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 시즌 1 중반부
이 문서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의 스포일러를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이 말은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빗대어서 표현하는 관용어로써, 평소 일정한 생활패턴이 있는 사람이 갑자기 그 패턴에 맞지 않은 행동을 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삼체 문명에서는 상식을 벗어난 일들이 빈번히 일어난다. 해가 서쪽에서 뜨는 건 애교 수준이다. 며칠 동안 해가 안 뜨기도 하고 한 번 뜬 해가 지지 않고 계속 떠있기도 한다. 혹한의 긴 밤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무더운 낮이 계속된다고 생각해 보라. 생활하기에 무척 성가실 것이다. '지구 극지방이랑 비슷한 거 아냐?'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삼체 세계에서는 이런 현상이 하루가 될지 한 세기동안 지속될지 아무도 모른다. 삼체 문명의 태양은 왜 이렇게 '금쪽같은' 행동을 하는 걸까.
태양 운행이 불규칙한 것은 삼체 세계에 태양이 세 개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상호 인력 작용 아래 예측할 수 없는 삼체 운동을 한다. 삼체문제란 세 물체 간의 중력이 어떻게 작용하고, 그 결과로 어떠한 궤도 움직임을 보이는지에 관한 질문이다. 물리학 분야에서 손꼽히는 골치 아픈 난제인데, 라그랑주, 라플라스, 아이작 뉴턴 등 기라성 같은 수학자들도 그 패턴을 찾아내지 못했을 정도다.
삼체인들은 '매일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이 당연한 우리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고충을 겪는다. 물론 그들 세계도 우리처럼 한 개의 태양을 따라 안정적으로 운행할 때가 있다. 이때를 '항세기'라 부른다. 질서 있고 평온한 시기다. 문제는 이게 디폴트값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머지 한 개 또는 두 개의 태양이 일정 거리 내로 들어오면 그 인력 때문에 행성은 평온한 기존 운행에서 벗어나 불안정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때가 '난세기'이다. 기본이 난세라는 의미는, 삼체 세계가 '규칙이 전혀 없는 혼란한 세계'란 걸 뜻한다. 문명 발전이 가능한 항세기는 언제 시작되고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예측불허의 '항세'라는 행운을 기다리며 삼체인들은 기약 없이 혹한, 중력 이상, 폭염을 견뎌낸다.
이 밤은 48년 동안 계속되었다. 제137호 문명은 혹한 속에 멸망했다. 이 문명은 전국 단계로 진화한다. 문명의 씨앗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것은 다시 살아나 삼체 세계의 운명은 알 수 없는 진화를 시작할 것이다. - 삼체 1권 '삼체문제' 중에서
혹한과 폭염 등 극한 환경 속에서 수많은 삼체 문명이 멸망을 맞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번 문명의 밑거름이 될 씨앗을 남길 수 있었는데, 그건 삼체인들의 독특한 적응능력 덕분이다. 이른바 탈수와 입수. 삼체인은 변화무쌍한 자연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언제든 자기 체내의 수분을 완전히 배출해 '마른 섬유 상태'로 변할 수 있다. 이렇게 탈수된 삼체인들은 돌돌 말려 '간창'이라는 대형 창고에 보관된다. 그러다 다시 항세기가 도래하면, 최고 지도자의 결정 아래 '입수'가 진행된다. 지도자 보필을 위해 탈수하지 않고 살아가던 극소수의 삼체인들이 탈수된 자들을 물에 집어넣으면 놀랍게도 원래 모습으로 되살아난다.
탈수와 입수 말고도 삼체인의 특수능력이 하나 더 있다. 온몸이 거울처럼 이루어져 있어 태양빛을 100% 반사시킬 수 있다. 태양이 세 개인 세계에서 이건 매우 중요한 능력으로, 자외선처럼 해로운 광선 소나기로부터 신체를 보호할 수 있다. 이런 능력들을 놓고 보면 삼체인들이 지구인과 비슷하게 생겼으리라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실제 현실 속에 이런 특징을 가진 동물이 있다. '곰벌레'는 30년 넘게 냉동보관되었다가 되살아났고, 영하 273도, 영상 151도 및 치명적인 농도의 방사성 물질에 노출돼도 죽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진공 상태의 우주 환경에서도 생존가능한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삼체인이 실제 한다면 곰벌레와 비슷한 모습이지 않을까 추측되고 있다(정확한 모습은 소설과 영화 속에 나오지 않는다).
우리 중 하나가 생존하면 모두 생존한다 - 넷플릭스 '삼체'
기후변화로 갑작스레 탈수하게 되면 '간창'에 보관되지 못하고 황야에 방치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들은 어찌 되는 걸까. 오래 방치되어 먼지로 사라지는 게 차라리 나은 운명이라 하면 잔인한 말일까. 그들 중 대다수는 식량이나 연료로 사용된다. 남은 자들의 생존을 위해서. 생존이 최우선 과제인 문명에 개인의 존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할 수 없는 자들은 죽어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 개인에게 필요한 건 냉정함과 무감각. 공포, 슬픔, 행복, 아름다움 등 모든 감정은 피하고 없애야 할 죄악이다. 감정은 개인과 사회를 정신적으로 취약하게 만들어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는 데 불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피도 눈물도 없이 살아야 겨우 생존이 가능한 삼체 항성계. 먼 옛날 12개의 행성이 있었지만 모두 세 개의 태양에 잡아먹히고 남은 건 삼체인이 살아가는 행성 하나다. 이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생존 전략은 광활한 우주에서 신세계를 찾는 것뿐... 성공확률 0.001% 미만의 절망적인 상황.
그런 그들에게 예원제의 신호가 도착한 것이다!
마치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오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