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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끄적쟁이 Mar 19. 2024

다크메시아의 징후

듄 파트 2 중반부

이 문서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의 스포일러를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검은 두건의 사나이


검은 두건을 뒤집어쓴 폴의 모습이 어딘가 익숙하다. 그에게서 자꾸 다른 사내의 모습이 겹쳐진다. 한때 장래가 촉망되던 유망주였다가 어둠의 힘에 변해버린 한 남자. 죽음을 초월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절대적인 힘을 갈망하다 악당의 꼭두각시가 되어버린 영웅, 아나킨 스카이워커도 폴처럼 두건을 뒤집어쓰고 있었더랬다. 언제나 그랬다. 궁극의 힘을 얻기 위해선 상반된 두 가지 힘의 조화가 필요하다. 선과 악, 음과 양, 빛과 그림자. 하지만 대부분의 영웅 후보들은 그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흑화 된다. 최악의 빌런이 과거 최고의 영웅이었던 경우가 많은 이유이다. 불안하게도 폴에게서도 그런 낌새가 보이기 시작한다. 다크메시아의 징후가.

최고의 제다이 후보는 결국 다스 베이더가 되었다.  출처: 스타워즈 에피소드 3


다크메시아의 징후


교주 제시카


물이 곧 힘인 사막행성 아라키스. 그곳에서도 최고의 물이라 여겨지는 것이 '생명의 물'이다. 생명의 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우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연상시킨다. 모래벌레 유충의 배설물이 숙성하면 평범한 '스파이스 멜란지'가 된다. 만약 최고의 스파이스 멜란지를 얻고 싶다면 유충을 죽여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물에 빠뜨리면 된다. 이 벌레에겐 물이 최악의 독이기 때문이다. 유충은 익사하면서 토사물을 쏟아내는데, 이게 바로 '생명의 물'이다. 이름이 무색하게 일반인은 한 방울만 마셔도 즉사한다. 하지만 독극물 저항 훈련을 익힌 엘리트 베네 게세리트는 이 물을 마시는 순간 프레멘 공동체의 유전적 기억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게 된다. 제시카는 생명의 물을 마시는 의식을 통해 '프레멘 클라우드'에 연결된 '샤이아디나(대모)'가 된다.



위협적인 프레멘들 사이에서 자신과 아들의 생존을 위해 시도했던 일을 깔끔하게 성공한 제시카는 다음 단계를 준비한다. 이름하여 '폴 메시아 만들기 프로젝트'. 예수의 왕림을 예언하는 사도 요한이 되기로 한 것이다. 대모조차 볼 수 없는 곳을 볼 수 있는 존재, 퀴사츠 해더락은 반드시 자기 아들이어야만 했다. 이미 프레멘의 일거수일투족을 꿰뚫어 보게 된 그녀에게 믿을 구석이 필요한 힘없는 프레멘들을 신도로 만드는 건 손쉬운 일이었다.


광신도 스틸가

억압이 있는 곳에서 종교가 번성한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 - 소설 '듄'


프레멘이라는 민족은 평생 동안 분노와 슬픔을 안고 살아왔다. 사막이란 척박한 환경, 스파이스로 인한 열강들의 끝없는 침탈은 그 분노와 슬픔의 자리에 다른 어떤 것도 들어설 수 없게 만들었다. 오직 리에트 카인즈가 죽기 전에 그들에게 불어넣어 준 꿈만이 예외였다. 언젠가 물 문제를 해결하고 아라키스가 낙원이 된다는 희망. 그런 그들 앞에 꿈의 실현을 확 앞당겨줄 전설 속의 메시아가 등장한 것이다.


프레멘들이 폴을 부르는 명칭의 변화를 살펴보자.


처음 그들의 외침은 그를 인정하는 선언이라기보다는 질문에 가까웠다.

마디(인도된 자)?, 리산 알 가입(외계에서 온 목소리)?

(너 정말 우리가 기다려 온 '그 사람'이 확실해?)


그러다 폴이 아라키스의 사막 환경과 프레멘의 관습에 익숙해지자 친근한 별칭으로 불렀다.

우슬(기둥의 기초), 무앗딥(사막 생쥐)

(넌 이제 어엿한 우리 프레멘 전사야.)


마침내 거대 샤이 훌루드를 타고, 생명의 물을 마셔 과거와 미래를 말하기 시작하자 의심은 숭배로 바뀐다.

마디(인도된 자)!, 리산 알 가입(외계에서 온 목소리)!!!

(오~, 우리들의 구세주시여!!!)


'친구가 숭배자로 변해 버렸어.' 그는 생각했다. 그것은 사람을 전보다 못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었다. 폴은 여기서 지하드의 망령을 느꼈다. - 소설 '듄'


반영웅 페이트 로타


"푸하하하! 나는 널 죽이기 싫어! 너 없으면 난 누구랑 놀아? 다시 그 마피아 놈들이나 등쳐먹으며 살라고? 아니, 아냐. 아냐! 넌, 나를 완성시켜." - 영화 '다크나이트'에서 조커의 대사


고담의 영웅 배트맨과 하비 덴트를 다크나이트와 투페이스로 만든 건 조커였다. 반영웅의 진짜 무서운 점은 분노로 대변되는 영웅 내면의 악한 본성을 끌어내는 것이다. 그게 바로 죽어가면서까지 자기가 이겼다고 지껄일 수 있는 이유다. 최후의 결전 후 거울 속에 비친 영웅의 모습은 '안티 히어로' 그 자체이니까.


배트맨에게 조커가 있다면, 폴에겐 페이드 로타가 있다. 영화에선 타브르 시에치 폭격을 통해 폴이 숙명을 받아들이는 계기를 만들었다면, 원작에선 챠니가 낳은 폴의 아들을 죽이는 원흉이기도 하다. 어느 쪽에서나 폴이 수많은 희생을 치르는 종교 전쟁을 감수하면서까지 광신도 프레멘의 힘을 받아들이는 트리거 역할을 하는 것이다. 둘의 1:1 대결에서 누가 이기건 남는 건 오직 '하코넨'의 피를 이어받은 반영웅일 뿐이었다.


"저 놈들 눈에는 너도 그냥 나와 같은 괴물이야. 당장이야 네가 필요하겠지. 하지만 필요가 없어지면 널 문둥이인 마냥 쫓아내 버릴 테고." - 영화 '다크나이트'에서 조커의 대사


모든 징후가 향하는 곳


그것은 폴이 걸어야 하는 팽팽한 줄이었다. 또한 간신히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시소이기도 했다. 삐끗하면 그를 기다리는 것은 처절한 지하드, 그의 이름을 내걸고 벌어질 살육의 종교 전쟁이었다. 하지만 최후의 순간 폴은 미래를 조금이라도 바꾸려는 자신의 노력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깨닫게 된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만약 내가 여기서 죽는다면 사람들은 내가 스스로를 희생했다며 내 영혼이 자기들을 이끌어줄 거라고 말하겠지. 그리고 내가 살아남는다면, 사람들은 어느 것도 무앗딥에게 저항할 수 없다고 할 거야.' - 폴


*본문 속 사진 출처: 영화 '듄 파트 2'

*다음 주 화요일 '듄 파트 2' 후반부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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