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어 시간

2024년 노벨문학상: 한강 (대한민국)

by Book끄적쟁이

한강 디 에센셜


'희랍어 시간' 낱권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 가격에 한강의 다른 글들도 함께 볼 수 있어 집어 든 책.


'희랍어 시간'의 주인공은 17살의 어느 겨울, '수천 개의 바늘로 짠 옷처럼 그녀를 가두며 찌르던 언어가 갑자기 사라지는' 경험을 한다. 언어가 사라진 순간 그녀는 새로운 세계를 인식하며, 언어 없는 상태를 경험한다. 마치 언어 이전의 세계, 혹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미리 맛본 듯한 순간이다.


그런 저주 혹은 마법은 우연히 마주친 프랑스어 단어 하나로 인해 깨어진다.


'비블리오떼끄'

'도서관'이란 이 말은 그 의미처럼 '인간의 모든 언어가 압축된 하나의 단어'로 작용했다. 그녀 속에 응축되었던 모든 기억과 감정이 그 발음 하나로 일시에 터져 나온 것이다.


이후에도 그녀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 닥쳤을 때 침묵 속으로 숨는다. 그리고 이번엔 고대 희랍어를 공부한다. 그녀가 희랍어를 배우는 과정은 단순한 언어 학습이 아니라, 깊은 상실을 언어라는 매개를 통해 극복하려는 시도다. 희랍어는 그에게 단순한 단어의 조합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다리이자, 잃어버린 것과 다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그것이 침묵의 언어였다."


언어와 침묵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포함하는 관계이다. 침묵은 단순한 부재가 아니라,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방식이다. 언어는 모든 것을 담을 수 없는 한계를 지니며, 인간은 필연적으로 언어 바깥의 세계를 마주해야 한다.


'희랍어 시간'은 언어가 단순히 소리나 문자가 아니라, 침묵을 품고 있는 존재임을 보여주며, 우리가 감각하고 이해하는 방식 자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라고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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