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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끄적쟁이 Apr 22. 2024

제국이 될래, 식민지가 될래?

커버사진 출처: 이지펜


베스트팔렌 조약

각국이 서로 평등한 주권을 존중받고 어떤 종교, 어떤 체제를 선택할지에 대해 외국의 간섭을 받지 않으며, 국제질서는 예측 가능한 규칙에 기반해 이루어져야 한다. -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1648년을 기점으로 유럽 각국은 '하나의 종교'라는 굴레를 벗어던졌다. 중세 유럽을 지배했던 '가톨릭 국가'체제에 개신교도들이 균열을 일으켰고, 오랜 종교전쟁 끝에 하나의 종교로 인류를 통합하겠다는 꿈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다. 모든 사람을 가톨릭 신자화 시키는 것보다는 그때그때 세력균형에 따라 국경을 존중하는 것이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는 데 훨씬 유용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덕분이다. 하지만 당면한 현실을 중시하는 '베스트팔렌 주의자'들은 이후에도 수많은 이상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았다. 가톨릭과 개신교가 숨 고르기에 들어간 자리를 이슬람으로 통일하려는 오스만 튀르크의 술탄들, 민중에 의한 혁명을 전 유럽에 퍼트리려는 프랑스혁명의 전도자들, 노동계급의 일치단결로 국가들을 무너뜨리려는 공산주의 혁명가들이 조약을 깨부수기 위해 지속적으로 도전했다. 모든 외부의 간섭에 신물이 난 국가들은 자체적인 힘을 키우는 데 주력한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화석에너지의 시대


이제껏 인간이 사용하는 에너지는 근력, 물, 바람이 전부였다. 근육만 사용하던 시기는 살아남기에 급급했고, 물을 이용하면서 비로소 큰 강 유역에 문명이 탄생했으며, 바람을 이용하면서 문명국가가 늘어나고 대항해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1700년대에 이르러 이러한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인류가 화석에너지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석탄과 석유를 태워 에너지를 만드는 역량을 갖추게 된 인간은 이제 지리적 여건의 제한에서 벗어나 지구 어느 곳에서나 강력한 국가를 건설할 수 있게 되었다. 본격적인 제국주의 레이스가 시작된 것이다. 최대한 많은 자본과 자원을 확보하여 산업화 기간시설을 먼저 구축한 나라가 이기는 게임말이다.


2인자들의 안간힘

국가들 사이의 질서란 언제나 이성보다는 폭력의 우열에 따라 변화하기 마련이었다. - '붕괴하는 세계와 인구학'


물, 바람을 주력 에너지로 사용하던 시절의 강대국의 조건이 단순했다면, 누구나 강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화석에너지 시대는 조건이 좀 더 까다로워졌다. 자본과 기술, 자원과 시장이 모두 필요했다. 허나 하나의 국가 안에 4가지를 모두 갖춘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자본과 기술을 갖춘 나라들이 택한 것이 식민지 개척이다. 다른 나라들로부터 자원을 값싸게 구하고, 자국 상품은 비싸게 팔아넘기는 것이다. 이런 착취 행위의 1인자가 영국이었다. 영국은 스페인, 네덜란드로부터 제국의 지위를 물려받아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을 건설했다. 대영제국시대를 살아가는 국가들에겐 두 가지의 선택권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식민지가 되든지, 대영제국을 능가하는 또 다른 제국이 되든지. 이때 유라시아 대륙에는 대영제국에 도전장을 내민 나라가 있었다. 


독일의 통일과 확장

그들의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 독일이 유럽을 장악하면 제해권을 노리게 되고 결과적으로 대영제국과 양립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독일로서도 대영제국에 맞먹는 강한 해군력을 키우는 게 현명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 영국 외무부 독일 전문가 에어 크로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괴물이 된 독일  출처: 프리픽

강대국은 충돌한다. 서로의 의도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독일의 두려움은 영국과 달리 국경이 자연 방파제로서 다른 나라의 침략을 막아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독일의 서쪽에는 프랑스, 동쪽에는 러시아가 있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실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다. 이것이 독일이 통일 이후 산업화로 나아가면서 군사력에 힘을 쏟아부은 이유다. 다행히 독일은 서부의 라인-루르강 수로망 덕분에 자본 창출과 공급사슬 구축에 있어 영국보다 훨씬 유리했다. 특히 루르강 유역은 유럽에서 최고 품질의 석탄 매장지였기에 급속한 산업화에 안성맞춤이었다. 식량과 에너지(특히 석유)의 자급자족을 원하는 독일에게 우크라이나 곡창지대와 영국사이의 바다에 대한 제해권은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하는 생존권이었다. 이는 비단 히틀러뿐만 아니라 이전 독일 제왕들도 품었던 두려움이자 야심이었다. 결국 적대적인 이웃나라들에 둘러싸여 점점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 독일이 부유하고 강해져서 다른 유럽 국가들의 컨트롤을 벗어나게 되었을 때 세 차례의 커다란 전쟁이 발발하였다(1871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욱일승천 일본


1853년 일본 앞바다에 흑선(쿠로후네)이 출몰한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쇄국정책으로 일관한 조선과는 달리 힘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은 빠르게 근대국가로 변모했다. 흑선으로 상징되는 서양 열강들의 식민지가 되는 공포는 일본을 서두르게 만들었다. 산업화에 필요한 원자재를 확보하기 위해선 제국을 세우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이왕 남의 것을 빼앗기로 결정하자, 일본은 매우 신속히 움직였다. 1904년 일본은 건설에 쓸 목재를 확보하기 위해 한국을 점령한다(주변 열강들이 미친 듯이 원자재 확보 전쟁을 벌일 때, 작은 세계 안에서 살길을 찾고, 바깥으로 진출해 수중에 없는 걸 차지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조선은 그렇게 망국의 길을 걷게 되었다). 발 빠르게 도입한 서양 문물에 특유의 '가이젠(생활의 모든 면에서 끊임없이 고쳐나간다는 일본의 생활철학)'을 더한 일본은 청, 러 등의 열강을 제압하고 동아시아 제국을 건설했다.

일본제국이 점령했던 최대 영토  출처: 알라딘 서재


부자와 빈자의 차이

부유한 사람은 주위의 물적, 인적 환경을 통제할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은 주위의 환경에 순응해야 한다. - 레스터 서로


제국주의 경쟁을 불러온 산업화는 한 국가가 재정적, 사회적으로 막대한 비용을 들여 겪는 가장 파괴적인 변화였다. 산업화를 거치면서 사회적 정치적으로 혼돈을 겪지 않은 나라는 단 한 나라도 없었다. 사회적 격변, 혁명, 폭동, 정치적 붕괴, 전쟁이 쇄도했다. 이 시대의 가장 큰 관건은 자본이었다. 산업시설을 만들기 위해 온갖 새로운 방법으로 자본을 동원해야 했다. 돈이 있으면 지배자가, 돈이 없으면 노예가 되는 세상이었으니까. 그렇게 시대는 자본을 모으고 운용하는 방식에 따라 자본주의, 공산주의, 파시즘이라는 등장인물을 무대 위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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