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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끄적쟁이 Apr 23. 2024

어디에서 이야기를 멈출 것인가

듄 파트 3 예상도 세 번째

커버사진 출처: '듄 파트 2'


이 문서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의 스포일러를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팬들의 기대


폴과 챠니는 그 후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듄 파트 1, 2의 관람을 마친 팬들이 '파트 3'에서 바라는 엔딩은 위와 같을 것이다. 그런데 파트 3의 원작에 해당하는 '듄의 메시아(듄 2권)'를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알고 있겠지만 프랭크 허버트는 그러한 팬들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는다. 오죽했으면 듄의 첫 출판인이었던 조셉 M. 캠벨이 원고를 읽고 화가 나 2권을 출간할 기회를 내던져버렸겠는가. 허버트는 폴이 최고의 영웅이 되는 시점에서 1권을 마무리했다. 이어지는 2권은 폴의 팬들이라면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 만큼 무력한 영웅의 내리막길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웅과 반영웅의 구분은 이야기를 어디서 멈추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 프랭크 허버트

듄친자들에겐 이정도의 충격이 아닐까?  출처: 파리의 연인, 지붕 뚫고 하이킥, 재벌집 막내아들


영웅의 얼굴 뒷면

초인만이 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로 인간적 실수를 저지를 때, 커다란 문제가 발생한다. - 듄 창세기


폴은 황제로 즉위한 후 12년 동안 '지하드(성전)'라는 이름으로, 610억 명을 죽이고, 90개 행성을 초토화시켰으며, 500개 행성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그리고 프레멘의 종교를 제외한 40개 종교가 추종자들과 함께 사라졌다. 그는 새로운 은하제국의 황제이자 신이었다. 그의 눈빛 하나, 손짓 한 번이면 행성 하나를 날릴 수 있었다. 히틀러나 스탈린도 애송이처럼 느껴질 정도다. 폴은 이제 함부로 짜증도 낼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의 백성들인 프레멘은 어떤가. 프레멘 제국의 설립 이후, 그들은 모두 쾌락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물이 풍족해지면서 한때 아라키스의 영혼이었던 물은 이제 독이 되었다. 근면성실, 절약, 고통을 감내하던 과거의 프레멘은 자취를 감추었다. 나태하고 쾌락을 추구하며 다른 민족을 업신여기는 '푸른 눈의 하코넨'이 있을 뿐이다. 폴은 자신의 도시를 혐오했다!


예언의 불확정성 원리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알아낼 수 없다. -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

폴은 '퀴사츠 해더락'이다. 과거와 미래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절대적인 예지능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미리 안다는 것이 모든 걸 바꿀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폴은 자신으로 인해 수십억 명이 죽어나갈 은하 전쟁이 다가오는 걸 알았지만 막아낼 힘은 없었다. 수많은 경우의 수 중에서 자신이 황제에 등극하고 프레멘 제국을 세우는 길을 선택했을 뿐이다. 권력을 손에 쥐고 어떻게든 끔찍한 성전으로 향하는 방향을 틀어보려 했지만 아무런 결실을 얻지 못했다. 미래를 더 많이 알게 될수록 미래에 영향을 주는 게 어려워졌고, 미래에 영향을 미치려고 노력할수록 미래는 보란 듯이 예측을 빗나갔다. 모든 걸 알고 나자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뿐이었다.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고정된 하나의 길을 외줄 타기 하듯 나아가는 것. 역설적이게도 모든 과거와 미래를 보고 온 그는 자유의지를 상실한 꼭두각시가 되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었다.  출처: 나비효과, 어바웃 타임


챠니를 위해서라면...


'챠니. 챠니. 다른 방법이 없었소. 챠니, 내 사랑, 이 죽음이 당신에게 더 빠르고... 더 편안한 것이었음을 믿어줘요.' - 폴


끔찍한 종교전쟁을 막을 수 없었듯, 챠니의 이른 죽음도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었다. 폴의 처지는 물살에 휩싸인 나뭇가지와 같아서, 어디로 흘러갈지는 알아도 물살 자체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폴의 선택은 '가장 덜 불행한 죽음'이었다. 챠니는 출산의 과정에서 죽게 되지만, 그녀의 두 아이는 살아남았다. 적들도 쓸어버릴 수 있었다. 다만 그에 대한 대가로 폴은 두 눈을 잃는다. 황위에서 내려온다. 사막에 버려진다. 그는 이미 그런 결과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길에서 단 한 번도 내려서지 않았다. 오직 챠니를 위해서...


가장 힘든 건 그 자신이 겪을 고난이 아닌 죽은 챠니를 돌려주겠다는 틀레이렉스인의 제안이었다. 그가 사랑하는 육체를 갖고서, 오로지 그만을 사랑하며 그의 아이들을 낳아줄 챠니의 골라를 만들어 주겠다는 유혹이었다. 사실 골라 던컨은 이 제안을 위한 미끼였다! 폴이 챠니의 죽음을 알게 된 순간, 완벽한 던컨으로 돌아온 골라를 보며 그는 얼마나 흔들렸을까. 영원히 틀레이렉스의 꼭두각시가 되더라도 갖고 싶지 않았을까.


'챠니의 목소리를 한 번만 더 들을 수 있다면, 내 옆에서 그녀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면.' - 폴


결말을 알고 있을지라도 너를 선택할 거야...  출처: 지금 만나러 갑니다, 컨택트


드니 빌뇌브의 선택은?


신드롬급 인기를 구가하는 K-멜로드라마에는 항상 달리는 댓글들이 있다.

출처: '눈물의 여왕' 영상 클립 댓글


절절한 서사에 과몰입한 팬들은 주인공 커플의 비극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팍팍한 현실과는 다르게 드라마에서만이라도 자기가 원하는 판타지를 만끽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지만 작가 프랭크 허버트는 독자들을 배신(?)했다. 팬들이 메시아 폴에 너무 열광하자 작정하고 더 비극적으로 만들었다는 썰도 있을 정도다. 그럼 드니 빌뇌브 감독의 '듄 파트 3'은 어떨까. 이미 파트 2 마지막에 원작과 달리 챠니가 독자노선을 걷는듯한 모습을 보여줘 주인공 둘의 서사가 소설과 달라질 개연성은 충분하다. 과연 빌뇌브는 어디에서 이야기를 멈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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