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불편한 한국사'를 읽고
*블랙피쉬 출판사로부터 '불편한 한국사'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쿼티(QWERTY) 자판은 전 세계에서 가장 보편적인 영어 키보드 배열이다. 그런데 많이 알려져 있다시피 쿼티가 가장 타이핑하기 좋은 배열은 아니다. 빈도가 높은 글쇠가 기본 자리에 위치하지 않기 때문에 타자 속도를 느리게 하거나 손의 피로도를 증가시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쿼티의 단점을 개선해서 나온 드보락, 콜맥 자판 등을 사람들은 외면했다. 왜 그랬을까. 바로 '익숙하지 않아서'다. 사람들은 완전히 다른 것이란 느낌이 들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면 기존의 것을 고수하려 한다. 이러한 경향은 역사를 배우는 데 있어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이미 알려진 사실을 바로잡는 데에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진실이든 아니든.
역사: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그 기록.
인류가 기록이라는 것을 남기기 시작한 것은 5000여 년 전이다. 농업이 시작하고도 6000여 년이 지나서다. 사람들은 '먹고살만해지고 나서' 기록을 시작했다. 기록의 의도는 새로운 왕조의 '정통성 확보'였다. 책 '최초의 역사 수메르'에 따르면 이씬 왕조가 수메르를 멸망시키고 우르를 차지했는데, 새 왕조는 거짓 정통성을 만들기 위해 '수메르 왕명록'을 개작하며 중간에 있던 역사를 지우고 우르 3왕조 뒤에 이씬 왕조를 이어 붙이는 역사왜곡을 벌였다. 시작부터 역사의 기록은 승자의 기록이었던 셈이다. 이것이 바로 기록에만 의존해서는 진실을 볼 수 없는 이유이다.
그렇다고 기록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해서는 곤란하다. 이건 역사왜곡의 메커니즘을 살펴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왜곡은 사실에 기반을 두되, 해석을 달리하거나 그릇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사실과 거짓을 세심하게 가려내야 하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가려진 진실을 들추어내는 상상력이다. '불편한 한국사'의 저자 배기성은 우리나라 역사 가운데 42가지의 기록에 의문을 제기한다.
대표적인 걸 살펴보면,
(불편한 고대사) 신라 시대 성골과 진골은 순수 왕족이냐 아니냐의 차이를 나타낸다?
(불편한 고려사) 조선왕조 시작의 계기는 위화도 회군이 아니다?
(불편한 조선사) 장희빈은 정말 희대의 악녀였을까?
를 들 수 있다.
으레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 다음과 같은 주장은 한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성골과 진골의 구분은 중국으로부터 전해져 온 새로운 종교를 헌법으로 규정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기존의 애니미즘, 샤머니즘 숭상 세력(성골)과 새로운 불교 세력(진골)이 피비린내 나는 쟁탈전을 벌인 결과이다. - 불편한 한국사 15p
이성계가 고려의 정치 스타로 급부상하게 된 계기는 전라도 남원에서 왜구들을 크게 물리친 황산대첩이었다. 승리 후 개경으로 올라가는 길에 치성 기도를 드린 곳이 전북 임실군에 있는 상이암이라는 절이었는데, 이곳은 고려 태조 왕건이 고려 건국의 계시를 받은 곳이었다. - 불편한 한국사 72-73p
장희빈을 악녀로 기록한 '숙종실록'의 제작 총지휘자는 인현왕후 민씨의 오빠 민진원이다. 그는 노론의 영수였다. 그러니 장희빈과 소론, 남인의 역사를 좋게 쓸 리가 있겠는가. 오죽 왜곡되었으면 그 내용에 대한 수정 요구가 국내 최대의 반란으로까지 이어졌다. - 불편한 한국사 132-133p
잘못된 키보드는 큰 문제가 안되지만, 잘못된 역사는 차원이 다르다. 대한민국에 대한 세계관과 역사인식을 편협하고 부정적으로 만드는 해악을 끼치게 된다. 우리 주변국 일본, 중국이 그토록 역사왜곡에 공을 들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니 익숙하지 않다고 대충 넘길 수 없는 문제이다. 국뽕도 식민사관도 우리의 소중한 역사를 좀 먹는 기생충들이다. 좀 불편하더라도 역사 속 기록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어떠한 말과 행동을 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기록이 비어있는 공간에 '이런 상황에서 나라면 어찌했을까'라는 고민을 더해보면 종종 훌륭한 실마리를 찾게 된다. '불편한 한국사'에는 예리한 역사적 질문 42가지가 제시되어 있다. 미래 세대에 1%라도 더 정확한 역사를 전해주기 위해 지금은 '불편한' 질문에 답할 차례이다. 그 답이 저자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