판사로부터 '듄의 세계'를 제공받고 작성한 글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